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편지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 제가 <사할린 섬>을 통해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뭔가를 숨기려고 했고, 질질 끌려고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사할린에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돼지처럼 탐욕스러운 부류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이야기하자마자 모든 것이 쉬워졌습니다.'
-안톤 체호프가 1893년 7월 28일 알렉세이 수보린에게 쓴 편지 중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꺼내 보는 책 몇 권이 있다.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좋은 신발과 노트 한권> (청어람미디어)은 직업 의사였던 작가 안톤 체호프가 <사할린 섬>을 쓰기 위해 했던 여행과 글쓰기에 대해 쓴 글을 피에로 브루넬로가 엮은 것이다. 얼핏 보면 여행기 같지만 여행 자체를 적은 것이 아니다. 체호프의 작품과 그가 주고받은 편지, 여행일기를 분석해 글 쓰는 사람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 주는 식으로 엮은 것이다.
체호프는 출판사를 하는 수보린으로부터 특파원 일을 하는 방식으로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 사할린행을 감행했다. 그가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출발해 차르 제국의 동쪽 끝 국경선에 위치한 유형수의 섬 사할린 니콜라예 프스크 항구에 도착한 것은 1890년 7월 5일. 두 달 반 동안 1만 2000킬로미터를 통과했다. 떠나기 전 자료조사를 면밀하게 하고,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방문했다.
체호프는 7500여 장의 조사카드, 죄수들이 선물한 작은 물건들, 노트 한 권, 총독이 내린 지령, 탄원서와 편지 등을 지니고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가 본 유형지의 참상은 현실보다 더 끔찍했으나 일상은 예전과 같이 돌아갔다. 의사로 일을 하니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검열 때문이기도 했다. 지옥을 지옥이라고 말할 수 없던 때였다.
그가 수보린에게 쓴 편지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한 것은 '진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할린 섬>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피에로 브루넬로의 설명에 따르면 그 책에서 체호프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고 편견 없이 정직하게 관찰하고, 본 것만을 이야기했다. 그는 사할린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안내자도 , 호기심 많은 관광객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유형지에서 죄수들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조사한 보고서 <사할린 섬>은 1895년 출간됐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덮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내가 들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이 글을 쓰려고 하는가? 그러면 뭔가 풀리기 시작했다. 진실의 응답이었던 거다.
괴테는 말했다. ‘마음을 다하면 진실이 통한다.’
누군가와 대화가 막혔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뚫어주는 것은 진실이다. 상대방에게 진실되게 말해보자. 나 자신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