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페스티벌
<두 낫 크로스, 선을 넘지 마시오.>
선은 넘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선을 넘으면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상대로부터 도덕적 질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나아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여겨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난 여태까지 선을 넘지 않는 행동 양식과 방법을 연마했다. 상대가 그어놓은 선을 존중하면서, 그 선 안에서 상대와 어떤 양상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고로, 내가 학습하고 알아왔던 선은 일종의 자기 보호 구역인 셈이다.
다른 종류의 선도 있을 것이다. 지금 딱 떠오르는 건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웠던 마지노선이다. 세계사 과목을 듣지 않았던 나는 분명 세계 2차 대전 때 생겨난 용어를 수업 시간에 다룰 이유가 없었을 텐데 어떤 계기인지 사회 선생님께서 마지노선이라는 용어를 곁다리로 끼워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본 수업 내용과 무관한 주제였으므로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한 장군이 독일군의 침공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독일 국경 사이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방어선은 당시 요새 건설을 주장한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따 마지노선이라고 불리게 된다. 실제 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 독일은 이 방어 지대를 우회하여 프랑스 수도를 점령했기 때문에 마지노선은 크게 유용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고 한다.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마지막 선, 마지노 선도 선이다.
그러므로, 선이 그어진다는 것은 영역이 나뉜다는 것이다. 나와 타인을 가를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을 나눌 수도 있으며, 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아닌 곳을 구분 지을 수도 있다. 선을 넘는다는 건 큰 용기를 동반하는 행위다. 나를 떠나 너에게 가는 것이고, 안정 지대를 벗어나 미확인 지대로 향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현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어진 선을 넘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고, 인지적 이해 과정을 통해 과거와 미래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거창하게 들릴 수는 있더라도 선을 한 번 넘으면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선 넘는 기후>
온도계에도 선이 그어져 있다. 선이라기보다는 빗금에 가까울 것이다. 몇 도 이하는 위험, 몇 도 이상도 위험. 몇 도와 몇 도의 빗금 사이에만 있어야 인간은 양호한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린 이러한 정보를 학습해 알기도 하고, 경험으로 체득해 알기도 한다. 인간은 온도가 변하는 생물체니 온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건 더 거대한 생물체인 지구도 마찬가지다. 지구도 몇 도 이하로 떨어지면 위협을 받고, 몇 도 이상으로 가면 위기에 처한다. 그 위험 지대에는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것이 인간 개인의 온도 변화와는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후 위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 물으면 그렇다, 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도 없고, 확신도 없어 아주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거나 그 물음을 담은 설문지에 ‘조금 그렇지 않다’보다는 ‘조금 그렇다’ 란에 표기할 수 있는 정도다. 기후 위기 담론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많다. 초록색, 자연, 환경보호단체,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 멸종위기종, 기타 등등. 학교에서도 매년, 매 학기, 매단원마다 작고 크게 기후위기와 관련된 주제나 활동이 직간접적으로 소개되기에 ‘환경’과 ‘자연‘하고 내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엮여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아는 게 많이 없다는 속마음과 더없이 부족한 생활 속 실천력 때문이다. 모르면 알아야 하고, 알면 행동해야 한다는 진실된 명제에서 나는 아는 것도 그다지 없고, 행동하는 건 더더군다나 없다. 그러니 환경 주제가 등장하면 슬그머니 입을 오므릴 수밖에.
기후 위기는 재미있는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난 언제나 핸드폰 날씨 어플로 들어가서 이번 주말 날씨를 알아본다. 주말에 바깥나들이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는 딱히 흥미로운 내용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할머니의 용궁 여행’을 갖고 수업을 하면 애들도 나도 할 말이 많아진다. 기후 위기는 어쩜 그렇게 암울하기 짝이 없을까 싶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에서 빙하 위를 저벅저벅 걷는 펭귄이나 바다를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는 바다코끼리 모습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기후 위기 자체에 압도당한다 한들 기후 위기를 대면하려는 개인의 노력까지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일상 속에서도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고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갖고 있음에 분명하다. 아무리 소소하고 보잘것없다 한들 말이다. 여전히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잔을 쓰고, 재활용을 제멋대로 할 때도 있다고 해도 말이다.
<꼼짝 마, 너는 선을 넘었다!>
기후위기 페스티벌이 있다는 건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인스타 게시물을 휘적이는 가운데 뜬금없이 뜬 광고에 호기심이 생겼다. 한두 번 뜬 게 아니라 내가 인스타를 열 때마다 광고 페이지가 뜨길래 이건 가라는 신호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페스티벌이면 혼자 가면 조금 뻘쭘할 수 있겠다 싶어 친구 한 명을 섭외했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와 환경보호에 조금은 관심 있고, 조금은 무지한 듯한, 하지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모든 걸 배우고자 하는 친구기에 부담 없이 갈 것을 명령했다. 친구는 재밌어 보인다고 초대에 응했다. 그리하여 아는 건 없지만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만 같은 기후위기 페스티벌에 가게 되었다.
성수동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지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널찍한 스튜디오형 컨벤션 센터에서 행사는 진행되었다. 행사 취지에 맞게 당연히 일회용품을 지양해야 하므로 사람들은 텀블러를 들고 와 물이나 음료를 마실 수 있었고, 아주 근사한 간식도 마련되어 있었다. 우린 이미 점심을 거하게 먹고 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아예 점심 끼니를 해결해도 될 정도였다.
행사는 학교 수업처럼 진행되었다. 기후 위기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 개별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관점을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첫 시간은 윤순진(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교수님과 한제아 학생과의 대담이었다. 현재 초등6학년인 한제아 학생은 국내 첫 기후 소송을 건 원고 19명 중 한 명이다. 2020년 소송을 제기한 이후, 4년이 지나 지난 24년 8월 헌법 재판소는 우리나라 정부의 기후 대응책인 탄소중립기본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로 국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라고 한다. 윤순진 교수님과 한제아 학생은 번갈아 질문을 던지며, 거대하다 못해 거룩해 보이기만 하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개인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두 번째 시간은 경제적 관점에서의 기후 위기다. 솔직히 이 시간은 나한테도 위기였다. 경제문외한이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아서 그런지 경제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대신 강연자가 거듭 강조해서 청중에게 전달한 부분은 개인의 경제적 이익과 환경을 생각하는 이로움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으므로 친환경적으로도 경제 활동이나 수익 창출을 역동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부분이다. 환경 문제는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짊어져야 할 과제인 데다가 하나의 통일된 논리로 환경보호를 외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자본의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다음으로, 세계적 관점에서의 기후 위기.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기후 위기는 지구상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국 출신 탐험가인 제임스 후퍼,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에서 근무하는 우드깃 사츠데이브, 환경 이슈 보도 기자인 박상욱 JTBC 기자가 전 세계가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각 나라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오갔던 이야기 중에서는 환경 위기라는 동일한 범지구적 난제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와 각 국의 정치 지도자와 정부 내각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나라별 행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패널 중 한 명이 기후위기는 ‘전 세계 조별과제’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자고로 조별과제는 공평치 않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누군가는 무조건적 편승을 할 것이며,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는 무조건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한 배에 탔다. 이 배가 암초에 부딪힐지언정 가라앉지 않고, 순항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망망대해에서 ’지구‘호는 어떤 항로를 택해 나아가야 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터가 바라보는 기후 위기는 어떠할까. 평소 유튜브 콘텐츠나 독서를 통해 간접적 경험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수업이다. 다큐멘터리 ’붉은 태양‘을 연출한 구상모 피디, 웹툰 ’기후위기인간‘ 구희 작가, 진행자이자 환경 콘텐츠 ’산으로 간 조별과제‘에 출연 중인 콘텐츠크리에이터 이승국이 나와 질문과 답변 형식의 토크를 이어 갔다. 이들이 전해준 이야기 중 환경위기에 대응한다는 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것이고, 숭고한 과업이 아닌 하나의 작은 과제를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는 메시지는 내게 위로로 다가왔다. 내 눈에는 환경 위기 문제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실마리를 얻기 위해 힘을 쏟는 사람들처럼 보인 와중에 그들도 사실 나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고, 때로는 무지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실천 의지를 더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동기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 더 떳떳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이라도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이 행동은 남들과 비교할 성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를 띠어야 한다. 환경 분야에서 일컫는 ‘지속 가능성’은 내가 환경 보호를 위해 몸에 익혀야 할 행동 특성인 것이다.
<나의 선은 어디에>
그럼에도 내 일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난 여전히 플라스틱 물병에서 물을 마시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많이 쓰지도 않을 물건인 걸 알면서도 덜컥 사버리기도 하며, 머지않아 후회를 해버린다. 하지만 때때로 텀블러를 갖고 다니고, 배달 음식 대신 직접 요리해 먹는 날이 대부분이 되었다. 소비 이후에 후회가 따른다면 반성의 시간을 갖고 정신 차리자고 다짐한다, 작심삼일도 3일마다 하면 습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선.
모든 전문가와 환경 활동가들은 입모아 기후위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주제라고 한다. 회피형 대표주자인 나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마주 보아야 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미 도래했는데 아직도 부정 단계에 머물러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한 걸 수도 있다. 기후 위기는 오지 않았다면 조만간 올 것이고, 왔다면 가지 않고 머무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나의 선은 어디 있는가. 내 발치에 있다. 이토록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놀라울 만큼 소극적이고 치사해져 버리는 위선자요, 소인배다. 고백하건대, 기후위기는 아직도 어렵고도 거대해 정면 하기에는 많이 겁이 나는 주제다. 나는 아직도 한 발짝 비껴 서있다. 그래도 나머지 한 발은 그 선을 밟고 있다. 일단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내일은 더 나아가고, 그다음 날은 더 멀리 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