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디합을 좋아하세요…
린디합이란 무엇인고, 린디합은 스윙 댄스의 하위 장르로써 1920년대 미국에서 유래된 파트너 댄스다. 주로 스윙재즈음악에 맞추어 춘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동호회가 만들어져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즐기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스윙 문화가 만들어져 있다. 스윙이고 자시고, 춤과는 매우 거리가 먼 삶을 살았으나 어쩌다가 린디합에 나도 모르게 입문하게 되었다. 심지어 린디합과의 처음도 스페인이었으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스페인은 나와 궁합이 은근 잘 맞는 나라인 듯도 하다. 가장 처음에 린디합울 목격한 건 석사 수업에서 친구가 린디합을 이미 추고 있는 댄서였기 때문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는 친구 따라 빠(쏘셜 댄스를 하러 가는 곳)를 갔다.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그 멋짐을 잊지 못하고 2023년 겨울, 서울의 한 동호회에서 린더벅 수업을 시작하며 린디하퍼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라마다 스윙 문화는 비슷하고 다른 점이 있는 듯하다. 그걸 직접 체험해 가며 비교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다. 한국은 동호회 문화라고는 하지만매우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전업 댄서가 아닌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취미 생활로 갖는 경우도 흔하지만 다들 어찌나 열정을 불태우는지 모른다. 그런 불꽃화염댄서들이 몸을 내던져 일구어낸 덕분인지 우리나라는 스윙 문화가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해외에서도 한국 스윙은 정교하고 기술적이라고 평한다고 들었다. 이 정도면 스윙도 K패치를 붙여 케이스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한국에서 일 년여간 스윙 동호회 생활을 하며 소중한 사람과 집 안에만 있었으면 절대 닿지 못했을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나에게는 지극히 낯선 영역으로 매 경험이 신선한 자극제였다. 별천지, 그 자체였다. 빠를 들어가는 순간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고 공간이 왜곡되는 것처럼 느껴지니 바깥세상과의 단절이라고도 여겨질 때도 있었다. 모든 걸 설렁설렁 해내는 탓에 스윙도 온몸과 영혼을 바쳐 할 수는 없었지만 꾸준히 하나씩 해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 정도는 가슴켠에 늘 자리해 있었다. 한창 재미 보고 성장할 시점에 출국 준비를 하게 되고 막판에는 개인적인 일상이 바빠져 스윙생에 성실하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생각났다. 빠에 입장할 때면 한 꺼풀씩 벗겨지던 현실 감각과 걱정근심이 한 발짝 물러서던 일시적 해방감.
그래서 내가 찾아 나서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의 빠, 없을 리가 없다. 전 세계는 린디로 이어져있다는 강한 합리적 의심으로 인스타그램을 뒤졌다. 그랬더니 아주 유용한 사이트가 하나 튀어나왔다. https://www.bcnswing.org 이곳은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스윙 행사를 한데 모아놓은 포럼이다. 달력을 보면 거의 매주 하나씩 있는 야외 쏘셜 행사나 각 아카데미에서 주관한 스윙 행사 등이 일자, 장소, 자세한 내용과 함께 표시되어 있다. 달력을 보니 야외 행사가 다음 날 예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캠퍼스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 이건 무조건 가보라는 계시다.
스윙 동호회 생활을 하면서 강습을 듣거나 때때로 행사에 참석할 때도 무조건 동기(같은 기수를 갖고, 린디합 첫 시작을 함께 시작한 사람들)를 찾는 나였다. 이렇게 구만리 낯선 타역에서 홀홀부지로 야외 쏘셜을 나가게 될 줄이야. 사람이 목마르면 스스로
우물을 판다고, 딱 그 짝이었다. 어떤 걸 기대해야 될지 모른 채 구글 지도에 목적지를 찍고 나섰다. 용감한 코리안 린디 하퍼로 거듭나야 한다, 스스로 자기 암시를 걸었다.
역에서 나와 목적지에 가까워져 가자 라이브 밴드의 소리가 들려왔다. 야외 쏘셜 행사라고 밴드까지 부를 줄이야! 산뜻한 놀라움을 안고 가보니 쏘셜 장소는 광장 같이 널찍한 곳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밴드 세션이 스윙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꽤나 북적였다. 이게 얼마만의 쏘셜(빠에서 스윙 댄스를 배우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유롭게 춤추는 것)이야! 감개무량했다. 스페인에 와서 이제 스윙은 한동안 못 하게 되려나, 다시 하고 싶으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소소한 걱정고민이 있었는데 찾다 보면 역시나 길은 있었다. 누군가 내 팔을 툭툭 쳤다. 춤춰요? 씨, 씨! 그 사람 팔을 붙잡고 달려 나갔다. 저 나름 무럭무럭 자라나는 코리안 린디하퍼랍니다.
이제는 수업을 듣고 싶어졌다. 한국 동호회에서는 연간 쉬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수업과 커리큘럼이 제공된다. 게다가 서울에는 지역 이곳저곳의 여러 빠에서 요일 별로 쏘셜이 있다. 체력이 받쳐주고 열정이 대단하다면야 일주일 내내 밤낮으로 스윙생을 즐길 수 있다. 지난번 야외 행사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선생님에게 강습을 제공하는 아카데미를 추천받았지만 한 번 방문하고 허탕을 쳤다. 안 되겠다, 목이 말라 우물을 팠건만 물 한 방울 안 나온다. 팔을 걷어 부치고 더 깊게 파는 수밖에.
각고의 검색 끝에 갈만한 아카데미 몇 군데를 추려냈다. 두 군데는 사전 답사를 해본답시고 쏘셜이 있는 날에 가서 아카데미 위치, 동네 분위기, 모이는 사람들 규모 등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국 한 군데를 낙점했다. 내 이곳에 린디합 열정을 불태우리라. 위치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수업 종류가 많아 아카데미 규모가 어느 정도 커 보였다. 다른 쏘셜 장소에서 이곳을 추천하는 리더도 있었으니 더더욱 믿음이 갔다. 일단 시작은 여기서부터 하자, 마음을 먹었다.
낯선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왁자지껄한 곳. 분명 내가 자의적으로는 발도 안 들일 공간인데 린디합은 정신없고, 소란도 그런 소란이 따로 없는데도 계속 찾게 된다. 스윙을 하고 있자면 내 마음은 한없이 들뜨면서도 그 와중에 묘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설명하기 어려운 희한한 군데가 있어 자꾸만 찾게 된다. 떠들썩한데 집중해야 하고, 요란한 와중에 정갈한 맛이 있어서.
시몽은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바르셀로나에게 묻는다. 린디합을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