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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2025년

by 이해린 Jan 05. 2025

모든 건 의미다. 더 큰 태양이 뜨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새해 일출을 보러 꼭두새벽부터 일어나고, 운동 효과가 더해질 것도 아니면서 1월 헬스장이 미어터지는 데는 필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모든 것들의 ‘처음’이나 ‘처음’하는 모든 것들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닐까. 2025년, 어김없이 새로운 해의 새로운 날이 밝았다. 별 거 없다, 시간은 원래 흐르니 그저 흘렀을 뿐이고, 사회적 합의로 탄생한 태양력이 넘어가 첫 달의 첫 날로 돌아왔을 뿐이다. 너무 건조한가. 나도 몇 해 전만 해도 새해 첫 곡, 새해 첫 영화, 새해 첫 어쩌고에 큰 공을 들였던 것 같기도 한데. 무엇이 나를 바꾸긴 바꾸었나 싶으면 그 또한 시간이다. 아무튼 건조한 바람이 훅훅 부는 와중에도 25년도 이루고 싶은 일을 적어보려 한다. 목표를 세우는 이유는, 흠, 딱히 없는 듯.


1. 좋아하는 음악, 영화와 소설 다시 들여다 보기

이 목표는 아마 까먹고 살아도 알아서 실현될 거다. 근간을 이루는 정체성이 감성충(충만할 충)이어서 좋아하는 음악, 영화나 소설을 찾아 다니는 건 무릎 반사처럼 인지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게끔 설계 되어 있다. 책을 읽을 때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나만 아는 전통이 있다. 여러 번, 수십번 혹은 수백번을 거친 예술 작품을 다시 들여다 보고, 이미 짜여진 감회록에 덧칠을 하는 것이다. 하나둘씩 덮여지며 이전에 못 보던 색채가 나타나기도 하니 전통을 이어나가는 건 재미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거기서 더 뻗어나가 새로운 숨구멍을 틔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의미 깊은 과정으로 느껴진다. 그러니 봤던 작품도 다시 보고, 보지 않았던 작품은 찾아보려 한다. 올해는 많이 느끼고, 여러 번 곱씹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

영화 중에서는 아멜리에.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다. 아멜리에가 아니더라도 영화 속 동네 주민1로 살아도 행복하지 싶다. 아멜리에를 처음 봤던 그 해부터, 언제였더라, 2012년인가, 그 이후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번 이상 아멜리에를 봤다. 아니면, 루카 구아디아노의 이탈리아 또는 에릭 로메르의 프랑스. 여태 둘러보지 않았던 저변에 놓여있는 한국의 독립 영화도 많이 찾아보고 싶다. 제철 과일을 찾아먹듯 제철 영화를 찾아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봄에는 장손, 여름에는 여름 이야기, 가을에는 엽기적인 그녀, 겨울에는 이터널 선샤인. 스스로 시네필이 아님을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계절맞이 영화를 하나씩 꼽는 것도 일이다. 사계절 동안 내 마음을 간질여 줄 작품을 떠올려 보니 벌써부터 가슴이 잔뜩 웅장해진다. 예술충(충만할충)의 촉촉한 가슴을 적시다 못해 폭삭 담가 지기를.

최근에 생일 선물로 턴테이블을 받았다. 스페인 그라나다를 여행하며 대책 없이 턴테이블을 샀고, 그 다음 날 여행에 함께한 룸메이트로부터 생일 선물로 악틱몽키즈의 엘피판을 받았다. 애지중지 바다 건너 온 턴테이블이 고장나고선 수리할 수 없어 슬픔에 빠졌었는데 별안간 작년 생일 선물로 다시 불쑥 등장한 턴테이블로 내 인생은 조금 더 풍성해졌다. 오아시스 라이브 콘서트 실황음반 엘피판도 함께 받았다. 턴테이블과 오아시스 실황음반이라니, 낭만이 과하다.

책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을 읽을 것만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이 책도 벌써 4회독을 했다. 아니면 이전에 두 차례 읽은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새로이 읽고 싶은 건 2019년에 읽기 시작한 ‘태백산맥’도 이제 대망의 10권만 남겨 두고 있다. ‘토지’나 ‘아리랑’ 같은 역사대하소설이다. 어마어마한 양에 압도당해 버려도 첫 권을 집어들기 시작하면 계속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게 되는 대하소설의 매력이야말로 미스테리 그 자체다. 한국 여성 작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나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 같은 책. 양귀자 작가나 한강 작가의 책은 물론이고 말이다.



2. 운동하기

수영은 주기적으로 다닌다. 러닝은 날씨가 좀 풀리면, 요가는 늘 생각만 하고 있다. 다니던 요가원이 이전한 뒤로 요가는 시들해졌다. 활 자세(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랑 물구나무 자세(시르사사나)를 처음으로 성공했을 때 정말 짜릿했는데 지금은…지금은…그냥 사바사나 인간이 되어버렸다. 수영은 서울숲 근처에 통창이 있는 실내 수영장 원정을 기필코 가는 것, 벚꽃철에 벚꽃 마라톤 10킬로미터 뛰는 것, 걸어서 20분거리 요가원 다니는 것을 일단 목표로 삼아본다. 일단 목표는 목표인데, 이룰 수 있을지 말지는 미정인, 그런 희끄무레한 목표. 원래 목표는 명확하면 안 되는 법.


3. 공부

언어 공부 해야 된다. 음, 이건 재밌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대학원 공부는, 이것도 뭐, 자의가 아닌 타의로라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수업을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게으름 피울래야 피울 수 없지 않으려나, 허허.


4. 건강 검진하기

3월 전에 병원 투어를 하면서 몸 상태를 체크해야한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따져보면 종합건강검진, 대학병원 정기검진, 예방적 차원에서의 안과/치과/부인과/내과 검진 등등이 있다. 특히 내과에서는 빈혈 수치 올랐는지 확인해야 한다. 귀찮더라도 치과와 안과는 꼭 가보려고 한다. 왜 인간 몸은 기계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는 없는 걸까. 전 세계의 이공계열 전공자 분들께서 밥 많이 드시고, 조금만 더 힘을 내주셨으면 좋겠다.


5. 창작물 생산하기

브런치 글도 더 자주 쓰고, 한창 열심히 짓다 만 단편 및 중편 소설도 탈고하고 싶다. 어떤 결과를 바라보거나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자 창작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미루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거나 창작물을 제작한다는 건 되새김질이다. 생각하고, 생산하고, 버리고, 비워내는 일련의 작업이다. 더 가벼운 자세로 더 묵직한 작업물을 손으로 만들어내고 머리로 다듬어 보도록 하자.


6. 스윙

하나의 영역을 스윙에게 바치다니, 나 어쩌면 꽤나 진심 어린 린디하퍼일수도…? 스윙이 재밌다, 근데 자신이 없다,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라고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냥 뭐 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거다, 조금 무책임한 자세와 임하려고 한다. 어쩌겠어, 난 채찍질이 가해지는 순간 무너져 버리고 마는 한 마리의 심신미약한 개복치인걸. 들여다 보지 않으면 눈치도 못 챌 정도로 가늘고 길게, 가늘기는 가늘되 끊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투명도 90프로의 린디하퍼도 여전히 린디하퍼입니다.


7. 경험하기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는 건 놀고 싶다와의 동음이의어가 될 수 있을런가. 난 노는 걸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노는 건 너무 소모적이다. 난 노는 것보다는 쉬는 걸 선호한다. 그렇지만 놀아야 보는 것도, 아는 것도, 먹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소모적인 놀이 활동을 하며 적극적인 배움 활동에 가담하도록 하겠다.


8. 친환경 삶 살기 내지는 체험하기

크게 자신이 없으므로 ‘체험‘이라는 표현을 급하게 덧붙여본다. 친환경 삶의 방식을 내 일상 생활의 전반에 두루두루 적용해 보고 싶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할 것이다. 누가 들으면 ”그게 친환경? 웃기고 자빠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소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는 시작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9. 내 마음대로 살기

내 인생인데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짜증난다. 난 그냥 내 마음대로 살란다. 아, 진짜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어쩌라고. 제발 저 좀 냅두세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산다. 2025년, 가보자고.


10. (적당히) 내 마음대로 살되,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 존중하기

가긴 어딜가. 내 마음대로 살다가는 골로 가겠지.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하는 날 붙잡아 주는 수많은 분들, 항시 수고 많으십니다. 항상 이 은혜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게요. 여러분의 잔소리는 사랑의 속삭임이요, 여러분의 성화와 재촉은 응원의 손길이여요. 2025년 화이팅, 다들 복 많이 받으세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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