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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ul 15. 2021

[찜!] 프랭크 게리의 '루마 아를'

해체주의 건축의 또 다른 걸작, 남프랑스 아를의 새 명소

자타공인 스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나이는 올해 92세.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해체주의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건축물이 최근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완공됐다. 반사 알루미늄 패널의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며 우뚝 선 ‘루마 아를 (Luma Arles)’ 타워다.

아를(Areles)은 고대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등 유적과 함께  반 고흐가 사랑했던 곳으로 유명한 프로방스 지방의 대표도시다.  게리의 건축물들이 그렇듯 디자인이 너무나 독특해서 도시의 경관과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비난을 잠재울 정도로 매혹적이다. 아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려줄 것으로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 국영철도공사(SNCF)의 기차 생산기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타워의 높이는 56m. 한쪽 벽면을 타고 올라가는 알루미늄 패널들이 멀리서 보면 거대한 암석 바위를 디지털 픽셀로 쌓은 것처럼 보인다. 낮에는 은색으로, 밤에는 황금색으로 번쩍인다. 건물 외벽에 총 1만 1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해 하루 중 시간에 따라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사용하는 빛을 번갈아 가며 반사하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코어와 강철 프레임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도시의 로마 원형 극장을 연상시키는 원형 유리 아트리움을 갖췄다. 아트리움 위의 독특한 들쭉날쭉한 형태는 반사 알루미늄 패널에서 돌출된 유리 상자와 함께 지역의 거친 산맥을 반영한다. 외관도 화려하지만 건축물은 지속 가능한 건축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연 환기가 되도록 특수 디자인됐으며 건물의 에너지 중 일부는 태양광 패널을 통해 얻어지는 재생 에너지를 사용한다.

전시, 연구, 교육 및 아카이브 공간을 제공하는 이 타워 건설에 들어간 시간은 자그마치 10년. 부지 매입부터 설계비, 운영비 등 천문학적인 비용은 스위스 제약회사의 후손인  억만장자 마야 호프만 Maja Hoffmann이 재정 지원을 했다. 세계 최대의 제약 회사 중 하나인 호프만 라 로슈 Hoffmann–La Roche는 1896년 마야 호프만의 증조부가 설립했다. 올해 62세인 마야는 예술계의 후원자로 명성이 드높다. 반 고흐 재단 이사이기도 한 마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예술계의 무대 뒤에서 후원과 기획을 해 왔다.  뉴욕에 있는 스위스 연구소의 회장과 뉴 뮤지엄의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이전에는 테이트 모던과 파리의 팔레 드 도쿄 이사회에 몸 담아 현대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엔 독립 예술가와 개척자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루마 재단 Luma Foundation을 설립하고 취리히에서 예술 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Gstaad에서 겨울 비엔날레를 운영했다. 그가 특별하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루마 재단 프로젝트다.

스위스 제약그룹 호프만 라 로쉬 Hoffmann-La-Roche의 공동 후계자로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마야 호프만은 10년 전 수 핵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약 1000만 유로에 인수했다. 그리고 이곳에 1억 5000만 유로를 추가로 투자해 유럽에서 가장 큰 민간 문화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아를의 에르베 스키아베티 시장도 마야의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루마 아를’은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가의 열정이 예술과 도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첫 단계가 시작된 루마 아를은 일종의 학제 간 싱크 탱크로 운영되고 있다. 이 센터는 현대 미술과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풀과 생태, 문화 및 인권에 대한 활발한 교류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및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루마 아를'의 루마(Luma)는 호프만의 자녀인 루카스와 마리나에서 유래하여, 저명한 환경운동가이자 세계 야생동물 기금의 공동 창립자인 마야의 아버지 뤼크 호프만 (Luc Hoffmann)이 자녀의 이니셜을 따서 자선 보호단체 MAVA 재단 이름을 지은 방식을 따랐다.

예술에 대한 무한 애정을 지닌 억만장자가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휘양 찬란한 이 멋진 건물까지 들어서면서 아를에도 ‘빌바오 효과’를 일으키길 지역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에 게리가 디자인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문화인프라가 확대되면서 경제적 동인이 되어 경제가 살아나고 도시의 이미지 또한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이른바 ‘빌바오 효과’라고 하는데 이후 랜드마크가 될만한 문화적 건축물을 짓고 관광객을 불러 모아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시도가 세계적인 유행이 됐다.  

아를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이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또한 화가 반 고흐는 남프랑스의 태양을 찾아 아를에 정착한 뒤 짧은 인생 중 가장 열정적으로 작업했던 것은 너무 유명하다. 그런데 다른 많은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를도 지역 산업의 쇠퇴로 큰 타격을 받았다. 한 때 1200명의 직원을 고용했던 프랑스 국영 철도의 기계 공장이 1984년 문을 닫으면서 높은 실업률과 우울한 경제전망으로 지역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바로 이 공장부지 (Parc des Ateliers)에 아를 타워가 들어선 것 자체만으로 경제 회복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루마 아를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을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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