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기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며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하지요. 가정이나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볍게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좋은 그림에는 소통과 치유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자욱한 안개가 바다처럼 드리워 있는 바위산, 그리고 바위 위에 올라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거친 운명 앞에 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입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풍을 대표하는 프리드리히는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가벼운 붓터치를 이용한 사실적 표현, 현실 초월적인 주제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프리드리히는 고향인 그라이프스발트 외에 뤼겐, 보헤미아, 하르츠 산맥 등 독일 전역을 여행했으며 발트해 연안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1815년과 1818년 다시 발트해 여행을 했는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발트해 여행에서 돌아와 그린 작품입니다.
등을 보이고 있는 그림 속의 인물은 마치 관망자인 듯 자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연의 숭고함과 위대함, 이를 대하는 인간의 경외심이 표현된 작품입니다. 그의 풍경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관계에 대한 내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그의 그림에서 자연은 변치 않는 이상과 영원성을 대변합니다. 항상 변화를 겪고 번뇌하는 인간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힘을 찾아내도록 유도합니다.
비평가 제르네르는 이 그림 속 요소들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안개는 방황과 감추어진 현실, 하늘과 대지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며 하늘과 대지를 이어주는 암벽들은 신앙에 대한 상징이라고 합니다. 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는 불운했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프리드리히는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고독과 우수에 젖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 화가였습니다. 이런 성향은 그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엄격한 루터파 교도였던 아버지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어머니 사이의 열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두 누이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심지어 그가 보는 앞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동생이 얼음에 빠져 죽는 일도 겪었습니다. 1781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연이은 비극을 마음에 담고 1794년 코펜하겐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며 1798년부터 낭만주의 주요 거점이던 드레스덴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인 가족사의 충격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는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런 그의 그림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이 독일 나치의 선전도구로 쓰였다는 것은 참 알 수 없는 운명이지요.
프리드리히의 그림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화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은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사이 이 풍경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곤 스스로 묻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림은 이렇게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잘한 인간사에 연연하지 마세요. 우주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시간과 공간이 있고, 그 속에 당신이 있습니다. 그 우주의 일부분임을 잊지 마세요. 당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공간 속에서 시간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세요. 그뿐입니다.”
불운한 결과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힘이 들어합니다. 자신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흔들립니다. 그럴 때는 크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 역시 우주의 한점 먼지 밖에 안되는데 그런 고민 따위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휘둘리며 사는 것은 참 억울한 일입니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만 알고 보면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내면의 진실에 마주해 보는 겁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