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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May 10. 2021

Star-gazing

Rua de Washington

친구네 밴드의 공연이 임박했다.

그룹을 표현할 별다른 말이 없어서 친구네 밴드라고 밖에 묘사할 길이 없는 게 통탄스러울 따름인 게 엊그제 처음 만난 사이가 있는 밴드인 것 치고는 꽤나 질서 정연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객원보컬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사실 밴드의 일부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그 밴드 멤버들과 서로 합을 맞춘지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이미 흘렀으므로 그건 차치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나머지  명은 악기를 연주하는 세션인데  넷은 각각 바이올린, 기타, , 더블베이스를 연주한다.

사실 비슷한 예술가적 면모를 강하게 내비치는 외양들이어서 이름과 실제 사람을 연결 짓기가 떠올릴 적마다 늘 아리송하지만 한 번 시도를 해보자면 이렇다.

소매 끝 올이 다 풀린 노란 니트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피터

바닥에 앉아 기타를 퉁기는 맥스.

나머지 플룻과 더블베이스는 올리와 졸리인데 이름마저 하필이면 거기서 거기인지라 누가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당시에도 몰랐으니 지금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초등학교부터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는 올리와 졸리 듀오 공연장 내에서도 엮인 굴비처럼 쌍으로 같이 다닌지라 더더욱이나 분간이  갔다.

옥상 공연장은 이전 밴드가 공연을 마무리하며 박수갈채를 받고 있었는데 그제야 탁 트인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시간대가 바뀌면서 차차 하늘이 오렌지 색과 푸른 라일락 계열의 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마 다음 차례는 친구가 나오겠지, 조금 찬 바람 기운이 감기는 양 손을 비비며 생각했다.

마침 바로   공간에는 아마 밴드 세션이 연주할 악기들과 스탠드 마이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싼 멀대같이 키가   명의 영국인들 사이에 친구는 둘러싸여 있었고 사색이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완연했다.


더블 베이스를 퉁기는 소리가 선연한 저녁 공기를 가르며 조금은 서늘한 바람 위에서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어 귓가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얼마 만에 들은 선율인가, 이게 도대체 얼마나 오랜만에 피부로 직접 부대끼는 음표들의 피크닉인가 황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유튜브 플레이스트에 노래를 추가하며, 엘피 디스크 위의 둘레를 헛도는 바늘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거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은 우리의 향유물에서 오롯이 개인의 전유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귓바퀴에 먼지처럼 앉은 외로움이 쌓이다 못해 딱딱한 고독이 되어버렸을 무렵에 내 귀를 간지럽히는 멜로디의 고동은 어떤 자극보다도 쾌락적이었다.

어둠은 깊어만 가는데 내 시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자리에서 발을 떼기가 아쉽고 괜히 봤던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느라 부산스러웠다.

듬성듬성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도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미지근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였다면 혹은 그 사람들이 전부 두어 걸음씩 더 가까이 내 곁에 서있을 수 있었다면 아마 공기 중에 끈적함이 묻어 나올 정도로 후덥지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는 날이고, 그건 다음 주나 다음 달에도 도달하지 못할 온도일 거라는 추측이 머리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다음 해가 되면은 돌아갈 수 있을까, 해가 쨍쨍 떠 있는 날에도 숨을 들이마시면 옅은 습기가 배어 있는 축축한 공연장에 말이다.

그 공연장에 운이 좋으면 펜스를 잡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멀찍이 동떨어진 자리에 서서 저 위에 눈이 따가울 정도의 조명 빛을 쐬고 있는 가수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참 방방을 뛰고 땅바닥에 서있으면 짜릿한 전류에 데인 듯 움찔거리는 발바닥처럼 공연이 끝난 뒤에도 몇 시간이나 진정되지 않는 가슴과 웅웅 거림이 가시지 않는 귓가를 연신 매만지던 그런 날들이 언젠가는 다시 오려나.

한산한 옥상 위에는 낮고 음험한 더블 베이스의 자락 위에 바이올린의 날카롭고 경쾌한 선율이 포개어지고, 그 사이를 거리낌 없이 가로지르는 기타 소리와 풀잎 위를 또르르 구르는 이슬처럼 가벼운 플룻의 연주는 그 어떤 기계로 찍어낸 음보다도 선명하고 가깝다.

지그시 귀를 타고 전해져 오는 음들의 고저는 예측할 수 없고, 팽창과 수축을 거듭해나가며 확장되어 가는 이 곳의 음악은 해적섬 아래에 묻힌 총천연색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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