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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Apr 01. 2022

건축 탐구] 알로이시오 기지 1968

삶의 기본기와 나눔을 배우는 전진기지

오랜만에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하면 해운대가  하다고 하는데 내가  곳은 부산 서구 암남동. 지난해(2021)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과 부산 건축대상 대상을 받은 알로이시오 기지 1968'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던 3월의  일요일, 부산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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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사람이 만든 흔적은 역사로 기록된다. 그것을 이어가는 것 역시 사람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좋은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은 그런 소임을 받은 건축가의 몫이다. 건축가 우대성(건축사사무소 오퍼스 대표)이 작업한 ‘알로이시오 기지 1968’을 보면 이런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이 사회를 지탱해 주는 힘이고, 건축이 그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 서구 암남동의 언덕배기에 위치한 ‘알로이시오 기지 1968’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조금은 특이한 명칭을 뜯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전쟁 후인 1957년 부산 송도 본당 신부로 부임한 이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고 떠난 소 알로이시오 신부(1930~1992)가 기적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가톨릭 교회가 2015년 가경자(성인 후보자)로 선포했을 정도로 겸손과 사랑, 봉사의 열정으로 평생을 살았던 분이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1964년 마리아 수녀회를 창립했다. 수녀들과 함께 연고가 없는 아이들을 거두고,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도록 1968년 학교를 세웠다. 부산 소년의 집에서 출발해 보살핌이 필요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회인으로 성장시킨 학교는 순차적으로 폐교됐다. 알로이시오 중학교가 2016년 2월,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가 2018년 2월 문을 닫았다.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웃고 있는 젊은 시절의 알로이시오 신부

그렇다면 왜 ‘기지(基地)’일까?

‘알로이시오 기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우대성 대표는 “망망대해에서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전진 기지처럼 빠른 세상의 변화에도 늘 버팀목 같은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지(베이스캠프)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간이 바뀌면 행동도 그걸 담는 프로그램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기지는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기본기를 배우고, 잃어버린 몸의 감각을 일깨워 자신을 알아가는 곳입니다. ”

지금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공간의 쓰임과 방향을 찾기 위해 우 대표는 마리아 수녀회와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댔다. 생각에서 완성까지 자그마치 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그중 6년은 방향성을 잡고, 협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었다.

“학교를 닫고 나면 이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왜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할 것인가? 알로이시오 정신을 계승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수녀회의 미션에 맞으며 이 시대에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건물 디자인에 들어간 시간은 전체 기간의 10% 정도밖에 안됩니다.”

20여 년 전 소년의 집 학생의 첫 영성체 때 대부 역할을 맡으면서 마리아수녀회와 인연을 맺은 우 대표는 아이들의 거처인 수국 마을(2012~13)을 비롯해 알로이시오 가족센터(2013~14), 소년의 집 생활실(2015), 체육관(2016~17) 등 리노베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그에게  ‘사회적 건축가’란 타이틀이 자연스레 붙었다. 그만큼 책임감도 컸을 것이다. 2013년부터 시작해 2021년 마무리된 알로이시오 기지는 사람들의 삶에 진정 필요한 것 중에 국가나 다른 곳이 못하는 것, 달리 말하면 ‘스스로의 생각을 키우고, 삶의 기본기를 익히고, 잃어버린 감각을 열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기점’이 되는 곳으로 문을 열었다. 부산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방과 후 교실과 자율학기제 수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마리아 수녀회의 미션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교육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기지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안승주 부기지장은 “방과 후 교실이나 자율학기제라는 정책은 있지만 체험 학습할 시설이 부족한 현실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학생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와중에도 지난해 1만 6천 명의 학생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3천여 명이 건물을 참관했다. 올해 이용을 신청한 학생들도 2만 명이 넘는다.

50년간 학교로서의 쓰임을 다한 학교는 어떻게 삶의 기본기를 익히고 감각을 깨우고 자기를 알아 가는 곳으로 바뀌었을까. 우 대표는 “기지는 기존의 종합 실습동을 완전히 고친 집(기지#1)과  4층이었던 고등학교 건물 중 1개 층만 남기고 누마루를 올린 집(기지#2), 그리고 그대로 둔 집(기지#3)으로 이루어졌다”며 “예산 때문이기도 했고,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학교 건물은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고 말했다.

폐교된 학교를 고쳐 만든 알로이시오 기지, 병원 뒤의 건물들 왼쪽부터 1,2,3/ 사진 윤준환 작가
기지#1 이미지

대신 기지#1과 기지#2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었다. 기지#1은 전자기계고등학교 종합실습실로 쓰던 건물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복도에 교실이 양쪽으로 붙은 전형적인 학교 건축에서 중앙의 복도를 걷어내고 지그재그 형태의 경사로를 넣었다. 밀링 선반과 공작기계가 가득했고 지게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넓고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라 구조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알로이시오 기지 기지 1 가운데 복도를 걷어내고 경사로를 만들었다. /사진 윤준환 작가

“중앙의 경사로는 이 공간의 중심이 되는 동시에 기지의 기본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활용됩니다. 기지에 도착하면 휠체어를 타고 경사로를 따라 건물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이곳 프로그램의 필수 코스입니다. ‘더불어, 함께’라는 알로이시오 기지의 미션과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빵 굽는 수녀님’들의 향긋한 커피와 빵 냄새가 반기는 기지#1에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천정을 뚫어 만든 공연장 ‘알로이시오 홀’에는 피아노와 드럼이 놓여있다. 계단 의자는 아이들이 쓰던 실내체육관의 목재 바닥재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기지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봤다. 코흘리개 아이들 손을 잡고 활짝 웃는 젊은 알로이시오 신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층 창 쪽으로는 편하게 등을 기대고 쉴 수 있는 캠핑의자들이 놓였다. 밖으로 풍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겠다.

알로이시오홀

알로이시오홀 2층의 테라스. 창밖에 비가 내릴 때 편히 앉아 비구경하고 싶은 장소.

생활 공방, 뷰티 활동실, 음악활동실 등을 지나 3층엔 도서실이 있다. 그 옆으로 넓은 방에 낮은 소파들이 놓여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문을 활짝 열어 안과 밖이 통하도록 했다. 고치는 동안 비워낸 곳의 여러 곳을 여백으로 남겼다. 여백은 그대로 여백으로 남은 덕분에 아이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다가도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활동과 휴식의 정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침묵의 방’이 있다.

우 대표는 “함께 떠들고 나누는 것만큼 빈둥거리고 침묵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가능한 혼자,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침묵의 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침묵의 방
수직농장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놓인 모두의 식탁


도서실

기지의 모든 공간은 다르게 만들어졌고 서로 연결된다. 개개인이 다르고 세상이 연결된 것처럼 공간도 그랬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4층까지 올라왔다. 특수조명이 설치된 수직농장에서는 싱싱한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수직농장에서 키운 채소와 옥상 텃밭에서 일군 야채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도 있다. 집에서처럼 씻고 볶고 요리해서 ‘모두의 식탁’에서 함께 나눠먹는다. 장애인을 위한 낮은 요리 테이블도 있다. 부엌은 잔디가 깔린 ‘달빛 옥상’으로 연결된다. 바비큐 파티나 간이 캠핑도 가능한 공간이다.  

우 대표는 “현대의 도시주거는 대부분 아파트이기 때문에 집에서 자연을 경험할 기회가 사라졌다”면서 “기지는 아이들의 감각을 깨우고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콘크리트를 걷어 텃밭을, 건물의 공간을 비워 발코니를 만들었고 옥상에 흙을 채워 잔디를 깔아 자연과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목공실에서 작업 중인 프로그램 참여자들./사진 윤준환 작가
기지#2의 풍경마루 쪽에서 바라본 기지#1/사진 윤준환 작가

기지#2는 4층 건물의 1층만 목공실로 남기고 나머지를 걷어낸 자리에 현대식 누마루 ‘풍경마루’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떠올리며 작업했다고 한다. 양쪽의 큰 건물과 뒤편의 옹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만들어진 누마루는 바닥에 온돌을 깔았고, 접이식 통유리 문을 달아 사계절 내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청마루 앞은 주차장으로 쓰이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텃밭을 만들었다.

“만대루는 서원의 강학과 환대의 장소이며 비움과 쉼의 복합 장소였습니다. 기지의 누마루도 무엇으로든 사용할 수 있도록 굳이 쓰임새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쓰임은 이용하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풍경마루에 앉아본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신나게 뛰어놀다 느긋하게 앉아 멀리 바다를 바라볼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건축가 우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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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주> 위의 글은 서울신문 시리즈 '건축오디세이'에 기재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진은 크레딧 표기 없는 것은 필자, 그외는 건축가 우대성 / 윤준환 작가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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