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입성
바르셀로나에 왔다. 내가 왔다. 드디어, 이 몸이 오셨다. 박사 과정을 시작한 건 작년 가을 학기였지만 교수님과 미팅은 당분간 원격으로 진행하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수업도 온라인으로 듣고, 한 달에 한 번씩 자도 교수님들과 연구 과정에 대해 피드백을 갖는 회의도 꾸준히 갖고 있었다. 하지만 원격 수업은 편리하긴 해도 한계가 있었고, 대면 수업이나 학사 일정을 소화해 낼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6월 2주에 진행되는 연간 발표회는 대면 참석이 필수였다. 그리하여, 5월 9일 정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 버스에 몸을 싣고 한 시간여를 달려 인천 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짐을 부치려고 하니 무게가 초과 되었다고 지상직 승무원이 근무하는 데스크에서 직접 요금을 추가하고 부쳐야 한다고 했다. 어쩐지 조금 묵직하긴 했었다. 무게를 재고 나자 승무원에게 '이대로는 못 가신다'라는 말을 들었다. 안돼요, 저 가야 돼요. 23킬로그램까지 위탁 수하물로 부칠 수 있고 그 이상은 요금을 내야하는데 내 수하물의 무게는 무려 34킬로였다. 숫자를 듣고 나니 내가 이걸 어떻게 집에서부터 끌고 왔나 싶었다. 30킬로그램까지는 추가 요금을 내고 부칠 수 있어서 벨트 위에 캐리어를 올려둔 채 주섬주섬 하나씩 잡히는대로 빼기 시작했다. 승무원님께서 2킬로그램은 눈 감아주셨다. 짐이 이렇게 많으셔서 힘드실텐데 어떡해요,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라는 말씀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막상 출발하려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는데 승무원님의 작별 인사를 들으니 잔뜩 쪼그라든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해서 라운지로 들어왔다. 면세를 구경하고 자시고, 그럴 정신이 없었다. 나는 충분한 휴식과 정신 수양으로 긴 인고의 비행시간을 견뎌 볼 요량이었다. 한국 땅에서의 마지막 끼니는 물론 라면. 라운지에서 푹신한 자리를 골라 잡아 누워서 커피도 마시고, 아침밥도 먹었던지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라면을 먹지 않으면 후회할 것을 직감했다. 평소에 라면을 먹지 않은데도 절로 손이 가는 걸 보면 라면은 만인의 무의식적 비행푸드인게 틀림없다.
자리는 10A였다. 프리미엄석을 추가구매하면 라운지 이용과 수하물 우선수취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자리가 널널하다. 가면서도 내내 넓은 좌석 타는게 천만다행이라고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12시간 비행은 잔혹하리만큼 길었다. 물론 기나긴 비행 시간 중 맺은 재미난 연도 있었다. 옆자리 탑승객들과 말동무가 된 것이다. 이 분들은 자매지간으로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가는 장장 한 달 반의 여정을 떠나는 거라고 하셨다. 더 놀라웠던 우연은 이 분들의 따님들이 모두 초등교사였다는 것이다. 휴직을 하고 박사 과정으로 유학을 간다는 내 사연을 전하자 이 분들께선 큰 흥미를 보이셨다. 그래서 이 분들에게 유학 휴직을 하게 된 절차를 정리해 공유하겠다고 제안하니 이메일 주소까지 교환하게 됐다. 어쩌다가 이 비행기에 함께 탑승해 옆 자리를 나란히 앉게 되었는지, 이렇게나 우연히 만난 사람들도 어찌저찌 연결고리가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해졌다.
서역 땅에 내려서 34킬로그램 짐을 찾게된 과정은 더없이 수월했다. 후딱 달려나온 덕분에 수하물을 바로 찾을 수 있었고, 또 출구로 나오자마자 택시 탑승 줄에 대기해 택시에 올라탔다. 내 30킬로그램 짐을 든 택시 기사님은 잠시 휘청거리셨다. 그러게 무겁다고 같이 들자고 했잖아요, 기사님. 기숙사까지는 30분을 달렸다. 택시 요금은 60 유로, 생각보다 요금이 쎘지만 낯선 환경과 극심한 피로로 한 시라도 빨리 기숙사로 들어가서 짐도 풀고 씻고 싶었다. 한참 달린 도로도 푸릇한 초목이 우거졌었는데 기숙사 캠퍼스를 둘러보니 이거 원, 국립 공원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 광활한 녹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 곳이 앞으로 몇 년간 나의 보금자리이자 진리의 상아탑이 되어줄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녹빛이 진하게 물든 이 곳이 포근하게 날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저녁 바람은 서늘했고, 사방천지가 온통 푸르렀다. 석사 과정에 이어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 두 번째 학업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선 상에서 직감적으로 가진 느낌이 좋았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경험치를 쌓아나게 될지, 학업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그 어느 것도 미리 알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저 지금 내 안에 차오르는 충만함을 믿고 미지 속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