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에 찾아 온 철쭉

몇 년 만에 본 꽃이 반갑고 고마워라

입춘이 지났으니 분명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긴 겨울을 추위와 코로나에 갇혀 보내는 동안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화분들 덕분이다. 아침이면 음악을 들으며 화분들을 돌보고, 물과 햇빛 공기만으로 살아가는 식물의 생명력에 감탄하곤 한다. 새로 피어난 싹을 보는 것은 일상의 즐거움이다. 꽃 봉오리를 발견하면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하니 반려 식물이란 말은 괜한 것이 아니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게발선인장이 피어 한동안 꽃구경에 즐거웠다. 잎 끝마다 빨간 봉오리가 생겨서 모두 꽃이 필 것을 기대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초반에 네댓 송이만 피고 나선 봉오리들이 그만 말라서 똑똑 떨어지고 말았다. 연말연시 강원도 연곡 집에 며칠간 다녀오느라 집을 비웠던 게 꽃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 달래 가며 물도 주고 바람도 쏘여주었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무심하게 떨어진 마른 꽃봉오리를 주우며 올 크리스마스를 기약했다.

다른 꽃들에 물을 주다가 몇 년째 근근이 버티고 있는 철쭉의 가지 끝에서 뭔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식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이게 새 잎이 나는 건지 꽃이 맺는 건지 알 수 없어 며칠간 지켜보니 분명 꽃 봉오리였다.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연분홍색 꽃이 예뻐 사 왔던 것 같다. 봉오리 끝에 연핑크색이 보인다.

잎이 누렇게 변하고 말라서 떨어지고 드문드문 남았을 뿐이라 곧 생명이 다할 줄 알았는데 그동안 보살펴준 데 대한 보답일까? 반갑고, 고맙다.

작은 화초가 어떻게 때를 알고 꽃을 피우는 건지 신기하다. 자그마한 철쭉에서 강한 생명력과 자연의 신비를 배운다.

때는 마침 입춘(2월 4일)이었다. 오랜만에 붓글씨를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여덟글자를 정성껏 썼다. 역시 서툴지만 뿌듯했다. 뭔가 다시 시작한다는 건 즐겁다. 새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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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사흘만에 집에 들어와서 가장 궁금했던 게 철쭉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 봉오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시들지 말라고 당부하고 떠났는데.. 과연..?

와!! 그 사이 홀로 예쁘게 활짝 피어 나를 맞아주었다. 기특하고, 고마워라!

이어서 꽃이 피고 있다. 집안에 봄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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