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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Aug 22. 2023

Nobody

명상의 대가

“송! 굿모닝! 오늘은 뭐 할 거야?”


난다가 내 앞에 털썩 앉으며 묻는다. 그날 아침도 어김없이 베이커리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테라스에 앉아 영영사전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러게 뭐 할까, 아직 계획 없는데.”

뿌네가 관광지는 아니라 딱히 가볼 만한 곳이 많이 없긴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동네이기도 하다.


“그럼 오늘은 나랑 명상센터 가보자. 이 동네 외국인중 너만 안 가봤을걸.”




그 말은 맞다. 관광지도 아닌 이 동네에 머무는 모든 외국인의 주된 목적은 오쇼 아쉬람 센터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뿌네 여행 목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 때 사람들에게 여행의 의미에 대해 물었었다.

    

당신에게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나를 찾기 위함, 경험을 쌓기 위해, 관점을 넓히기 위해 등 사람마다 여행의 정의가 다르다. 나에게는  여행의 의미가 매번 달라져서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처음 여행을 시작한 것은 일상의 괴로운 요소들과 잠시 이별하기 위함이었고, 여행이 끝날 무렵 그 괴로움들이 축복임을 알았다. 배움의 짙은 감동의 맛을 알아버려 이제는 여행을 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여행지에서는 모험과 경험에 기꺼이 대범해지고,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에게도 관대해진다.




“그래 가보자. 궁금하긴 했어.”

인도는 공원스케일도 남다르다. 센터로 가는 길에도 커다란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날도 역시나 인도인들의 데이트 장소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국적이고 커다란 조경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 저기 공원 한 바퀴 돌고 가면 안 될까?”

“싫어. 나중에 나도 애인이랑 갈 거야.”


센터에 도착하니 인도인이 아닌 서양 사람들이 입장권 관리를 하고 있다. 처음이라고 했더니 영문도 모르고 피검사를 받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에이즈 검사였다.


입장관문을 통과하고 마주친 센터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진다. 잘 가꾸어진 정원에 비건 레스토랑, 카페, 도서관, 수영장, 사우나까지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그야말로 5성급 호텔시설 수준이다. 제일 인상 깊었던 모습은 한 여인이 머리에 꽃을 달고 자유롭게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는 것.

자꾸 눈길을 주는 나에게 난다가 제지를 건다.

“송, 그만 쳐다봐, 저분은 명상하고 있는 거야.”

“노력해 볼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명상 수업이 짜여있고, 내가 원하는 수업에 들어가면 되는 시스템이다. 시간표를 보니 마침 ‘laughing drum’ 명상 시작 직전이다. 센터의 중앙쯤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긴 강의실(?)로 냅다 뛰어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불이 꺼진다.


‘끝났나?’

갑자기 사람들이 웃기 시작한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

“송, 웃어. 웃음치료 명상이야.”

난다가 간지럼을 태우며 웃으라는데 조금 짜증이 밀려오며 그를 때릴 뻔했다.

“아무도 너 안 봐, 내려놓고 웃어봐.” 난다를 따라 계속 웃어본다. 억지로 웃으니 목이 아파 두 번은 못하겠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 속 여주인공은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한다. 내가 흔히 생각하는 명상의 모습이었다. 명상의 세계에선 아무래도 자세보다는 내면이 중요한가 보다.

      

다 내려놓고, 의식하지 말 것. 명상을 할 때 난다가 이야기해 준 두 개의 팁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명상의 대가'다. MBTI 결과가 검사 할 때마다 다른, 나조차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형편에 내려놓고 말 것이 없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적어도 우연한 만남과 편견 없는 대화들로 가득 차 있는 배낭여행의 시간에서 만큼은 ‘아무도 아님’을 즐기고 싶었기에.     

 

“송, 오늘 어땠어? 내일 또 갈래?”

“아니, 우리 고아로 수영하러 가자.”


고아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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