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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파리 Jul 25. 2024

붉은 성의 호랑이

혜킬이 씁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이 어떠한가는 잘 모르겠지만 주와 나는 아주 각별한 재매 사이라 단언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도 나는 주를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사랑의 감정들은 때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자주 자랑스러움이었고, 보통 동질감이었으며, 종종 책임감이었고, 가끔 질투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없는 정도의 빈도로 미움도 있었다. 각각에 대해서는 한 편씩도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세한 내용은 나중으로 아끼겠다.


 책 첫 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글처럼 강력한 한 줄 소개를 하자면, 주는 가장 더운 계절에 호랑이 띠로 태어나 한자로 풀이하면 '붉은 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다. 녹아내릴 듯 뜨거운 여름에 두꺼운 가죽을 두르고 자신의 붉은 성벽을 지키며 무언갈 기다리는 호랑이. 그때가 언제 올진 본인도 알쏭달쏭한 듯 하지만 나는 그가 죽을 듯이 버티고 있다는 것만은 안다.


 사실 위는 요즘 느껴지는 인상이고, 이전에 함께 자라면서 본 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제삼자고, 주의 인생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래도 묘사를 해보자면, 어린 시절 주는 하얗고 동그란 이미지였고 왈가닥 선머슴처럼 굴던 나에 비해 수줍고 새침한 성격이었다. 주는 화가 날 때 돌연 발을 쿵쿵 구르며 최대한 구석진 벽으로 가 아무 말 없이 뒤통수를 보이며 한참을 서있곤 했는데, 그 모습이 스스로 벌주는 것 같아 가족들은 웃기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그가 감정과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서로가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유년을 지나, 두 살 많은 내가 먼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주와 나도 종종 싸웠고 대화가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면 항상 듣는 쪽은 주였는데 그는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나한테조차 자주 하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앞가림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주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뻗지 않았다.


  중2병에 걸린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와 지지고 볶으며 싸웠고, 내 도덕적 허용 범위 내 거의 모든 불효를 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내 소용돌이는 잠잠해졌고 이제 주의 차례가 오겠구나 했는데, 이상하게 그의 사춘기는 내 것과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주는 대부분 사람에게 냅다 맞서기보단 일단 수용하고 보는 편이었고, 이 날도 그는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심한 말을 들어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마치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주는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혹시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올까 봐 방에 있던 피아노 의자로 문을 한 번 더 막는 철저함까지 보였다. 둘의 싸움을 듣던 내가 격분해 벌떡 일어나, 모아뒀던 세뱃돈과 용돈 10만 원가량을 쪽지와 함께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나가서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고 영화 같은 거 보고 친구 집에서 자고 와.' 그러나 몇 초 지나지 않아 들어갔던 길로 주의 답장과 함께 돈과 쪽지가 도로 나왔다. '언니 나 그냥 방에 있을게. 그래도 고마워.'


 주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나는 거절한 혹은 포기한 길을 택했다. 대부분 길고 긴 여정으로 이어지는 선택들이었다.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 가끔 조언을 가장한 설교를 하기도 했다. 주는 듣고 또 듣더니 어느 날, '언니 나 그냥 방에 있을게. 내가 선택했어. 그래도 고마워'와 비슷한 답을 했다. 순간 나는 화들짝 부끄러워져 그를 가만히 두고 응원만 하기로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도 함께 얽힌 오랜 싸움을 해나가면서도 주는 종종 새로운 취미를 시도했는데, 따릉이 타기도 그중 하나였다. 우선 나는 두 발 자전거도 성인이 돼서야, 그리고 그땐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 탈 줄 알아야 했고, 그래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굳이 자전거를 탄 일이 없다. 주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니 나와 달리 네발 자전거도 제대로 타보지 못했을 텐데, 난데없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하더니 시간이 날 때마다 따릉이를 빌려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었겠지만 구체적인 동기나 목적이 없어 보여 취미로 하려는구나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따릉이로 가까운 하천을 찍고 오는 정도로 만족하더니 점점 동선이 길어져 마침내 노원구 중계동에서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해진 시간마다 정해진 장소에 반납해야 하는 따릉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도 없이 반납하고 새로 빌리면서, 자전거도로로, 차도로, 인도로, 골목으로 길을 창조하며 여의도 한강까지 간 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주는 돌아오는 것도 수많은 따릉이와 함께하길 택했다. 따릉이와 함께하는 장장 77km의 왕복 여정이라니. 그는 훗날 엉덩이가 찢어질 듯 아팠다고 회상했다. 나에게 이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엉덩이가 그렇게 아픈데 대체 왜 지하철로 돌아오지 않은 거야?


 그런 주를 보며 나중에 꼭 돈을 모아서 멋진 자전거를 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는 곧 따릉이 타기를 멈추었다. 요즘도 거의 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는 늘 나를 낭만주의자로 여기는 듯하지만, 내 생각에 진정한 낭만주의자는 그다. 매번 기가 막히게 실리와 논리를 따지는 나의 경우에 그의 행동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데 사소하건 대단하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관찰하기에 주의 자전거 여행 스케일은 가볍고 꾸준한 취미로 가져갈 목적도 아니었고, 본격적인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가 되어 열정을 바칠 목적도 아니었다.


 우리는 바탕이 되는 성격과 특징이 비슷해 과장과 반어법으로 농담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가 진정한 미친놈이라며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곤 하는데, 정말로, 정녕 이 시대에 미친놈은, 사사로운 잡념 따위 집어삼켜버리곤 자전거 타기만을 위한 진짜 자전거 타기를 할 줄 아는 주였다. 그는 마음이 풀릴 때까지 스스로 벌주듯이 벽을 보고 서 있는다. 방에 들어앉아 남이 무슨 짓을 하건 자신이 원하기 전까지 나오지 않는다. 녹아내릴 듯 뜨거운 여름에 두꺼운 가죽을 두르고 자신의 붉은 성벽을 지키며 무언갈 기다리는 호랑이. 그는 극한까지 버텨버리는 힘이 있다. 나는 미친놈 축에도 속하지 않았다.


 나와 주를 동시에 아는 낯선 이들은 그와 내가 비슷한 것 같다고들 이야기하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는 뭔가 더 특이하고 별난, 그래서 특별한 구석이 있다. 성인이 되어 터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지면서 나는 어렴풋하게 마나 주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주는 자주 나에게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안겨준다. 이미 우리의 생활이 달라져 끊임없이 공통분모가 줄어들고 있으므로 주한테도 내가 그런 존재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그의 삶이 구체화됨에 따라 점점 더 늘어날 주의 모든 것, 그리고 그 많은 것의 반의 반조차 나는 어쩌면 영원이 걸리는 노력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주야! 난 네가 늘 너무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항상 응원하고 있어! 생각하는 것만큼 자주 말해주지 못해도 용서해. 언제나 언제까지라도 사랑해!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로라,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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