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1주 차
바르셀로나의 낮은 길었다. 해는 일찍 뜨고 느지막이 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낮은 더 길었다. 시차 적응 기간 동안 매일 같이 새벽 다섯 시에 벌떡 일어났다. 눈이 떠지면 더 이상 감기지 않을 게 뻔히 보일 정도로 말똥말똥했다. 그러니 아침부터 시간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게다가 새벽녘의 조용하고 한적진 캠퍼스는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아예 멈추어 버리는 듯도 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 자치 대학교 캠퍼스는 정말이지 수도원과도 같이 대자연 속에 덩그러니 있었다. 이름만 바르셀로나였을 뿐 시내까지 나가는데 지하철도 아닌 무려 기차를 타야 했던 거다. 구글로 오기 전에 봤을 때는 주변에 녹지가 좀 있어보인다, 정도 였는데 와서 그 안에 있어보니까 녹지 정도가 아니라 세렁게티였다. 줄곧 청정 지역에 사는 건 어떨까, 도심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은 어떨까, 상상했다. 이제 그 상상보다 더 상상 같은 풍경은 현실이 되었다.
도착한 뒤 이튿날 아침, 일어나 부엌에 혼자 나와 아침 상을 차려 먹었다. 첫날은 구호 식량으로 친구가 보내준 햇반과 동원 참치였고, 그다음 날부터는 장을 보기 시작해 빵과 버터, 햄이 올라왔다. 학교 캠퍼스 내에는 슈퍼 마켓이 하나 있고, 기숙사에서 기차역 부근으로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규모가 조금 더 큰 마트가 하나 있다. 교내 슈퍼마켓은 가깝고 편하지만 종류가 제한적이고, 기차역 마트는 조금 더 걸어가긴 해도 식재료 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일주일에 걸쳐 반경을 넓혀가며 마트를 방문했다. Sant quirze 역 바로 앞 Al Campo도 있고, Sant Cugat역에 내려서 좀만 걸어가면 나오는 Mercadona를 가도 된다. 어디서 무엇을 사는 게 좋은 지도 마트 탐방을 다니면서 머리에 잘 넣어 두었다. 식재료는 두둑하게 냉장고에 넣어두고, 칼이나 프라이팬, 도마 같은 식기류도 필요한 만큼 준비했다. 게다가 오가는 유학생이나 교환 학생들과 바르셀로나 당근 활동도 열심히 했다. 상태가 제법 좋은 밥솥과 전기담요를 싼 값에 얻었다. 한인마트도 당연히 걸음 했다. 장바구니에 너무 많이 담았더니 한도 초과가 떴다. 새로운 곳에서 살림 밑천부터 마련해야 하니 한 번 집 떠날 때마다 배낭이 몸을 잡아먹을 듯이 짐이 많아지는 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덕에 일주일 만에 나름 보금자리를 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살림살이를 차차 불려 나가며 동시에 해나간 것은 거주증 발급을 위한 서류 준비였다. 거주증은 각 지역 관할 경찰서에서 필수 서류를 제출하면 최소 2-3달 내지는 최대 영겁의 시간 동안 심사하여 발급해 준다. 학생 비자는 한국에서 받아왔다면 그 비자로 신분을 증명하여 스페인에서 체류할 수 있음을 보장해주는 것이 외국인 거주증인 것이다. 국제 학생 지원처에 가보니 비자 발급 후 출국이 늦어 비자 만료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 굉장한 겁을 먹었다. 하지만 웬만한 서류는 이미 갖고는 있었고, 몇 가지 현지에서만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를 처리하면 되는 거였다. 시청에서 발급받는 Empadronamiento라고 하는 거주증명서, 은행에서 떼는 세금 수납 영수증,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발급받는 서류 양식이었다. 국제 학생처에서 성심성의껏 도와준 데다가 가는 행정 기관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서류 발급 과정이 수월해 금방 서류 일체를 거머쥐었다. 이제 경찰서에 서류 제출하러 가는 Cita (예약)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1주 차의 대망의 장식은 지도 교수님과의 정식 대면 만남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한 달에 한 번씩 화상 회의를 진행하며 첫 논문이 될 Scoping research와 향후 연구 설계 과정을 함께 해주셨다. 물론 이 작업은 온라인이었기에 UAB 소속의 에밀리 교수님 외에 이전 석사 시절 지도 교수님이셨던 UCO 소속 엘레나 교수님께서도 외부 초청 지도교수 자격으로 매번 함께해 주셨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노래를 들으며 교육학과 건물로 향했다. 내가 사는 빌라동에서 도보 20분쯤 걸리는 곳이었어서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50분 일찍 나섰다. 너무 이른 시각에 문을 두드리고 싶지는 않아 바깥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이 때는 기를 모으기 위해 에스파 노래를 들었다. 귀에선 위, 위플래시, 위, 위, 위플래시 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혜륀, 혜륀, 하고 새침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응, 뭐지, 하고 고개를 드는데 교수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