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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바라 Aug 01. 2019

<해리봉의 영혼탈출> #6. 나도 라디오 PD다

사춘기가 코 앞인 삼춘기 초딩의 영혼 체인지 SF 어드벤처

"안녕하세요"

 

   작가 이모들이다! 학교 안가는 빨간 날, 엄마가 생방송 때문에 출근했을 때 방송국에 아빠랑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때 본 작가 이모들이다. 작가 이모들 세 명 이름은 아까 택시 안에서 달달달 외웠다.


"오늘 웃음편지는 어때요?"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라디오 PD같다. 엄마가 써준대로 말하는 것도 엄청 떨리고 긴장된다. 엄마가 일하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는 청취자 사연들이 매일 방송되는데 청취자들이 보낸 편지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중에 오늘 방송할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사연들을 회의 시간에 정한다고 한다. 엄마는 하루 하루 라디오 제작진들이 최선을 다해 청취자들의 사연을, 그들의 일상을 정성스럽게 전달한다고 강조했다.


"오늘 웃긴 사연들 많아요"


   귀여운 목소리의 이모다. 손재내 작가 이모라고 했던가.. 엄마가 휴대폰에 메모해 준 걸 살짝 엿봤다. 라디오 제작진들 사진 옆에 엄마가 하나 하나 이름을 써주셨다. 방송국에서는 휴대폰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참 다행이다. 휴대폰을 볼 수 없는 엄마는 내가 얘기한 걸 잘 외웠으려나... 우리 엄마 잊어버리기 대장인데... 영어학원비 내는 것도 깜빡 깜빡하고 학교 알림장에 부모님 싸인해야 하는 것도 날짜를 놓쳐서 항상 늦게 냈는데.... 일할 때는 꼼꼼하다면서 왜 그렇게 집안 일은 깜빡 깜빡 하는지! 어휴...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 온 사연인데요. 어떤 사람이 자취하는데 가스 위에다가 돈가스를 튀기려고 기름을 끓이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가스불 때문에 집 안에 연기가 가득찬 거에요. 그래서 이웃이 119에 신고를 했고,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어서 대원들이 창문으로 들어갔대요. 구급대원들이 이 분을 깨워서 '왜 연기가 난 거죠?' 라고 물어봤는데 잠결에 '도....도온 가..까스' 라고 대답한거에요. 근데 구급대원들이 독가스로 잘못 듣고 '독가스!!!!! 독가스다!!! 비상!!! 비상!!!!!' 난리가 났대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아 피디님 빵 터지셨네.. 이 사연이 그렇게 웃겨요??”


   아.. 너무 웃기다. 학교 급식으로 나오면 세 번씩 더 받아와서 먹는 돈가스... 돈가스를 독가스라고 얘기하다니. 내 경험상 돈가스를 세 번이나 먹으면 엄청난 독가스가 나오긴 하지. 아 정말 배꼽 빠지게 웃기다.


“그리고 어떤 덤프트럭 기사분이 사연을 남겨주셨는데요.. 덤프 트럭 기 사들은 주로 트럭 뒤에 적재함에 들어가서 큰일을 보신대요. 보통 공사장 주변에는 화장실이 없으니까. 근데 이분이 출근하자마자 아랫배에 급한 신호가 와서 적재함에 들어가서 큰일을 보는데....갑자기 적재함이 막 움직이더래요... 덤프 트럭들은 아침마다 시동 걸고 적재함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꼭 워밍업을 해야하는데... 이게 일종의 준비 운동이래요. 근데 기사님이 시동만 걸어놓고 안계시니까 기사님 동료분이 도와준답시고 대신 적재함을 움직인 거에요. 이 분은 이미 일을 봤고... 바지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져있는데....적재함 바닥은 점점 기울어지고.... 한마디로 똥이랑 데굴 데굴 구르고 난리난리가 난 거죠”


“푸하하핳하앟아하아아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아아앟”


   아.. 너무 재밌다. ‘똥’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웃기다.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서 혓바닥을 앞니 뒤에 바짝 붙어서 발음 해야하는 ‘똥!!’. 누가 만든 단어일까.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진짜 똥을 몸 밖으로 내보내듯 단어가 입 밖으로 내보내진다.

   


   어릴 때 엄마가 자주 읽어주셨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책이 생각난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이 말이 반복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읽어달라고 했다. 엄마는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동화책을 실감나게 읽어줬는데 내가 한글을 읽기 시작한 뒤로는 책을 읽어준 적이 없다. 내가 읽는 것보다 엄마가 읽어줘야 더 재미있는데… 엄마는 책에 없는 내용도 추가해서 이야기가 더 풍부해진다. 반대로 엄마가 피곤할 때면 2, 3 페이지를 한꺼번에 넘겨서 이야기가 뚝 뚝 끊겼는데 그걸 한글 뗀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쩐지 <곰 잡으러 간단다> 동화책에서 주인공 가족이 곰 잡으러 출발하자마자 금방 집에 돌아오더라니. 그리고 사실은 책 읽어줄 때 엄마 품에 안기는 그 느낌이 좋다. 엄마 냄새 킁킁 맡으면서 잠이 솔솔 몰려오는 그 나른한 느낌. 그렇지만 엄마는 일 하느라 집안 일 하느라 바쁘니까 내가 참아야지 뭐.


   그나저나 이렇게 재미있는 ‘똥’을 엄마는 밥 먹을땐 절대 얘기못하게 하면서 방송국에서는 이렇게나 진지하게 똥 사연을 회의하네. 라디오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인 줄 미처 몰랐다.


“그럼 웃음편지는 이 두 개로 하고, 세상사는 이야기 주제는 뭘로 할까요?”

   나영 작가 이모가 묻는다.

“.............”

“피디님~ 주제는 뭘로 할까요?”


   엄마가 얘기를 안 해줬는데... 세상 사는 이야기라..그렇다면... 

“일상...얘기?”

“우리 원래 일상 얘기하잖아요~~피디님 오늘 평소랑 좀 다르네~~ 말 수도 적고... 혹시..”


   혹시? 뭐야 벌써 들킨 건가? 작가 이모들 역시 눈치가 빠르네.

“혹시.. 어디 아프세요?”


   음.. 엄마가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고 어른은 아프면서 늙는다고 하셨다. 엄마는 나를 낳고나서 늘 뼈 마디마디가 아프다고 자주 얘기했었는데... 특히 엄마가 누워있을 때 내가 물 좀 달라고 하면 엄마는,


“한번 누웠다가 일어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이거봐 이거봐 무릎이랑 허리에서 뚜두둑 소리가 나잖아. 이번에 진짜 마지막이야. 다음부턴 꼭 해리가 물 떠다마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살이 빠지지. 소아과 선생님이 한 말 기억나지? 10kg 빼야한다고 하셨잖아”


   와... 나는 ‘엄마 / 물 / 좀’ 이렇게 세 마디 했을 뿐인데.. 엄마 입에는 따발총이 달렸나. 쉴새없이 말이 수돗물처럼 새어나온다. 다음부턴 누워있는 엄마에겐 물 달라고 하지 말아야지 하는 큰 교훈을 얻었다.


“피디님?”


   아.. 내가 또 생각을 많이 하느라 대답을 못했구나.


“아 네... 그럼 오늘.... 주제는... 음... 교훈을 얻는?? 그런 주제 받아보면 어때요?”

“오~ 그거 좋다. 주변에서 뭔가를 배우고 교훈을 얻고, 그런 적 많잖아요” 수정 작가 이모가 말했다.

“아이들한테 한 수 배운 적도 많잖아~ 그럼 <한 수 배웁니다> 이 주제로 할까요?”


   와.. 나는 딴 생각 하다가 한 마디 뱉었을 뿐인데 작가 이모들... 짱이다. 주제를 정하고 청취자들에게 줄 선물도 정하니까 이제 슬슬 나갈 시간이다.


“오늘 해리 공개수업이 있어서 반차 냈어요. 생방은 민경이가 진행할 거니까 저는 얼른 나가볼께요”

“아 네네 해리 공개 수업이라고 하셨죠? 잘 다녀오세요~~”


   겨우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라디오 생방은 내가 안해서 천만다행이다. 라디오 생방은 내가 안 해서 천만다행이다. 혹시나 방송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야~ 엄마는 아직도 가끔 방송사고 내는 악몽을 꾼다고 한다. 귀신도 안 무서워하는 엄마가 무서운 게 있다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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