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14. 2020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누가 말했을까요?

히포크라테스 학파와 집단지성

Vita brevis est, ars longa


최초에 누가 이 말을 했는지 궁금해 본 적은 없나요?  너무나 익숙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답니다.

예술가는 사라지지만 그가 창조한 예술 작품은 오래도록 남아서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다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누군가 예술가가 한 말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경구는 알고 보니 기원전 3세기에 '히포크라테스 전서'를 남긴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학자들이 긴 시간 속에서 그들의 깨달음을 집약해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집단 지성에 대한 가치선언이자 그들이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사학자 클리퍼드 코너가 쓴 '과학의 민중사'(사이언스북스)를 읽다가 알게 됐습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0년경 )는 임상관찰을 토대로 고대 그리스 의학의 중심 역할을 한 코스 출신의 의사입니다.  고대 그리스 전성기였던 살라미스 해전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사이에 활약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업적을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히포크라테스 전서'도 여러 학자들이 집필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에 따르면 '코스의 학교(전문 의학교라기보다는 공유된 원리들을 따르는 학파)‘는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나기 1세기도 전인 기원전 6세기 초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전서로 알려진 집단 창작물의 초기 일부는 히포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보다 더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죠. 그 오래된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집단 창작물은 오랜 기간 걸쳐 이뤄진 발견들을 토대로 건강할 때와 아플 때의 인체의 행동에 대한 관찰, 실험 , 그리고 그 결과에 기반을 둔 의학의 개념을 명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저자들은 스스로를 많은 세대의 연구자와 서술가들의 협동 작업에 의지하는 집단적 노력의 일부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Vita brevis est, ars longa'라는 경구로 표현했습니다.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되는 이 문장은 원래의 뜻대로 하자면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로 번역해야 맞을 것입니다. 여기서 기예는 의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조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선조들이 남긴 의술을 토대로 공부하고 집대성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 또한 후대에 길이 남아 생명을 살리는 지식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숭고한 소망이 담긴 것입니다.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 애쓰는 전 세계 의료진의 노고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지요.)

책을 읽다가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의료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의 소명을 성실하게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윤리적 원칙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히포크라테스 학파 의사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라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고대 피타고라스 주의 종파의 의학 신봉자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합니다.

책의 주석을 보니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피타고라스 주의 선언이었음을 처음 밝혀낸 것은 루드비히 에델슈타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였습니다. 이 책은 1943년 출간됐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너무 유명한 나머지 ‘피타고라스의 선서’라고 하면 수학자의 선서로 오인할까봐 의학전서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를 소환했던걸까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조차도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잠언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델피 신전 입구 현판에 새겨진 경구입니다. ’ 인간이여, 너는 사멸할 인간임을 깨달아라'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물음을 거듭하면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도록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예전에 쌓아두었던 책을 책장에서 꺼내 읽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무지를 깨닫게 된 하루였습니다. 이왕 시작한 김에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의 역자(최혁순)가 서문에 소개한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부정인가(옳지않은 일인가?)?”

"부정입니다."

"그럼 앓고 있는 친구에게 약을 먹이려 거짓말을 하는 것도 부정인가?"

"부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짓말하는 것은 부정이기도 하고 부정이 아니기도 하다. 거짓말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이제..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껏 거짓말하는 것이 정의인지 부정인지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채 아는 것만 알고 사는 게 인생인 듯 합니다. 아는 것 조차도 내가 알고있다고 생각할 뿐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진실과 사실의 간극이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겠죠.

    

이전 11화 빛과 색채의 화가 티치아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