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일까지, 베니스 팔라초 그라시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 중 베니스에서는 섬 곳곳에서 세계적 거장들의 굵직한 전시들이 경쟁하듯이 이어진다. 비엔날레가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실험성 강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면 비엔날레 전시장이 아닌 문화재단이나 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전시는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가들의 전시들이어서 무게감이 다르다.
베니스의 운하를 바포레토를 타고 가다 보면 운하에 접해 있는 흰색 궁전에 묘한 표정을 한 여인의 초상이 눈길을 끈다. 구찌 등 세계적 명품과 크리스티 경매를 소유한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이끄는 피노재단 소유의 현대미술관 팔라초 그라시다. 역시 피노 재단 소유인 푼타 델라 도가나와 팔라초 그라시는 2017년 데미안 허스트의 난파선 이야기 전시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모았었다. 2년 전 18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 ‘Demon With a Bowl’을 중정에 가득 채워 놓았던 팔라초 그라시에서는 벨기에 출신 화가 뤽 투이만(b. 1958)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순수 회화로의 회귀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뤽 투이만의 첫 번째 개인전으로 캬롤린 브루주아가 큐레이팅했다. 80여점의 피노컬렉션을 포함해 1986년 이후 최근까지 회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은
쿠르지오 말라파르테 Curzio Malalparte의 1949년 작 소설에서 따온 ‘La Pelle’인데 피부라는 뜻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이야기들, 지극히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들의 연관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는 시간의 흔적을 담은 장소와 물건, 신문이나 텔레비전, 인터넷 등 대중매체로부터 차용한 일상의 이미지들을 빛을 머금은 듯한 중간 색 톤의 색상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화폭에 안개가 내려앉은 듯 연한 파스텔 톤의 이미지들이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전시는 주로 큰 캔버스 작품과 작은 인물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오래된 것과 현대적인 것이 교차하는 풍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어딘지 화가 나 있고 불안해 보인다. 파스텔 톤이라면 분명 평화로운 색상인데 평화롭지만은 않아 보였다. 이미지 포스터에 소개된 ‘Twenty Seventeen’은 제작 년도(2017)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뤽 투이만은 그렇게 본 것이겠지. 전시는 내년 1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