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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Aug 15. 2023

내 방에 구멍이 있어 ep.3

난다

호랑이 기운을 안고,

옆 건물 난다가 사는 꼭대기층으로 향했다.


 쾅쾅쾅 쾅!

“난다! 나랑 이야기 좀 해요!”

“명상 중이라 지금은 문을 열 수가 없어.”

“명상 같은 소리 허네, 빨리 문 안 열어?” 알아듣든 말든 국적불문 욕을 해댔다.

난다가 헝클어진 머리로 눈곱을 떼며 나온다.

‘명상은 개뿔’  


“내 방에 구멍이 있어 그거 좀 어떻게 해 줘 봐요. 어떻게 그런 방을 나에게 줄 수가 있어요? 아니, 방 뺄 테니 불 해 주세요.”

난다가 앉아 보라더니 진정하라며 티(tea)를 내준다.

"자, 자세히 설명을 해봐. 무슨 구멍을 말하는 거야? 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줄게. 하지만 지금 네 방이 가장 좋은 방이야."

내가 구멍 구멍 하니까 방을 같이 가보잔다.

"아, 이거 내가 저번에 자물쇠수리하면서 생긴 것 같은데.. 당장 수리해 줄게."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어딘가에서 가져온 공구로 뚝딱뚝딱 잘도 고친다.

 "봤지? 그래도 싫으면 방을 바꿔줄까?"

난다의 노력에 마음이 조금 풀리기도 했지만 찝찝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뭔가 마음이 안 좋다.

이 사람이 정말 그런 사람일까? 




호기롭게 인도에 왔지만 처음 일주일은 밖에도 못 나갔다. 많은 나라를 오갔어도 인도는 뭔가 달랐다.

소똥이 난무하는 더러운 거리, 시끄러운 경적소리, 등장과 동시에 달려드는 사람들, 속을 모르겠는 그들의 시선,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위축되게 했다. 강아지러버인데 여긴 개들도 무서워. 자칭 배낭여행 전문가라고 동네방네 인도 간다 떠들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면 이 무슨 창피람. 방구석에서만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난다였다.

 “아가씨, 나 요 앞에 저녁거리 사러 시장에 가는데 같이 갈래?”

나가보니 오토바이. 난다와 뒷좌석에 붙어 타야 한다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이대로면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무드였기에 '에라 모르겠다' 탔다. 강변을 거쳐 가는 길. 100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조경수와 어우러진 탁 트인 뷰와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랜만의 북적임, 처음 보는 낯선 풍경들에 신이 났던 날이었다. 현지인과 있어서인지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그날 난다는 생선을 샀다.

"고마웠어. 나 요즘 진짜 우울했거든."

"어딜 가려고, 밥 먹고 가야지."

손질에 튀기기까지 뚝딱 30분 만에 만들어준 생선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생각보다 밥을 많이 먹는다면서 웃으며 인심 좋게 밥을 잔뜩 퍼다 주던 그에게 느꼈던 고마움. 뿌네에서의 첫날 난다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길에서 꽤 오래 헤매었을지 모른다. 인도의 밤은 꽤나 위험하다며, 여기 있다가 다음날 날이 밝으면 새 집을 찾아가도 좋다고 고집을 부리던 아저씨.




나는 방만 바꾸기로 결정했다. 처음 내 방은 세 팀이 하나의 화장실을 공유하는 방이었는데 바꿔준 방은 같은 값에 두 팀이 공유하는 화장실이니 사정은 나아진걸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남향이다.

(내 방이 가장 좋은 방이라며. 거짓말)


아직은 난다에 대한 불신의 마음보단 고마움이 크기에.


‘난 아무것도 못 들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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