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펄램갤러리서 대규모 개인전
전설 속의 거대한 고래를 잡으러 가는 것은 에스키모들에게 도달할 수 없지만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여정이나 다름없다. 에스키모들에게 의식과도 같은 이 고래 사냥을 ‘Halaayt(할라이트)’라고 한다.
‘할라이트: 영원의 여정’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 곽훈(b.1941)이 최근 화두로 잡고 몰입하고 있는 주제다. 칠흙같은 검은 바다에서 인간은 작은 나무배에 의지해 거대한 고래와 사투를 벌인다. 그것은 개인의 사소한 욕망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 운명의 거대한 힘, 그리고 그것과 싸우는 인간의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검은 바다와 남보라 빛 하늘 색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바다 속에서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고래의 힘은 걷잡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감동적이면서 어딘가 애잔하다. 캔버스 안에서 강한 에너지들이 요동친다.
작가 곽훈이 ‘영원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홍콩의 펄램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리만 머핀,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등 전 세계의 유명 화랑이 밀집한 페더 빌딩과 H퀸즈 두 곳의 펄램 전시장에서 작가의 최근 회화 작품과 80년대 드로잉,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작품 등 총 30여 점이 선보인다. 펄램이 홍콩 전시장 두 곳에서 동시에 한 작가의 대규모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펄램은 지난해 수차례 경기도 이천의 작가 작업실을 방문하고 올 3월 뉴욕 아모리쇼와 아트 바젤 홍콩에서 작가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는 ‘범죄인 송환법’ 관련 시위로 혼란한 홍콩의 상황으로 인해 세계 주요 화랑들이 입점한 미술시장의 최고 허브 홍콩의 향방이 걸린 9월 시즌 대표 전시로 관심을 받았다고 갤러리 측은 전했다.
작가 곽훈은 1969년 김구림, 김차섭과 함께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창립해 실험주의 미술을 전개하다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에 정착 후 LA 미술관의 학예사 조신 이안코에게 발탁되어 로스앤젤레스 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 등지에서 선불교, 동양철학, 불교 등에 영향을 받은 아시아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회화와 실험적인 설치작품을 선보이며 활약을 이어나갔다. 1995년 김인겸, 전수천, 윤형근과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작가로 참가해 설치와 사물놀이,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대규모 설치작품 ‘겁/소리, 마르코폴로가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가’를 선보였다. 주요 전시로 ‘곽훈:대지로부터’ 피앤씨 갤러리(2016), 대구미술관 개인전(2012), 중국 북경 미술관 개인전(2005), 북경 롱바오자이 미술관 개인전(2000), 금호미술관 개인전(2000,1998),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2000, 199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개관전(1995), 패서디나 아시아태평양 미술관(1991) 등이 있다.
펄램 갤러리는 2005년 홍콩의 부동산 재벌 린바이신 회장의 딸인 플램 대표가 설립한 이래 홍콩에서 가장 임대료가 높다는 페더 빌딩과 H퀸즈 빌딩, 상하이 등 총 3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며 아시아 미술의 독자성 와 우수성을 세계 미술시장에 전파하고 있다. 김창열, 전광영 등 한국미술의 새로운 블루칩을 발굴해 세계 무대에 진출시킨 펄램갤러리의 새로운 한국 작가 곽훈의 활약이 기대된다.
오는 29일에는 H퀸즈 전시장에서 티베트 승려, 중국 피리주자들과 함께 작가의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퍼포먼스 작품 '겁/소리, 마르코폴로가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리셉션이 진행될 예정이다. 갤러리 측은 "곽훈 작가의 작품과 퍼포먼스가 어지러운 홍콩 현지인들에게 힐링 에너지를 선사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