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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Feb 24. 2022

제주 유민 미술관, 안도 타다오 건축의 진수

안도 타다오의 건축 속에서 빛나는 아르누보 유리공예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마주친 발견을 가리킨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내발로 움직여 어딘가로 가야 한다.

오랜만에 건축물 시리즈 취재를 위해 제주를 찾았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나가기 어려워지면서 국내 여행지 중에서 최고 인기라는 말이 실감 나게 여행객들이 곳곳에 북적였다. 이정훈 건축가가 디자인한 나인브리지 파고라(후에 상세한 글을 올릴 예정)는 둘러보는 취재를  마치고 이곳저곳 다니며 여유 있게 겨울의 제주를 둘러보겠다 마음먹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이정훈 씨가 강력 추천한 성산일충봉 옆 섭지코지의 피닉스 유민 미술관이었다. 유민 미술관은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제주 섭지 코지의 원생적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설계한 것이다. 원래 이름은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였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땅에서 받은 영감으로 디자인한 명상의 공간이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그곳을 찾았다. 남쪽에는 이미 유채 꽃이 만발해 있었다. 바다 쪽으로 쑥 튀어나온 섭지코지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봄의 전령 같은 유채꽃 덕분에 꽃샘추위도 그리 문제 되지 않았다.  

안도는  빛의 교회, 나오시마 지추미술관 등에서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노출 콘크리트를 통해 자연을 드러내며 명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세계적 건축가이다. 섭지코지의 배꼽에 해당하는 유민 미술관은 안도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소개될 정도로 그의 재능이 발휘된 고품격 명상 공간이다.

제주에는 2000년대 들어 이타미 준이 설계한 비오토피아 내의 물, 바람, 돌 미술관(2004~2006)을 비롯해  외국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뮤지엄들이 속속 들어섰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보광그룹이 섭지코지에 20만 평 규모의 피닉스 아일랜드를 조성하면서  마리오 보타와 안도 타다오를 초청해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건축물을 지었다. 지니어스 로사이(이후 유민 미술관)는 안도 타다오가 제주의 돌과 바람과 하늘을 품은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며 디자인했다. 제주를 드러내는 검은색 현무암과 거친 자연이 매끄러운 노출 콘크리트와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위대함을 오감으로 느끼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다.

돌과 갈대로 장식된 산책로를 지나면 현무암 벽 사이로 진입공간이 보인다.

제주 섭지코지의 원생적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한 유민 미술관은 안도 타다오가 추구하는 건축적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빛과 물, 그리고 제주의 자연을 자연스럽지만 감동적으로 배치해 섭지코지의 자연과 함께 실내외 공간에서 각기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자연 속 '명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총체적 디자인을 한 안도의 손길이 곳곳에 보인다.  

그의 건축 특징답게 비일상적 공간의  체험을 통해 미학적 기능을 극대화시킨다. 노출 콘크리트와 제주의 현무암을 주요 소재로 하는 유민 미술관 곳곳에서는 섭지코지의 물, 바람, 빛 ,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차례로 스톤 가든, 윈드 가든, 양쪽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워터폴을 지나면서 바람과 돌과 물을 느낀다.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 저 너머로 글라스하우스가 보인다. 그리고 온통 하늘이다.

안도의 주요 작품으로 꼽히는 이곳은 해안을 향해 툭 튀어나온 섭지코지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매표소 뒤 연못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양쪽에 야트막한 담을 둔 진입로가 나타난다. 햇살 아래서 갈대가 바람결에 몸을 누인다. 가로로 뚫어놓은 벽에서 들어오는 빛을 향해 걸어가면 물을 만난다. 방금 양쪽으로 갈라진 듯 경사진 벽을 따라 물이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흘러내린다. 유민 미술관은 지상과 지하로 나뉜다. 지상은 노출 콘크리트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차단벽이 지붕 없이 자연과 교감하고, 지하는 노출 콘크리트 벽과 조명이 그윽한 명상의 공간을 연출하는 가운데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소리는 바람 소리와 한데 섞여 방문객을 격하게 반기는듯하다. 직선 방향으로 뒤편 담벼락의 개구부가 보인다.

양 옆에서 경사진 벽을 따라 좌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바람소리와 한데 뒤섞여 방문객의 발길을 재촉한다. 물을 지나 직선방향으로 입구가 보이고, 그 뒤로 가로 방향의 개구부가 보인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이다.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니 앞에 놓인 돌담에 가로 방향의 구멍이 나 있다. 가로로 열린 개구부를 통해 저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그곳에 있는 실물이지만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왼쪽으로 돌아 지붕이 열린 현무암과 노출 콘크리트로 된 벽을 따라 가면 전시공간이 나온다. 빛과 보이드 공간은 전시공간이라고 하기보다는 편안한 명상의 공간 같다. 안도 특유의 건축적 장치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안도는 관람객 스스로 공간 체험을 하면서 개인의 마음에 공간을 담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전시공간의 평면구성은 단조롭다. 정방형을 십자형 통로를 두면서 다시 4개의 정방형 공간을 만들었고 가운데는 원형의 공간을 두었다.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공간에서는 아르누보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아르누보는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20년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을 가리킨다. 예술이 고고한 박물관을 벗어나 생활용품으로 스며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영국 예술 공예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상징주의와 심미주의, (장식적 목판화 등으로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다. 세기말에 나타났다가 20여 년간 불꽃처럼 화려한 삶을 살다 사라졌지만 미술과 생활을 통합시킨 아르누보의 감성은 회화, 조각, 건축 분야로 파급되었고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꽃을 피웠다. 아르누보는 아름다운 유리공예 작품으로 그 영화로움을 증명하고 있다.

낭시 지역 유리공예가들이 만들 아르누보 유리공예 작품들

유민 미술관에서는 프랑스 북동부 지역 낭시 지역의 유리공예가들이 만든 프랑스 아르누보 유리공예의 대표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유민 홍진기(1917~1986) 선생이 오랜 시간 공들여 수집한 작품들이다. 낭시 파(에콜 드 낭시) 유리공예가들은 고온에서 녹인 유리를 대롱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색유리를 덧씌우고, 조각하고, 부식시키는 새로운 공예 기법을 발전시켰다. 에밀 갈레, 돔, 외젠 미셸, 르네 랄리크 등이 프랑스 아르누보 미술을 이끌었던 주요 작가들로 이들은 주로 자연주의적 소재와 영감을 표현했다.  어두운 공간과 조명이 잘 배치되어 유민 미술관의 소장품이 지닌 섬세한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안도는 유민 미술관과 함께 글라스하우스를 디자인했다.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진입 공간에 설치한 담과 개구부를 통해 보이는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글라스 하우스 진입공간의 개구부를 통해 성산 일출봉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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