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전환

<소요유>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 아득히 먼 북녘 바다에 물고기가 사는데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가 넘는다. 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은 몇천 리가 되는지 모른다. 힘껏 날면 날개 밑으로 하늘의 구름이 드리운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변할 때 먼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먼 남쪽 바다는 천지이다. ‘

- 장자, <소요유>


중국인들은 허풍이 세다고 한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중국 무협물을 보면서 실감하고 있다. 하늘을 날면서 무술을 겨루는 것은 기본이고 천계, 인간계, 요괴계를 왔다 갔다 한다. 황당한 이야기들인데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허구의 세계에 빠져 들게 된다.

허풍을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중국인의 상상력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임을 보여준다. 그 상상력의 범위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기 때문에 보통의 사고력을 가지고는 감당이 안된다. 사고의 경계를 지워야 그 스케일을 소화할 수 있다. 또한 과학적 상식도 내려놓아야 한다.

<소요유>에서 ’천지’는 '하늘의 연못'인데 이 세계를 넘어선 아득한 우주일 것이다. 이어가 보면 이렇다. ‘제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괴이한 일을 많이 안다. 제해는 붕이 남명으로 날아갈 때 날개가 바다를 쳐 일어나는 파도가 삼천리이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 위로 올라가 6개월이 지나서야 쉰다.’

붕정만리라는 말이 있을만큼 유명한 글이다. 장자는 허풍을 자랑하려고 그런 것을 지어냈을 리 없다. 우리에게 사고의 전환, 인식의 전환을 통해 절대 자유를 얻으라는 가르침을 준다. 절대 자유란 거리낌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참된 지식과 진리, 큰 지혜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아득히 먼 옛날에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8천년이 봄이고 8천년은 가을이다. 팽조라는 사람은 7백년을 살아 유명한데 사람들은 대춘과 팽조를 견주려 한다. 이 어찌 슬프지 않은가!’

작은 지혜로는 큰 지혜를 따르지 못한다. 자질구레한 일들로 머리 속이 뒤엉켜 정리가 안될 때가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붕이 되어 크나 큰 날개를 퍼득이며 저 아득한 우주를 비행하는 상상을 해 보면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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