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정리> 베니스의 윤형근

포르투니미술관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포르투니의 윤형근전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윤형근(1928~2007) 회고전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위성 전시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전시로 꼽힌다. 500년의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운 공간에 작가의 작품 60 여점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걸려있다. 조용하면서도 진지한 먹색의 변주를 보여주는 윤 화백의 작품과 오래된 붉은 벽돌과 나무 등의 재료로 이뤄진 고풍스런 공간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작품들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간에 딱 맞는 설치와 조명 작업이 완벽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봤을 때 보다 작품의 감동이 더 진했다.


이탈리아의 원로 평론가이며 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이탈리아 평론가 프란시스코 보나미는 일간 리퍼블리카에서 “전 지구상의 수백 개 전시가 만든 소음들 한 가운데서 어떤 고요한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한다면 포르투니미술관의 윤형근 전시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전시장에서의 느낌은 그랬다.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은 작가의 성찰이 담긴 작품들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윤 화백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 대가’에서 진정한 ‘세계적 거장’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4년 전 열린 베니스비엔날레의 병행전시로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 원로들이 소개됐을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작가 사후 12년 만에 이런 이례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형근의 경우 구도자와 같은 진중한 인간미와 묵직한 작품성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된다. 유족과 신뢰관계를 유지해 온 상업 갤러리가 아트 바젤 등 영향력있는 국제 아트페어에서 꾸준히 작가의 인지도를 높여왔다. 결정적인 힘을 실어 준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열린 작가의 회고전은 32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다. 회고전을 본 포르투니 미술관측이 전시 초청을 제안했고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현지 전시가 성사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외 수출 1호 전시로 기록된 전시다. 윤형근 회고전은 해외의 유력 신문과 미술전문지들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대표적인 전시로 선정할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 또한 덩달아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윤형근이 세계적 거장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긴 시간과 노력을 들인 기획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비엔날레에 국가 대표로 참가하거나 본 전시에 초대받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미술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예술성, 상업적 성과와 제도적 뒷받침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가능하다. ‘불멸의 예술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윤형근 화백의 경우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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