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베니스 비엔날레 볼만한 전시 1
솔직히 말해서 야니스 쿠넬리스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린 2019년 베니스 프라다 재단이 기획한 ‘Jannis Kounellis’ 전을 보면서 그가 어떤 작가였는지 알게 됐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름도 야릇한 야니스 쿠넬리스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지금까지 가장 큰 예술적 충격을 받았던 작품을 꼽자면 밀라노 프라다재단에서 접한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거대한 수조에 들어있는 진료실,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다닌다.)이었는데 베니스에서 만난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은 그걸 간단히 눌러 버렸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수백억 달러를 들여 만든 데미언 허스트의 ‘가짜 유물’들보다 쿠넬리스가 일상의 사물들을 이용해 만들어 낸 기발한 작품들은 훨씬 더 예술다웠고 독창성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데미안 허스트의 동물을 사용한 충격적인 설치 작품은 쿠넬리스의 작업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쿠넬리스는 이미 1967년 살아있는 새들을 설치미술에 등장시킨 바 있다. 2년 후에 말 열두 마리를 로마의 한 갤러리에서 일정기간 사육해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후 데미안 허스트의 소와 양과 물고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비둘기와 다람쥐 등 생물이 예술의 소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쿠넬리스의 작품에는 삶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나 삶의 무게를 지닌 작가의 언어가 등장한다. 대표적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불은 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타고난 뒤 그을음의 상태로 보이기도 하며 이는 촛불, 가스 불꽃, 알코올램프 불 등으로 여러 가지 삶을 상징한다. 불 외에도 석탄, 커피, 곡물, 솜, 돌, 철판 등 자연물이나 공업재료, 침대와 담요나 장롱 같은 생활용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상징적 의미보다는 이질적 결합에서 그 중의성을 던진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서 이질적인 이미지를 가진 값싼 재료들의 조합으로 자연과 역사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쿠넬리스는 이탈리아의 전위미술운동 '아르테 포베라'의 중심인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쿠넬리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그보다 훨씬 큰,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철학적 성찰이 담겨있다.
인류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성찰에서 나오는 그의 아방가르드적 행위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대운하 변의 멋진 건물에서 파격적인 현대미술 거장들의 회고전을 갖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닌데 이번은 정말 특별한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사망한 그리스 출신의 예술가 야니스 쿠넬리스다. 1936년 그리스의 프레이스에서 태어난 그는 아테네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 1956년 이탈리아로 이주해 로마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1967년 ‘아르테 포베라’ 운동에 참여해 유명세를 얻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일상의 오브제와 사물을 이용해 예술과 삶을 연결하고자 한 예술운동이다. 그의 작업은 어찌나 독특하고 센세이셔널했는지 이름만으로도 작품 세계가 그려질 정도였다. 이번 전시명도 작가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제르마노 셀런트 Germano Celant가 큐레이팅 한 이번 전시는 1959년부터 2015년까지 작가가 선보인 다양한 작품들을 당시 전시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프라다재단 미술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안뜰에 4층 높이의 철제 설치물이 눈길을 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전시를 따라가 본다. 지상 층에 포스터 작업만 보고 실망했다면 너무 성급하다. 2층, 3층이 메인 전시실이다. 2층에는 투박한 코트와 낡은 구두, 모자가 바닥을 채우고 있다. 2006년 발표한 ‘무제’다. 낡은 구두와 코트, 모자는 누군가 신고 입고 쓰던 물건이다. 누군가의 삶과 연결됐던 것이지만 현재는 존재가 없다. 과거의 존재가 현재에는 부정되는 묘한 상황은 잃어버린 시간 혹은 기억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철근, 돌, 석탄 등 그가 이 세상 사물과 사건에 대해 느끼는 감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료는 제한이 없다. 3층 천정에는 누군가의 집에서 누군가의 물건들을 고이 간직했을 오래된 장롱들을 매달아 놓았다. 역시 존재와 부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쿠넬리스는 예술적 언어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중 하나가 감정을 알파벳 문자와 기호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문자도 같은 것인데 베니스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보다가 나중에 로마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니 왠지 반갑기까지 했다.
철제 판 앞에 촛불을 켜놓거나 자갈을 놓기도 하고, 벽을 그을리기도 하던 그의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가스를 이용한 작품들이다. 악기들을 벽에 세워놓고 프로판 가스선을 이어놓은 뒤 불을 붙여 놓았다. 이보다 더 ‘위험’ 한 작업이 이번 전시 포스터에 등장하는 작품 ‘KOUNELLIS’다. 가스통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불을 붙여 놓았다. ‘쉬익, 쉬익’하는 소리에 귀는 불안하고 가스 냄새가 난다. 위기감과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들이는 역동적인 작업이다. 하루 종일 틀어놓을 수가 없어서 휴식시간을 갖고 방을 환기시켜 가면서 작품을 보여준다. 이런 파격을 실험한 작가나 이를 소장한 재단이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별 작품을 참 많이 봤지만 지금까지 본 작품 중 가장 파격적이고 불장난인 작품이다. 철근을 이용한 작업 설치 광경을 보여주는 영상물 속 작가는 진지한 과학자 같기도 하고 고뇌하는 철학자 같기도 하다. 베니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