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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Aug 17. 2023

인도가 좋은 이유=비키

아날로그 인디아

너무 덥다.

평소 더위를 잘 타지 않고 땀도 없는 편이라 더위에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진이 빠지는 여름이라니. 당황스러운 날씨에 어찌할 바를 몰라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뿌네 대학을 다니는 인도인 친구이자 나의 영어선생님인 비키가 찾아왔다.

 

“안녕 비키. 나 더워 죽기 직전이야.”

 “그치? 에어컨도 없이 너 정말 힘들겠다. 하나 사지 그래?”

"가난한 배낭여행자 놀려 지금?"

 

비키가 도시락을 꺼낸다. 카레와 비키표 '짜이'이다. 처음에는 비키의 친절을 경계했었다. 비키와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 말하기 수업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수업도 없는 날에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 내 밥을 챙겼다.



 ‘아무런 바램 없이 이런 호의를 베풀 리가 없어..’


본심을 꺼내길 기다리는데 지금 두 달째 와서 말없이 내 끼니를 챙긴다. 비키는 밥상을 차리기 전 나에게 단어 목록을 줬다. 밥을 먹으며 비키가 묻는 단어에 대해 영어로 설명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교사다.


"오늘 메뉴는 뭐야? 와! 1)달이다!" 


비키가 해 주는 달은 꽤 짰다. 비키의 달에 길들여져 식당에서 사 먹는 다른 달들이 간이 안 맞아 맛이 없었다. 나는 아직 훈훈한 2)짜파티를 찢어 달이 최대한 많이 묻을 수 있도록 깊이 푹 찍었다.


'오늘은 꼭 물어봐야지.'




“비키, 왜 나 아침 차려줘?”

“그냥 불쌍해서”

 ‘.......’


아하? 100프로 이해가 되는 간단명료한 대답. 나는 입안 가득 짜파티를 오물오물 씹으며 비키가 내 아침을 차려주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많이 아픈 무렵부터일까?


      



어느 나라든 물갈이는 있는 법이다. 낯선 나라의 물과 대장균들에 내장이 적응하는 기간이랄까? 그런데 인도의 물갈이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설사로 시작해서 구토는 말할 것도 없고 열까지 났다. 약도 없이 생으로 앓으며 일주일은 누워만 있었고, 살이 8킬로가 빠지는 홍해의 기적(성경참조)과 같은 일이 있었다. 그때 수업을 못 하겠다는 내 메시지를 받고 비키가 왔다.


'똑똑똑'

'......'

'똑똑똑'

'......'

'하.. 누구야..' 문으로 갈 기력도 없어 겨우 기어가서 문을 열었다. 놀란 비키가 토끼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SOng!!!!!!!" (귀 떨어질 뻔했다)

"Shut up. I am still here."


비키가 내 입을 탁 때린다. 부축해 침대에 앉히고는 보온병에 가지고 온 뜨거운 티를 컵에 옮겨 한참 불어 식혀 건넨다. 한 모금 마시는데 왈칵. 왜 혀가 아니라 눈이 뜨겁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추질 않았다. 비키 앞에서 울기 싫었는데...


사실 서러웠다. 아파서 정신이 없다가도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물이 났다. 혼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눈물콧물이 뒤섞인 짜이를 덜덜 떨며 세잔이나 마셨다. 사실 코가 막혀서 무슨 맛인지 몰랐지만 넘어가는 게 신기했다. 단것이 들어가서일까, 정신이 조금 또랑 해 진다. 내가 잠들 때까지 비키가 있었는데 일어나 보니 없다. 그날 깊은 잠을 자고 난 후 드디어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비키와 그녀의 뜨거운 짜이가 있던 2007년의 여름은 2023년의 나를 위로한다.

사람 알레르기가 올라올 때 기억 속에서 꺼내 바르는 특효약.




1) 달: 인도 카레 중 한 종류. 껍질을 벗긴 병아리콩으로 만든 카레, 고소 단백. 속이 편안해서 좋다.

2) 짜파티(로티) : 통밀가루와 향신료를 물과 섞어 반죽해 팬에 얇게 부친다. 누룩을 넣지 않는다는 것이 '난'과는 다른 점.

3) 짜이(chai) : 인도식 밀크티. 마살라 향신료 외에 생강, 계피, 설탕을 우유에 넣고 팔팔 끓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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