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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03. 2022

건축 탐구] 제주 팽나무를 위한 ‘파고라’

자연과 엔지니어링 기술의 조화

오래된 나무에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그래서 함부로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한다. 나무에 얽힌 건축물 이야기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클럽 나인브릿지의 '파고라'는 400년 된 팽나무 고목을 위해 공간을 재구축하면서 탄생했다. 자연과 감응하는 건축물이고,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다. 또한 3D 설계기법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구축 기법 등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작품이다. 자연과 화해하며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주에 있는 프라이빗 골프클럽에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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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의 큼직한 정자목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여겨 보호를 받는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어주는 당산목이라고도 하는 정자목은 대부분 느티나무이지만 제주에선 팽나무가 그 역할을 한다. 마을 어귀부터 들판, 해안가까지 곳곳에 제주의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수많은 세월을 보내느라 뒤틀린 몸으로 서있는 팽나무는 제주의 풍광을 상징한다. 팽나무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팽나무 고목에서 비롯된 특별한 건축물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골프 클럽 나인브릿지는 제주의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명문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명성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곳 클럽하우스의 ‘파고라’이다. 작지만 아름답고, 고도의 엔지니어링 기술이 집적된 보기 드문 건축물로  꼽힌다.  

제주의 거친 자연에 맞서 긴 세월을 살아오며 가지와 기둥이 뒤틀린 팽나무 뒤로 파고라가 감싸고 있다.

중산간에 위치한 골프장은 겨울철엔 잔디 보호를 위해 문을 닫는다. 한 겨울의 골프장에는 손님들을 대신해 찾아온 까마귀 떼가 요란하게 울어대고 있다. 스산하면 스산한 대로 겨울의 제주는 아름답다. 이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고 서있는 나무 한그루가 있다. 수령이 400년은 족히 되는 이 팽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이 나무 뒤로 온실처럼 생긴 유리 파빌리온 ‘파고라’가 부드럽게 에워싸고 있다. 햇살을 머금고 서 있는 나무가 참 편안해 보인다.

파고라를 중심으로 한 클럽하우스 공간 재구축 프로젝트의 출발은 바로 이 고목(古木)이었다. 이 팽나무는 골프장이 건설되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이곳의 건축적 배치와 구축 논리는 지배하는 장소성의 상징이었다.

“현장을 처음 답사했을 때 보니 무리하게 공간적 효용성만 고려하고 지어진 기존 건축물이 고목의 머리를 누르는 불편한 모양새였어요. 몸살을 앓고 있는 나무를 보자 어떤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갈지 첫눈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

이정훈 소장(조호 건축사사무소)은 “그 대지의 주인공인 중요한 나무가 편안하게 자라도록 공간을 재구축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면서 “불편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공생하던 자연과 건축 공간의 화해라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새로 지어진 파고라는 위에서 보면 세 갈래로 퍼진 나뭇잎 모양에 남쪽 면이 조금 더 움푹하게 들어가 있는 유선형이다. 옆에서 보면 유리는 위로 올라갈수록 뒤로 물러나면서 완만하게 곡선을 이룬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랬던 것처럼 팽나무가 편안하게 그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무의 생장을 고려한 결과다. 이 소장은 “조경팀과 협조하며 1년에 나무가 얼마나 자라는지, 전지 작업을 했을 때 건물과 어느 정도 간격을 두어야 나뭇가지가 건물에 닿지 않고 편안하게 자랄 수 있을지를 감안해  디자인하고 조경도 다시 새롭게 했다”고 말했다.

비정형의 유기적인 디자인의 구조물은 3차원 형상의 부재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공 난이도가 매우 높다. 이 소장은 프랑스 낭시 건축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라빌레트 건축학교에서 유럽 건축사 디플롬을 취득한 뒤 메츠 퐁피두센터를 디자인한 시게루 반 사무소와 비정형 하이테크 건축으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자하 하디드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10년간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일하면서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엔지지어링 기술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목도했던 그는 파고라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에 도전했다.

“건물은 구조가 있고 공조 설비가 지나가는 덕트가 따로 있지만 나무는 줄기가 곧 구조입니다. 나무가 주인공이 되도록 건축물을 디자인하면서 구조적으로도 자연 그 자체의 속성을 지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구조체인 줄기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며 생장하는 나무처럼 구조와 설비가 일체화된 이중 덕트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이 소장은 “파고라는 은유적으로 표현된 나무”라고 강조했다. 나무에서 영감을 받았고, 나무를 위해 디자인된 파고라는 구조체의 시스템 자체도 자연의 나무를 닮았다. 안에서 보면 파고라는 보와 기둥의 구분이 없이 오브젝트 자체가 구조체를 이루고 있다. 12㎜ 두께의 철판을 용접해 만든 메인 구조체 안으로 공기 순환을 주도하는 덕트 시스템이 이중으로 지나가도록 디자인했다. 메인 구조체는 내부 공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면서 전체적인 하중 및 설비의 흐름을 유도하는 메인 관로의 역할을 한다. 이중 관로 중 내부 덕트는 환기 및 공조를, 외부 덕트는 구조체를 구성하는 덕트로 각각 기능한다. 코로 들숨과 날숨을 하는 것처럼 환기시스템을 통해 신선한 공기를 순환하고 여름과 겨울철에는 냉난방된 공기로 실온을 유지한다. 자연의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과 동일한 구조다.

굵은 6가닥의 메인 구조체(메인 덕트)는 세 방향의 구조적 흐름으로 분할된다. 3개로 분할된 형태는 각각 6개의 보로 나뉘어 각 지점에서 상부의 하중을 전달하도록 되어 있다. 구조체의 크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 결정했다. 바람이 거센 제주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구조체의 단면에 안전율을 적용했고, 환기 시스템 및 에어컨 디셔 닝을 위한 공기의 풍량도 고려했다. 에어 컨디셔닝을 할 때 발생하는 결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밀도 단열재를 덕트 사이에 채웠다. 일교차가 큰 제주에서 냉난방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환기 덕트를 설치해 외기에 대응해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했다.

이 소장은 “기능적 요구와 형태의 아름다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건축 설계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서 “내외부 공간에서 요구하는 투명성과 공간감, 구조와 설비 기능을 충족하면서 덕트의 관경이 충돌하지 않도록 최적화된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구축 체계에 살아있는 자연의 속성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파고라의 구조를 완성하는 유리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파고라에는 160여 개의 비정형 반강화 복층 유리와 측면을 위한 280여 개의 곡면 유리가 사용됐다. 강한 비바람과 때로는 주먹만 한 우박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만큼 유리와 유리 사이에 필름을 부착해 격자로 접합하는 특수 유리다. 440장의 유리가 가진 곡률 값은 140여 개나 될 정도로 크기와 디자인이 각기 다르다. 유리에서 철분을 제거해 순백색으로 만들고 곡선이지만 왜곡이 없도록 했다.  

파고라 야경
위에서 내려다 본 파고라의 모양

이 소장은 “비정형 유리를 실제로 쓰기 위해서는 단열률, 열관류율을 맞춰야 했고 우박이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반강화 접합유리로 만들어야 했다”면서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로 국내에선 찾지 못해 중국의 특수 유리 생산공장에서 제작해 한국에서 최종 조립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심천의 유리 생산공장은 프랭크 게리의 루이뷔통재단 미술관이나 렘 콜하스의 프로젝트를 수주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곳이었다. 오차를 1㎜ 이내로 줄이기 위해 철골 검측에서 사용한 3D 스캐너를 중국 공장에 가져가 제작 공정 중 수차례 확인했다. 가장 어려운 관문은 각기 다른 크기와 디자인의 포물선 형태의 유리들을 한국으로 가져와 철골 구조체에 정확하게 끼워 맞추는 작업이었다.  

조립과정

“비정형의 구조체와 유리 개체들이 정확한 데이터 값에 의해 제작되어야 했고, 현장에서 재조립되었을 때 오차가 10㎜를 넘어서는 안 되는 정교한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체와 유리의 3D 제작 값과 현장에서 조립된 공간을 스캔한 값이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수차례 검증하면서 구조체와 유리 조립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 소장은 “파고라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닮고자 시도한 프로젝트”라면서 “규모는 작지만 고목의 안락함을 재구축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진화를 거듭했고, 난도가 높은 공사를 엔지니어링 기술로 해결해 나가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호수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을 은유적으로 재구축하며, ‘숨 쉬는 파빌리온’이라는 건축적 개념을 실현한 ‘파고라’는 디자인에 적용한 테크놀로지가 창의적이고 건축적 완성도가 뛰어난 건축 작품에 수여하는 ‘김종성 건축상’ 2020년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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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건축 오디세이에 싣기 위해 쓴 것을 기반으로 합니다. 사진 제공 : 조호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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