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린 Nov 12. 2021

성실의 소실

삶이 있는  의지도 있다고 했나, 아니면  반대였나. 의지가 있는  삶이 있다 그러나?

뭐가 먼저 오든 간에 석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의지도 생기도 없는 애처로운 방구석 인생을 살게 된 지 어언 3개월,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할 때를 직감한다.

원래도 활달하게 바깥을 돌아다니고, 경험 우선주의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외향인은 아니었다지만 적어도 집안에서는 규율과 체계가 있는 왕국을 꾸려나가고 있었으나 지금으로써는 애석하게도 그 모든 걸 다 잃고 폐허가 된 성에 홀로 남은 미쳐버린 왕 신세가 되어버렸다.

원인을 따지자니 복직밖에 떠오르는 게 없는데 이 또한 지극히도 합당한 귀납적 추론인 것이 결국 모든 변화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복직이라는 미친놈이 터를 잡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첫 발령 후 3년 동안 직장 생활에 매진하며 멘탈 관리법이나 학교 업무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침 기상에 뒤따르는 일연의 혼돈 그 자체인 모닝 루틴까지 다잡아 놓은 것이 2년 반을 푹 쉬는 바람에 다시 포인트 제로로 회귀한 것이다.

그 2년 반 동안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체육관+1, 구름다리+2, 급식실+1이 되었으니 개학 날부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거니와 오자마자 업무를 냅다 하라고 하는데 업무 시스템마저 바뀌어 어디서 뭘 찾아야 하는지도 깜깜 그 자체였다.

코로나로 학교 쉬는 날이 많아졌다고 본격적으로 학교를 뜯어

“얘들아, 그래서 급식실이 어디라고?”

복도 끝 한층 내려가서 구름다리를 타고 다시 한 층 더 내려가라는데, 저기요, 구름다리가 하나 더 생겼다고요?

일단 애들 얼굴도 외워야 되는데 마스크로 얼굴 반이나 가려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복도에 나가면 그냥 저 애가 그 애 같고, 머릿속 모든 회선들이 과부하에 걸려 타는 중이었다.

그날 밤부터 인체 바이오리듬의 파격적인 변화로 눈 떨림 현상이 생겼으며 잔뜩 덩어리 진 슬픔과 함께 마그네슘을 한알씩 털어 넣어야 했다.

애들하고 한바탕 하면 업무를 봐야 된다는데 자꾸 보건 선생님이 뭘 내라고 하신다.

근데 선생님, 뭘 내라는지 알아야 내죠.

청첩장 못 받은 조세호 마냥 황당한 얼굴로 앉아있다가 알겠다고 한 뒤 방법을 모색해보는데 아무래도 어디서 문서를 열람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거다.

차마 바쁜 옆반 선생님들 붙잡고 물어보기에는 지나치게 바빠 보이는 그들의 혼란한 그림자와 신규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3년의 자존심이 날 기어코 회전형 사무실 의자에 앉혀 버린다.

결국 우물쭈물 유튜브로 기어들어가 업무포털 기안 상신을 검색해보니 케이 에듀파인이라고요? 아니, 케이 시리즈에 에듀파인까지 잡아먹힌 거랍니까?

문서대장에 열람해 들어가 보고, 다른 학교로 가버린 나의 정든 친구 지은 씨에게 메시지로 물어 조사한 결과 보건 선생님의 업무는 내 업무와는 결이 다른 영역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오자마자 업무 떠넘기기를 당한 것을 알고 나서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과 곤욕감이란 나의 안 그래도 바닥난 열정을 양동이로 퍼내는 격이었으니 이러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결국 현재 나는 퇴근을 하고 난 후 방구석을 떠나려야 떠날 수 없는 지독한 망령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삶이 적적하다고 느낀다면 곁을 지켜줄 말동무가 있으면 되겠다.

할 일이 없어 입까지 근질근질 심심해질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단 걸로 배를 채우기라도 하자.

오히려 뭔가 생산성 있는 일이라도 해낸다면 자기 성취감이 높아지지 않을까. 당장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자.

여행이라도 가라고? 그러다가 코로나 확진 나면 그날로 바로 매장되는 건 아닐까요, 그 생각은 잠시 넣어둔다.

그래서 매일 하루에 한통씩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하루 순 통화량 평균 40여분, 그래도 적적함은 가시질 않는다.

배달의 민족에 좋은 디저트 카페를 뚫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매번 주문은 문 앞에 놓아주세요, 메모를 남기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입의 심심함은 디저트 결핍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작은 거라도 해보자며 800쪽짜리 책을 한 권 사서 나름 재미를 붙여가며 읽고는 있다.

그렇다고 한들 이 무료함의 깊이가 얕아지지 않으며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적막감의 부피는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안의 성실함이 죽었다.

물론 성실함이란 마치 여러해살이 풀처럼 좋은 여건과 재배 환경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다시 소생시켜 꽃을 피울 수 있지만 현재로써는 글쎄, 마지막 꽃잎까지 져버린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러다가는 올해 말까지 한 트럭채 쌓인 무기력을 끌고 가야 된다는 깨달음에 이르자 더없이 서글퍼지는 것이다.

인생 노잼 시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진리이며 순환의 굴레임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번번이 노잼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가라앉고만 있는 것인가.

이는 스스로의 나약함에서 기인한 것일까, 혹은 노잼 늪은 그 어떠한 무게의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을 말살시켜버리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곳인 걸까.

노잼 시기의 탈출을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와중에 정말로 현명한 길은 어떤 것이고, 바람직한 선택은 무슨 형태를 하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만 골똘히 한다.

한 때는 너무 숨 가쁘게 일정을 잡아서 화장실 가는 시간도 미리 짜 놓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가 무슨 태고적 일인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웬만한 열정으로는 다가가지 못한다는 새벽 수영 광인 중에 하나가 나였음이 그저 과거의 영광이 묻은 찬란한 유물 한 조각 같다.

수영 50분 수업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8시가 되면 아직도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고 학교 캠퍼스로 가서 1교시 수업을 들었다.

점심쯤 되면 두뇌와 육체의 극심한 에너지 소모로 카페테리아 가서 점심을 거의 들이붓는 수준으로 섭취한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달려가 스케이트보드와 장비를 갖고 동네 스케이트장으로 가 또 한 시간 레슨을 받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 시간은 여유로우니 혼자서 과제를 하거나 친구들하고 모여 저녁을 같이 먹고는 했다.

이때 아마 근 3년 치 열정을 저당 잡아 썼는지도 모른다.

언제 다시 열정 게이지가 차오를지는 나 자신마저도 모르는 실정이지만 집 나간 강아지를 찾는 애타는 심정으로 사그라드는 성실의 불꽃을 다시 지펴보려 애쓰리라, 다짐을 해 본다.

성실의 소실은 상상 이상의 무자비한 상실감을 가져왔다.

감정의 찌꺼기들을 다 게워내면 차라리 몸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모양인지 오히려 속이 텅 비어버렸다.

그래서 고칼로리 디저트를 한 판씩 해치워도 그다지 입이 개운하지 않은 건가 보다.

벌써 11월 중반, 2021년은 고작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고장 난 나침반을 들고 사막 횡단하는 낙타 장수 이해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낙타 부자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실크로드에서 홀로 낙오된 뒤, 가진 물품도 소중한 물과 음식, 귀여워마지 않던 낙타들도 모조리 잃어버렸다.

내 손에 남은 건 침이 시도 때도 없이 팽팽 돌아가는 고물 나침반뿐인데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갈 것인가.

모래 언덕의 끝과 별의 시작이 만나는 지점을 향해 가다 보면 오아시스가 나올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교사복직잔혹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