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은 말 그대로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다.
길을 걷다 보면 평지보다도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경사진 길들을 걸어야 될 때가 더 많을 정도로 한가로운 산책을 하기에는 만만찮은 도시다.
어느 동네로 가면 발이 좀 편하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은 진작에 넣어두는 것이 좋은 게 어디로 가든 골고루 언덕이 분포되었으니 차라리 산보보다도 운동을 나선다고 미리 마음을 다잡는 것이 좋다.
이런 무지막지한 경사는 사진 상으로는 그 예견된 고통과 숨 가쁨이 잘 느껴지지 않기에 직접 두 발로 걸으며 경사를 온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다.
경사길은 모두 같은 각도와 방향으로 나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길들은 짧지만 더 가파르기도 하고, 다른 길들은 더 길지만 다 올라오고서야 내가 걸었던 이 골목길이 높은 지대였구나 나중에서야 깨닫는 잔잔한 오르막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영토 분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던 옛날 중세시대를 생각하면 이토록 방어와 수비에 적합한 지형이 또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서유럽과 남유럽은 광활한 평야를 이용한 낙농업이나 플랜테이션 재배 농사를 주 수출업종으로 삼는 것에 비해 포르투갈은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평평함과는 거리가 먼 지형을 소유했으니 단연 특이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전설에 따르면 리스본은 7개의 거대한 언덕에 의해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그 언덕들의 이름은 Sao Roque, Sao Jorge, Sao Vicente, Santo Andre, Santa Catarina, Chagas, 마지막으로 Sant Ana이다.
그러니까 이미 어쩌다 한 번 나오는 언덕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마을들이 언덕배기 사이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형성이 된 것이다.
이처럼 특이한 지형에 얽힌 흥미로운 지명들을 리스본 도심 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높은 지대에 형성한 동네를 높은 동네(Bairro Alto), 그 바로 아래로 내려오면 낮은 동네(Baixa de Lisboa)라는 지명을 붙인 곳이 있는데 그 근방이 시내 중심가기 때문에 리스본을 온다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걸음을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있다.
그러고 보니 시내로 놀러 간답시고 어쩌다 나온 오르막을 타다 보면 높은 동네에 도달하고, 꼭대기 지점으로부터 다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내려오다 보면 낮은 동네에 안착하게 되는 신기한 루트를 탈 수 있는 것도 리스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높은 동네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저 멀리로 강변이나 그 옆 동네인 알파마까지 보일 때가 있다.
알파마는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구시가지로 그 유명한 28번 트램도 이 동네를 달리고, 강가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점인 성 조르제 성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번에 친구랑 로즈마리를 채집한답시고 여기저기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친구가 알파마에 자기가 옛날에 살던 동네에 로즈마리를 심어놓은 정원이 있다고 해서 강변까지 걸어온 적이 있었다.
내가 로즈마리 한 줄기 수중 재배한다고 1시간을 내리 걸어야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꽃집 가서 사고 말 일인데 차마 그 지경까지 이를 줄은 모르고 친구를 따라나섰던 것이다.
게다가 역시나 오르막길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가는 길도 수월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차저차 도착하게 된 알파마에서 친구의 예전 집은 바로 강변 맞은편 빌딩에 위치해 있었다.
친구 말로는 저녁에 맥주 한 캔 하러 매번 나오던 곳인데 집 나오면 마주치는 곳이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 넓은 강줄기여서 딱히 리스본의 다른 곳을 돌아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또 하나는 아무래도 골목길의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가끔은 우버를 이용해서도 집 앞까지는 오기 어려워서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바깥을 돌아다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말에 엄청난 동감을 표하게 되는 건 친구가 그 말을 하기 조금 전에 굽이진 계단길을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이 집에 엄청난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강변의 풍경과 맞닿아 있는 바다의 길목을 가만히 서서 바라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하늘이 눈 시리게 파란 오늘 같은 날만 해도 높이가 다르게 계단식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의 지붕은 주홍빛으로 붉고, 그와 대비되는 푸른 강과 바다는 땅과의 경계선 너머로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실 고지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경의 가장 큰 매력은 땅 위에 서서 올려다볼 때보다도 더 확장된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지도처럼 도시가 한 눈으로 내려다보이고, 그 위치와 이어지는 지점들을 연결시키다 보면 거미줄처럼 얽혀나가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를 마주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봄까지만 해도 이틀에 한번 꼴로 러닝을 뛰러 공원으로 나갔는데 심지어 그 공원마저도 고지대의 고지점에 있어서 전망대 부근에 서있으면 강까지 일직선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궂어 구름이나 안개가 껴있으면 마치 허공에 떠있는 느낌까지 주어서 날씨마다 공원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이런 언덕진 부근들을 miradouro라고 부르는데 상승 지면에 위치해서 그 주변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뷰포인트를 제공하는 공터가 작거나 크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당장 구글 맵에 검색해도 나오는 미라두로는 거의 서른 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데 하나에서 내려오면 다른 하나로 올라가는 데다 한 길로 올라가더라도 골목만 꺾어도 다른 미라두로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 수 있으니 오히려 목적지에 속박되지 않고 발이 가는 대로 올라간다면 멋진 풍경은 보장된 바다.
오히려 정해놓지 않고 터벅터벅 나아간다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넋을 놓을 수 있는 광경을 시야에 담을 수도 있으니 그것 또한 리스본의 묘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리스본 내를 발로 돌아다니다 보면 오르막길이 끝도 없이 나온다는 순간들이 올 텐데 그때는 꾹 참고 끝까지 오르면 된다.
올라가는 길은 종아리가 배길 정도로 아픈 구간이 분명 나올 것이다.
내려가는 지점도 만만치 않은 것은 보행자 도로마저 돌길로 되어있어서 미끄러지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오르내리는 길 주변을 살펴보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길쭉한 건물들과 창문마다 널러져 있는 빨래들이 보여주는 사람 사는 곳의 정감, 그 가파른 길 위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네 바퀴에 몸을 실은 채 온몸으로 내달리는 사람들, 운동복을 입고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쁘게 내쉬는 사람들.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것이 리스본의 길거리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힘을 내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도착했을 때에서야 깨달을 것이다.
그 끝에는 분명 그 순간만 존재하는 전경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