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코 앞인 삼춘기 초딩의 영혼 체인지 SF 어드벤처
일단 엄마가 시키는 대로 택시를 타고 상암동 방송국에 도착했다. 엄마 따라 몇 번 와본 적 있는 방송국 로비를 가로질러 경영센터 출입 게이트에 출입증을 찍었다. 엄마가 환하게 웃는 사진이 나오고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누군가가 나한테 목인사를 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도 (엄마가 시킨대로) 웃으면서 고개를 까딱 한다. 9층을 눌렀다. 라디오국 사무실 <라디오 2부> 팻말 아래 우리 가족사진이 놓인 엄마 책상을 무사히 찾아가 앉았다.
“아…. 안녕하세요”
소리 내어 인사했다. 엄마가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해리야 엄마는 인사를 엄청 잘해. 그래서 인사 안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상하게 생각할거야. 큰 목소리로 웃으면서 밝게 인사해. 알았지?”
나는 인사하는 게 정말 부끄럽다. 인사를 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쳐다보는 것도 부끄럽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무척 부끄럽다. 어른들이 나를 쳐다보면 너무 부끄러워서 땅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많다. 엄청 부끄럽지만 지금 나는 엄마니까, 사실은 인사를 안 해서 혹시라도 엄마가 아닌 걸 들키면 어른들이 나를 둘러싸고 이것 저것 물어볼 게 싫어서 용기를 내어 힘껏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주변에서 다들 내게 인사한다. 아직 사무실에는 사람이 많지않다. 일단 노트북을 켰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암호를 넣고 뭔가를 보는 척 했다.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온다. 뭐지? 내가 좀 어색했나?
"선배 커피 하실래요?"
어? 하정민 이모다. 우리집에 놀러온 적도 있고 내게 <인체의 원리>라는 두껍고 비싼 책을 선물해준 이모.
"이. . . ! 아니 그래"
같이 1층 스타벅스에 내려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엄마는 늘 아아를 마신 다. 속에 열이 많아서 커피로 식혀야한다나. 그래서 나도 고민 없이 아아 를 주문했다.
"선배 주말 잘 보내셨어요?"
"으..응~ 잘보냈지"
주말 동안 엄마와 내게 생긴 일은 결코 잘 보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해리랑 주말에 뭐하셨어요?"
"으응...인사동에 놀러갔었어"
"인사동요? 해리가 또 한복 입었어요? 귀여웠겠다~~~ 지난번엔 고무신 신다 발뒤꿈치 다 까졌다면서요. 고무신 큰 걸로 다시 안 샀어요?"
어? 내가 한복 입은 걸 어떻게 알았지? 엄마가 회사에서 내 얘기를 많이 하는구나. 엄마는 나랑 떨어져 있을 때도 내 생각을 많이 하나보네.. 나는 학교에서 엄마 생각 거의 안하는데.. 살짝 갈비뼈 안쪽이 뻐근해졌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주 부르는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에 '갈비뼈 사이사이가 찌릿 찌릿한 느낌~'이라는 가사가 이런 의미였나?
하정민 이모의 말에 계속 맞장구만 치다가 다시 사무실로 올라왔다. 휴 쓴 커피 겨우 겨우 조금 마셨네. 으… 써~ 내가 비염 때문에 먹는 한약만큼이나 쓰다.
이렇게 쓴 커피를 왜 마시냐고 예전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인생은 원래 쓴거야~ 그리고 워킹맘에게 카페인은 필수거든” 하셨다. 아니 인생이 쓰면 커피라도 달게 마셔야하는 거 아닌가? 엄마 말은 가끔 앞뒤가 안 맞는다.
오전 11시에 엄마가 담당하고 있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작가들과 회의를 한다고 했지... 엄마가 알려준 대로 회의실로 갔다. 엄마는 지금쯤 2교시가 끝났으려나? 엄마가 공개수업 때문에 반차를 냈다고 하니까 회의만 무사히 마치면 방송국에서 나올 수 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