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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titudo Jun 28. 2021

내 이두근을 알아봐 준 너

이집트_다합上 / 직장인의 드문드문 세계 여행


<첫 만남>

카이로에서 다합으로 넘어온 날 아침. 새벽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시차 때문인가. 배가 고파서 대충 씻고 호텔을 나서본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카페에서 벌써 아침을 먹고 있다. 나도 그들에 합류해 브런치를 먹는데, 옆에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다. 다합은 좀 심심한 동네인 것 같아 친구를 사귀어볼까 용기 내 말을 걸어 보았다. 언니는 나보다 몇 시간 정도 먼저 다합에 도착했고, 한국에서 일을 그만두고 큰 맘먹고 온 여행이라고 한다. 역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항상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언니는 카페 근처 한인 민박에 묶고 있다고 했다. 나는 호텔에 묶고 있다고 했더니, 한국 사람은 다합 오면 대부분 한인 민박으로 와서 다른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데 나처럼 호텔에서 혼자 지내는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언니와 나는 다합 해변가를 산책하다 수영을 하기 위해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다합은 해변가를 따라 각종 식당들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어느 곳을 가든 선베드가 비치되어 있어서 다합에 있는 동안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식당으로 가서 수영을 즐기곤 했다.

한창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집트 남자 S가 있었다. S는 카이로 출신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을 하고 휴가차 다합에 놀러 왔다고 했다. 인사말만 주고받고 가려했는데 서로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화가 길어졌다. 마침 최근에 둘 다 발리와 스리랑카를 다녀와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나쁘지 않은 여행 첫날이다.


S에게 연락이 와 그날 저녁 본인 친구와 같이 다른 해변으로 석양을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철딱서니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난 여행지에서 처음 본 사람을 잘 따라가는 편이다. 아직 몸 성하게 잘 살고 있기도 하고 이런 성향 덕에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딱히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 하지만 이 날은 S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피곤하기도 했고 아직 첫날이니 베트남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은 보겠지, 아님 말고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만난 언니와는 첫날 이후로 자연스럽게 두 번째 만남을 갖지 않게 되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생겼다>

S와 다녀온 여행지 외 또 다른 공통점을 찾았다: 프리다이빙. 나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 이론적인 내용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S는 한 번도 정식으로 프리다이빙을 배운 적은 없지만 몸으로 익힌 타입이었다. 프리다이빙은 혼자서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운동이다. 숨을 참고 물속 깊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소가 부족해 물속에서 기절하거나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이 프리다이빙을 하면 다른 한 명은 물 위에 머무르며 상대방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데 이때 각 상대방을 버디라고 부른다. 우리는 서로의 버디가 되어 주기로 했다.


S는 물속에서 내가 죽지 않게 지켜주는 것 외에 가이드 역할도 해주었다. 블로그에는 나오지 않는 값싸고 맛있는 현지 식당들을 데려다주고, 차로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 당시에도 블로그를 했더라면 갔던 식당들, 음식 이름 등 모두 기록해 놓았을 텐데. 그 순간을 즐기기 바빴다. 제일 좋았던 건 관광객들은 잘 찾지 않는 현지인들만 가는 해변에 데려다준 것이다.

북적대는 다합 해변가를 벗어나 차 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인적이 드문 조용한 해변이 나온다. 물도 깨끗해 프리다이빙 연습하기 딱이다. S와 종종 이 해변을 찾아가 자유로운 물고기가 되어 물속을 유영했다.


<내 이두근을 알아봐 준 너>


S와 처음 만난 날 그가 제안했던 석양을 드디어 같이 보러 가기로 한 날. 내가 프리다이빙 강습을 받는 동안 S는 여러 음식들을 준비해놓았다. 샌드위치, 닭꼬치, 과일, 커피 등등 내가 왜 이렇게 먹을 걸 많이 준비했냐고 물어보니 나랑 몇 마디 나눠보니 내가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먹을 줄 몰랐기 때문에 일단 많이 사고 봤다는 S. 통찰력이 대단하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S가 왜 이리 편하게 느껴지나 했는데 그는 말을 참 예쁘게 한다.


사실 석양을 보러 가기로 한 이 날, 우리는 해변가에 늦게 도착해 해가 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 다이빙 수업이 늦게 끝난 탓이었다. S에게 내 수업 시간 때문에 석양을 못 보게 돼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S는 그냥 괜찮다고만 했어도 됐을 텐데, 아니라며 자기가 음식들 사느라 시간이 늦어졌다고 오히려 본인 탓을 했다. 석양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도 속상하지 않았다.


이집트로 여행 오기 전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인터넷에 이집트 자유 여행을 검색하면 안전 여부 관련 연관 검색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로에 있을 때 이런 편견이 깨져 나한테 도움을 주려했던 택시 기사, 시장에서 만났던 재밌는 상인들 얘기를 S에게 들려주었다. S는 내가 낙천적이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즐거운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경험을 해도 부정적인 사람은 불평을 할 수도 있다며. 카이로에서의 내 경험이 더 특별해졌다.


베트남에서 크로스핏을 꾸준히 해와서 몸에 근육이 많은 편이다. S가 사 온 샌드위치를 먹느라 팔이 접힌 상태였는데, 나의 이두근이 저절로 나와버렸다. S는 내 팔을 가리키며 이게 뭔지 물었다. 그게 뭔지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만, 왜 내 팔에서 그것도 식사를 하다가 이두근을 보게 됐는지 궁금했으리라. S에게 나는 크로스핏을 하고, 근력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해줬다. S는 멋있다고 칭찬해주었고 나는 내친김에 삼두까지 보여주었다.


애초 다합 여행의 목적은 프리다이빙 자격증과 독서, 휴식이었는데 S와 놀러 다니며 독서, 휴식을 하지 못했다.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안 흘러가야 더 재밌다.  


下편 계속

사진: hye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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