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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17. 2020

라파엘로!

서거 500주기 맞는 천재화가의 불꽃 삶

앞에 쓴 글에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학자들로부터 나왔다고 했다.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술을 후대에 전수하면서 자신들의 고귀한 사명감을 담은 이 말은 원래의 뜻으로 하자면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와 공간,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거장들을 보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37살의 짧은 삶을 살면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남긴 라파엘로를 보면서 정말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함께 르네상스 3대 천재로 꼽히는 라파엘로 산지오(1483~1520)는 화가, 건축가, 고고학자, 그리고 시인으로 인간과 신성, 사랑, 우정, 배움, 권력, 아름다움을 예술에 담았다. 그의 삶은 짧았으나 많은 작품을 남겼고, 영원불멸의 인류 유산이 되었다. 라파엘로는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인간과 신성,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시각적으로 포착해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룬 최고의 화가로 고전주의 모범이 되면서 19세기 중반까지 유럽 회화의 학문적 전통을 지배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트린'  (1507년경)

라파엘로는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반니 산지오는 법정 화가였다. 아버지에게서 회화의 기초를 배웠으며 어린 시절부터 만테냐,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6세에 페루지노의 공방에 입문했다. 초기에 페루지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유다. 그는 1504년부터 1508년 피렌체에서 거주하면서  고전주의를 빠르게 습득했다.  '성모의 결혼'(1504)을 통해 라파엘로는 성모 마리아의 새로운 미적 기준을 제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신예 라파엘로의 능력은 그가 모델로 삼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필적할만한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은 평가했다. 라파엘로는 페루지노의 가녀린 나무, 다빈치의 안정적인 피라미드 구도와 선을 그리지 않고 은은하게 윤곽을 표현하는 스푸마토, 미켈란젤로의 콘트라포스토까지 당대 거장들의 특징을 총집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계란형 얼굴, 우아한 자태, 그윽한 시선을 통해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대공의 성모', '코네스타빌레의 성모''검은 방울새의 성모''성모자와 아기 성 요한'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검은 방울새의 성모'


그는 25세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아파트 장식을 돕기 위해 로마로 불려 갔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우르비노 출신으로 같은 고향 출신의 화가에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후 그는 로마에서 율리우스 2세와 그의 후임 교황 레오 10세를 위해 일한다.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초상화를 완벽하게 그린 라파엘로에게 서명의 방 벽화를 그리게 했다.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을 비롯해 '파르나소스', '성체 논의'를 완성하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인본주의 문화와 철학의 성지 아테네를 주제로 한 '아테네 학당'은 고전적인 양식의 웅장한 사원 내부에 역사상 유명한 학자들이 활기 넘치게 토론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라파엘로는 누가 누구이며 어떤 학문을 상징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과거 철학자들의 모습에 동시대의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 사상이 당시 부흥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스승 일 페루지노와 라파엘로 자신도 그려 넣었다.  빈틈없는 화면 구성,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배치,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번갈아 가며 화면에 생동감을 주는 최고의 걸작이다.  

바티칸 서명의 방에 그려진 '아테네 학당' . 오른쪽 구석에 빨간 모자를 쓴 라파엘로가 흰 모자를 쓴 스승 페루지노와 서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균형과 긴장감 넘치는 극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화풍으로 명성을 날렸다. 매력 넘치고 상냥하며 세련된 라파엘로는 로마 엘리트 사회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의 공손함과 재치, 특히 원만한 성격에 마음을 열게 되고 너무나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 심지어 동물마저도 그를 사랑했다."조르조 바사리가 '예술가 열전'에서 라파엘로에 대해 적은 내용이다.

바티칸 궁에서 완성한 기념비적인 걸작들의 성공으로 확실하게 명성을 굳힌 라파엘로는 로마에서 아틀리에를 차리고 파르네지아 궁전,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등에서 프레스코화들을 제작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태피스트리 밑그림도 제작했다. 1514년 브라만테가 죽자 성 베드로 성당을 담당하는 건축가로 임명되었다. 베드로 건축 작업을 감독하면서 '십자가 운반', '레오 10세와 두 명의 추기경'을 완성하고 '그리스도의 변모'(1519~1520)를 완성했다. '레오 10세와 두 명의 추기경'은 1518년 9월 레오 10세의 조카이자 우르비노의 대공인 로렌초 데 메디치의 결혼 축하연 때 공개되어 후에 메디치 궁전 문의 상단에 걸렸다. 그림 속 추기경 중 한 명이 메디치가의 줄리오이고, 그는 훗날 클레멘스 7세 교황이 된다. 이 초상화를 의뢰한 때는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표면화된 직후이다.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한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촉발한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반종교개혁의 도구로 예술을 전면에 내세웠던 시절이다. 라파엘로는 교황의 위엄과 권위를 적절하게 표현하면서도 폭풍의 중심에 선 인간적 고뇌를 담았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자 고고학자로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라파엘로는 명성이 최고조에 달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는 7일간 계속된 고열 끝에 1520년 자신이 태어난 날과 같은 4월 6일 사망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여성편력이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전기 작가들은 말한다. 자신의 병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던 라파엘로는 의사들에게 엉뚱한 치료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 로마를 동경했던 그에게 걸맞게 로마 판테온 신전에서 명예로운 장례식이 열렸다. 위대한 예술가는 프랑스 화가 푸생과 다비드, 앵그르를 비롯해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라파엘로는 이상적 모델이 되었고 영국에선 라파엘로 전파를 탄생시켰다.  

2020년은 라파엘로가  사망한 지 5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지난  2019년은 르네상스 시대의 또 다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서거한 지 50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한 전시들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열렸었던 것처럼 올해엔 유수의 미술관들에서 라파엘로 관련 전시들이 예정되어 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라파엘로  서거 500주기를 맞아 올 가을 대규모의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크레이 디스 위스 은행의 후원으로 2020년 10월 3일부터 2021년 1월 4일까지 3개월간 열린다. 내셔널 갤러리는 최고의 회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영국의 국립미술관이다.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 거장의 예술세계를 완벽하게 탐구하는 최초의 전시를 선보일 될 것이라고 미술관측은 밝히고 있다. 유명한 회화와 드로잉뿐 아니라 건축, 고고학, 시, 조각, 태피스트리, 판화, 디자인 등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전의 라파엘로 전시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다매체적인 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내셔널 갤러리는 생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파리 루브르 박물관, 워싱턴 국립 미술관,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등이 소장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라파엘로의 기술, 창의성, 독창성을 볼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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