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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Aug 20. 2023

아지트_노란마차

 오토바이 그 남자

비나는 뿌네 대학에 다니는 내 또래의 한국 사람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2학년이었고 그 동네 터줏대감으로서 모르는 게 없었다. 대화가 잘 통했고 입맛도 비슷하여 비나와의 만남이 늘 기대가 되었다. 난다와의 계약만 아니면 비나 집에 들어가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는 인도인 남자친구 '럭키'가 있었다. 꽤 잘 생겼고 비나를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비나 덕에 많이 친해진 우리는 ‘옐로웨건’이라는 카페에서 잘 모였다. 내 엉망진창 영어를 귀여워(?)해서 자꾸 말을 시키는 통에 할 이야기를 준비해 외워갔던 적도 있다. 그는 한동안 내 가이드를 자처했고 우리의 여행은 항상 일과가 끝난 저녁, 옐로 웨건에서 시작되었다. 럭키는 자동차가 있었기에 어디든 기꺼이 데려가 주었는데, 주로는 뿌네의 맛집 이곳저곳이었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단연 야시장이었다. 형형색색 다양한 포장마차들이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나를 하루 중 가장 신이 나게 만들었다. 럭키는 꼭 나와 비나를 적당한 곳에 앉혀놓고 이곳저곳의 음식을 포장해 와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튀김만두, 누들, 비리야니, 버터치킨, 라씨는 기본이었다. 점점 옐로 웨건에서의 일정은 행복한 나의 저녁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Daily routine

저먼베이커리 - 아침식사 / 영어토론

옐로웨건- 저녁식사 / 영어토론

끝.

    

친구에 친구, 꼬리를 물고 소개를 받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바깥 테라스 자리를 전부 차지할 만큼 대 그룹이 되었다. 거의 매일 저녁 많게는 10명의 무리가 시끌벅적 수다를 떨다 보면 두세 시간은 훌쩍 갔다. 우리는 가끔 별똥별을 보러 외곽으로 나가기도 했는데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장관이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앞에 있는데 손을 뻗으면 한 움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컷 '별샤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먹던 사모사의 맛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더 잊을 수 없는 건 그들과 내가 사는 방식과 문화가 너무 달라서 인지 서로의 이야기에 무슨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빠져들었다. 그들은 특히나 우리 엄마이야기를 하면 박장대소를 했는데 '오늘의 대화'의 클라이맥스로 준비해 가기도 했다.


 



"언니, 나 거의 도착했어. 3분 뒤에 내려와."

그날도 기분 좋게 저녁루틴의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뭐 먹지.'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비프비리야니를 먹어야겠다고 결정하며 피식 웃었던 그 순간.

한 오토바이가 다가오더니 내 가슴을 툭 치고 갔다.

'!!!!!!!!!'

'이건 또 무슨 상황?'

순간 얼음이 되었다.

'내가 방금 뭔 일을 당한 거지?'

또 심장이 요동을 쳤다. 나는 전속력으로 비나의 집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언니를 보는 순간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뭐? 내 이 자식들을 그냥.”


언니는 곧바로 옐로 웨건으로 향해 내가 겪은 일을 럭키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나보다 더 화를 내며 가만두지 않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와 비나를 둔 채 정말로 떠나버린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반응자체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비프비리야니고 뭐고 토할 것 같다. 옐로 웨건에서 이렇게 조용히 있어본 적이 없었다. 비나가 뜨거운 진저티를 시켜주었지만, 다 식어버릴 때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럭키와 친구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누가 함께 있다. 내 심장이 다시 요동친다.


오토바이 그 남자다.


사실 인상착의를 듣고 단번에 누군지 알겠더라며 가서 흠씬 두들겨 패 데리고 왔단다. 자세히 보니 꽤 맞은 듯 행색이 엉망이다.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사과를 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고등학생 정도 된 아이다. 카페 안 손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경찰도 구경을 하고 있다. 나에게 한 짓은 밉지만 조카뻘 되는 애가 두들겨 맞아 얼굴이고 어디고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아무 말 없는 나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하더니 자진해서 경찰차를 탄다. 경찰차가 떠나고 나서야 구경꾼들도 자리를 떠났다.


모두들 비나 집에서 자고 가라는데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한사코 거절하고 집에 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마음이 좀 진정되었는지 그제야 친구들이 생각난다. 고맙다는 말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 보고 신났었는데,

참, 별일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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