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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Oct 04. 2019

[명언과 인문학의 로맨스 1]

남자는 여자의 첫사랑이길 원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길 원한다.


글 황헌 (방송인, 시사평론가) / 커버 작품 : 변웅필 작 '자화상'  


“남자는 여자의 첫사랑이길 원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길 원한다.”

오스카 와일드

우리는 소중한 말, 금과옥조 같은 표현을 자주 듣고 사용한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표현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서 나왔는지 명쾌하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 처음 잉태된 배경과 달리 오늘날엔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변화는 어떻게 해서 이뤄졌는지도 궁금한 영역이다. 양(洋)의 동서를 구분하거나 시대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명언의 인문학적 뿌리를 찾아 탐험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심성을 절묘하게 함축한 문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1895년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Daily Inter Ocean> 신문에 ‘오스카 와일드 감옥에’라는 헤드라인이 실렸다. 유명한 극작가이자 시인이던 와일드는 퀸즈베리 후작에 의해 동성애자로 고소당했고 결국 감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퀸즈베리는 복싱의 룰을 만든 귀족이기도 하다. 글러브를 끼고 3분 경기, 1분 휴식을 하는 오늘날의 복싱 규칙인 ‘퀸즈베리 룰’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왜 당대의 스타를 고소했을까? 이유는 바로 퀸즈베리 경의 아들 알프레드가 와일드와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0년대 영국에서조차 동성애는 법률로 금지되었다. 퀸즈베리의 장남인 프란시스 또한 당시 총리였던 로즈베리 경과 동성애 염문에 휩싸였고 의문의 사고로 숨진 바 있었다. 그래서 퀸즈베리는 막내마저 그런 추문에 빠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고 결국 오스카 와일드를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와일드는 그 재판에서 맞고소했다가 취하하고는 곧바로 유죄 판결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가 형기를 채우고 파리로 망명해서 매우 불우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 파리 북쪽의 페르 라 쉐즈 묘지엔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이 있다. 와일드는 그 자신 1884년 콘스탄스 로이드라는 여성과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지만 결혼 2년 뒤 동성애에 빠지고 만다.

불후의 명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의 모습을 멋지게 그려낸 오스카 와일드. 그러나 그는 사랑이라는 것의 가치에 대해 많은 직설 화법으로 우리가 대개는 입에 담지 않으려하는 진실을 설파했다. 사랑의 공허함을 여러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내놓았다.

흔히들 말하는 남녀 간의 우정에 대해 와일드는 가볍게 한 주먹을 날린다. “남녀 사이엔 우정이란 있을 수 없다. 정열, 숭배, 연애는 있을 수 있어도 우정은 없다.”라는 말로 말이다. ‘친구처럼 편하다’는 그 사이, ‘나이 들어 이성의 친구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등의 말 모두 허구임을 와일드는 강조한 것이다. 편하고 든든한 그 사람은 곧 연애의 대상이거나 사랑의 대상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괜스레 사람들의 눈에 그걸 감추려고 또는 우정이라는 가면 속에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명언의 전체 문장은 이렇다.


“Men always want to be a woman’s first love. That is their clumsy vanity. We women have a more subtle instinct about these things. What women like is to be a man’s last romance.”
(남자는 언제나 여자의 첫사랑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건 서툰 허영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이런 일에 대해 순전한 본능을 갖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남자의 마지막 로맨스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1890년 그가 펴낸 희곡 <A Woman of No Importance(중요하지 않은 여자)>에 나오는 대사이다.

와일드는 이 말을 통해 남자의 사랑에 대한 자기모순적인 허구를 들춰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런 말도 한다. “남자가 마음속의 진정한 여자만을 사랑한다면, 세상의 여자는 그에게 무의미한 것이 된다.” 한마디로 남자는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폭로한 셈이다. 이런 말도 했다. “남자는 일단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지만, 단 한 가지 해주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그 사랑을 오래도록 지속해서 유지하는 일 그것만은 결코 해주지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원한 사랑’이니 ‘목숨을 바꿀 정도의 사랑’이니 하는 말들의 공허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올바른 결혼의 기초는 상호 오해에 있다.”라는 충격적 모순화법의 말을 남겼다.

쇼펜하우어는 <사랑은 없다> 라는 책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은 없다고 단언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그녀가 80살 넘은 할머니거나 7살도 안 된 어린아이라 가정해보라고 묻는다. 쇼펜하우어는 젊은 그녀에게 느끼는 사랑을 어리거나 늙은 그녀에게서 남자가 느낄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바로 쇼펜하우어의 그러한 이성 간의 사랑에 담긴 허무와 공허함을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닫고 숱한 문학 작품을 통해 그것을 투영했다.

첫사랑이길 바라는 남자의 심리는 바로 그 허영과 허구 자체인 사랑을 함에 있어 그래도 처음엔 최선을 다하고 그 사랑이 갖는 살 떨리는 긴장의 대상이 자신이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 감각으로 여자를 인식한다는 것임을 와일드는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기를 원하는’ 여성의 심리는 또 무엇일까? 그건 심플하다. 본능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한 대상에 대한 불만족, 변덕의 나쁜 습성을 알고 있다. 유태인의 격언에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만큼 큰 행운을 잡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첫사랑은 그만큼 사랑에 있어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첫사랑은 대개 실연이다.

그러나 일본의 시라이시 고우치라는 심리학자는 “첫사랑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해도 그 아름다운 꽃은 추억 속에서 영원히 아름답게 필 것이다.”라는 말로 첫사랑의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런데 여성 또한 지금의 사랑이 첫사랑이길 원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들도 대부분 첫사랑은 아픈 상처이거나 실연의 그늘 그것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첫사랑엔 실패했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하는 사랑이라도 더 이상의 사랑이 필요 없는 마지막 사랑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여자를 바라보는 사랑에 대한 태도가 허영이고 허구인데 여자의 그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많은 남성들은 반기를 들고 싶어 할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명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나는 남자라면 미래를 가진 사람을, 여자라면 과거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썼다. 여자 또한 남자가 갖는 한 사랑에 대한 지고지순한 영원불변의 사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한 표현이다.

여자 자신이 그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기를 원하는 속뜻에는 이미 첫사랑은 물 건너 간 것인 만큼 마지막 사랑에 담긴 ‘마지막 첫사랑’적 사랑을 모순적이게도 원한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라는 저명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는 “여자는 사랑이 끝나면 사랑했던 사람을 아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지운다.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어 하지만 여자는 지금 사랑만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와일드의 ‘남자의 첫사랑 여자의 마지막 사랑’과 맥이 닿는다.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별 지구에서 동시대인으로 태어나 그것도 남녀로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러나 그게 기적인 줄 모르고 현재의 짝의 흠결만 보며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른 채 착각하며 사는 게 우리 인간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랑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랑을 향해 높은 잣대를 키워가는 군상들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만족하지 못 한 채 시샘만 일삼는 잣대 때문에 금세 시들해 버리는 인간의 에로스를 126년 전 오스카 와일드는 통렬한 문장으로 정의한 셈이다.

“우리가 인간성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인간성의 유일한 속성은 바로 변화이다.” 변화하는 인간성, 사랑에 대한 조변석개하는 인간성을 와일드는 여러 작품에서 반복 강조했다.

필자는 와일드의 문장을 이렇게 환문(換文)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의 유일한 속성은 바로 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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