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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Aug 18. 2023

저먼 베이커리

데일리 루틴

어느덧 뿌네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제법 루틴도 생겼다. 비키와의 영어과외가 큰 몫을 해 주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시간까지 30페이지가량의 책을 읽고 정리해서 설명을 해야 했다. 당시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의 대가였던 나에게 이 수업 커리큘럼은 너무나 버거웠다. 단어만 찾는 것도 하루 꼬박 걸렸으니, 영영사전만으로는 뜻이 명확히 이해되지 않아 때려 맞추기 일쑤였다.


대충 이 뜻이겠거니, ‘영어는 자신감이야!’ 


아무 말이나 떠드는 나를 보며 비키는 안쓰러운데 웃음을 참을 순 없겠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Daily routine

저먼 베이커리 - 아침식사 / 영어토론

끝.

   

내가 사는 ‘고레가온 파크’에는 ‘저먼 베이커리’라는 빵집이 있었다.

아침마다 빵을 구워 파는데, 저기 멀리서부터 빵 냄새가 났다. 빵순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만남의 장소 같은 저먼 베이커리에는 아침을 먹으려는 외국인들이 가득했다. 나 혼자 사전과 씨름하고 있으면 어느 친절한 외국인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을 해주고, 자기들끼리 토론까지 하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점점 저먼 베이커리는 나의 아침루틴 장소가 되었고 니콜과 샘 아저씨, 빵집 종업원인 암룻과 친구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기다렸다.





크로와상을 인도에서 처음 먹어봤다면 놀랄 일일까?


저먼 베이커리에서 매일 아침 먹던 메뉴가 있었는데 크로와상과 짜이다. 짜이엔 우유가 들어가기 때문에 빵에 흡수가 잘 된다. 달달하고 따끈한 짜이에 크로와상을 푹 찍어 먹으면 온몸에 피가 돌며 비로소 잠이 깼다. 아침에 빵 다섯 개, 짜이 세잔은 거뜬히 해치우는 내 모습을 신기하게 대놓고 바라보던 암룻과 눈이 마주친 그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암룻은 늘 따끈한 크로와상을 내 몫으로 챙겨뒀고, 내가 좀 늦은 날이면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샘 아저씨는 왜 인지 모르지만 내 숙제를 기다렸다. 프랑스인인데 불어나 하지 영어는 또 왜 잘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너는 왜 도대체 영어를 못하냐고 되물었다.

‘낸들 알겠니요?’

영어만 잘했으면 한판 제대로 붙을 수도 있었는데, 매번 티키타카에 져서 분했다.


니콜은 명상을 목적으로 인도에 왔는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고 했다. 빵을 짜이에만 찍어먹던 나에게 니콜이 어느 날 커피를 건넨다.

“송, 여기 찍어먹어 봐.”

꽤 맛있었다. 그 뒤로도 니콜은 커피에 대한 역사, 커피의 종류와 맛에 대해 이야기해 주며 여러 커피를 마셔보게 했다. 내가 지금 커피를 즐기며 살게 된 것은 니콜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디어 비키선생님에게 폭풍 칭찬을 들었던 날이 있었으니, 모두 이 세 사람의 영향이다. 매번 리스닝만 하던 만남의 자리에서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샘과 기를 쓰고 싸우고 있었고 니콜의 커피이야기에 푹 빠졌다. 처음엔 난해하던 암룻의 인도식 영어도 소통에 무리가 없을 만큼 익숙해졌다.


   



여행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지만 이들과 헤어질 땐 웃을 수 없었다. 니콜도 샘도 본국으로 돌아갔고 나도 푸네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 늘 그랬듯 암룻은 크로와상 다섯 개를 건넸다. 돈은 자기가 냈단다.


“무슨 소리야. 너 사장님도 아니잖아.”

“그러게 평소에 좀 적게 먹지 그랬어. 다섯 개나 사야 했잖아.”


인도에 오래 체류할 예정이라서 암룻과는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줄 알았으나 북인도에 매료되어 여행하다가 정신없이 귀국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0년, 뿌네에 폭탄테러가 있었다.                     

주인도대사관홈페이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이 쌓인 장소가 사라졌다.

'!!!!!!'

가슴이 철렁했다.


‘암룻은 그곳에 있었을까?’

‘하.. 한번 보고 왔었어야 했는데...’

‘괜찮을 거야.’


후회가 밀려왔다. 당시는 연락의 도구가 이메일뿐인지라 급하게 암룻과 소통했던 메일함을 뒤져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저먼베이커리는 암룻이 있기에 다시 가고 싶은 장소였다. 언젠간 우리 넷이 여기서 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하던 그날 우리가 늘 앉던 창가 앞 테이블이 생각났다. 무기한 약속 중 그나마 장소는 정해져 있었는데, 우리의 약속을 단단히 이어주고 있던 두꺼운 밧줄이 끊어져버린 느낌이다. 닻을 매단 밧줄이 끊어졌으니 배가 정박할 수 있으려나.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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