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모 곁을 떠나 영유아기의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놀고, 먹고, 배우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첫 이성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사회경험을 시작한다. 소중한 장소이지만 도시의 사설 어린이집은 공간이 좁고, 예산의 부족 등으로 인해 이상적인 공간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설 좋은 공립어린이집은 오래 대기해야 하고, 기다리다가 아이들이 취학연령이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나마 최근 어린이집 설계 공모가 심심치 않게 진행되면서 공. 사립 어린이집에도 건축가의 손길이 닿는 경우가 많아졌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 육아는 가장 큰 일이다. 아이들이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학습하고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은 다다익선일 것이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청라 국제도시에 있는 하나금융 어린이집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고, 고층 아파트 사이의 놀이터에서 놀고, 규격화된 마트에 따라가고, 상가의 학원에서 무언가를 배우다가, 학교에 들어가고 입시에 매진하는 아이들의 어린 날에 그나마 반짝반짝 보석 같은 추억을 심어주는 공간이 되길..
(* 아래의 본문 기사는 서울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건축 오디세이>를 위해 작성한 글을 약간 수정하여 소개한 것입니다. )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재앙’에 대한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은 2016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유엔 인구통계에 따르면 0.84명을 기록한 2020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98개국 중 가장 낮다. 올해는 0.77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늦게 낳고, 적게 낳고, 안 낳은 결과다. 열악한 양육 환경이 그 첫째 이유로 꼽힌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을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사회와 국가, 기업 등 다양한 사회 주체가 골고루 분담하는 ‘부담의 사회화’가 해법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건축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이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안전하게 하루를 보내고, 발달 단계에 맞게 배우고 사회성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서구 청라 하나드림타운에 새로 문을 연 청라 하나금융 공동 직장어린이집(이하 하나어린이집)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출산과 육아가 더 이상 한 가정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나금융그룹은 일과 가정의 조화로운 양립과 저출산 현상 대응에 필요한 부분이 안정적 보육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인식 아래 2018년부터 ‘100호 어린이집 건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총 100호 중 58번째로 지난 5월 정식 개원한 청라 어린이집은 중소기업과의 상생발전을 위해 건립된 직장 어린이집이다. 연면적 3960㎡(약 1200평)에 정원 300여 명의 국내 최대 규모로 지어졌다.
드론 촬영한 청라 하나어린이집 ( 이손 건축 제공, 김종오 작가 사진 )
매립지에 세워진 청라지구는 모든 시설이 차량 동선 위주로 구성되어 인간적 척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주로 아파트 단지와 상가, 업무시설에 익숙하다. 구색을 갖춰 살기에 편리하긴 하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쌓을만한 마을이나 골목길 등 사람 냄새나는 구석이라거나 자연환경은 부족하다.
“잃어버린 소우주를 아이들에게 되찾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어린이집을 디자인한 건축가 손진 소장(이손 건축)은 “건축을 디자인할 때 도시의 콘텍스트와 역사 등 주변 환경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곳은 환경이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새롭게 형성된 지역에 지어지는 어린이집에 대한 구상은 이런 도시적 ‘결핍’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베네치아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귀국 후 이손 건축 설립(1997년) 초기 천사유치원(경기 안양)을 시작으로 운문유치원(경북 경산), 아이뜰 유치원(경기 수지) 등 꾸준히 유치원과 어린이집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척박한 신도시의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도시적 공간이란 무엇이어야 할지를 고민해 온 손 소장은 유아 스스로 학습 주체가 되어 흥미를 발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하는 유아교육법인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탈리아의 유아 교육가 로리스 말라구찌가 정립한 이 교육법에서는 유아를 또래 친구나 사회·문화적 환경으로부터 동기가 유발되어 스스로 자신의 학습을 구성해 나가는 존재로 본다. 그런 만큼 주위의 사회, 문화 그리고 환경이 아주 중요하다. (이 학습법에서는 아이들이 친구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다투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까지도 중요시 여긴다.) 사회적 환경뿐 아니라 물리적 환경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의 공간에 미적 요소를 많이 가져 감으로써 스스로 몸을 움직여 오감으로 체험해 보도록 한다.
손 소장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나의 마을 같은 공간을 제공해 주고자 했다”며 “동네를 이루는 구성물을 물리적으로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구성적·공간적 틀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철마다 꽃이 피고 지는 산과 내가 흐르고 마당을 가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런 정감 있는 ‘동네’를 상상할 수 없는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비슷한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드론 촬영한 청라 하나어린이집 (이손건축 제공, 사진 김종오 작가)
남북으로 긴 가로 140m, 세로 40m의 장방형 대지에 들어선 하나 어린이집을 위에서 보면 종이접기를 했던 것을 펼쳐 놓은 모양이다. 지붕에 덮은 잔디의 초록색이 신선하다. 옆에서 보면 굴곡진 지붕이 마치 자그마한 산 봉우리들이 올라앉은 것 같다. 언덕과 그 사이사이 삐죽 튀어나온 천창들 때문에 3개의 방향에서 보는 외관은 제각각이다.
손 소장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 건물 자체에 의도적으로 굴곡진 지붕을 만들고 그 자체로 지형을 이루도록 했다”면서 “인공적 지형의 구성은 종이 접기의 형식을 취해 의도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굴곡진 지붕 덕분에 내부에는 천장 높이가 2.5m 에서 6.6m에 이르는 역동적 공간이 만들어진다.
하나어린이집에서는 곳곳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손 소장은 “삭막한 아파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정원을 통해 자연환경을 접하고, 인공조명이 아닌 부드러운 자연광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보육실 어디어서나 정원(마당)이 연결된다. (사진 함혜리)
넓고 평평한 1층 평면은 두 개의 영역으로 크게 나눠 주차공간에서 가까운 남쪽에 영아 영역(1~2세 반)을, 북쪽으로 유아 영역(3~5세 반)을 배치했다. 18개의 보육실이 긴 복도 양쪽으로 펼쳐진다. 바닥의 마모륨 색깔로 구분된 영역 별로 광장 역할을 하는 공동 놀이공간이 있고, 여기에서 보육실로 들어가는 구조다. 9m 모듈을 기본으로 다양한 크기의 마당 9개가 2개의 보육실마다 하나씩 들어앉아 있다. 보육실 2개가 하나의 놀이마당을 양쪽에서 공유하는 방식이다. 각 보육실에서는 한쪽면이 마당과 접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어서 통창을 통해 자연광이 유입되고, 날씨가 좋을 때는 마당에 나가서 놀이를 하기도 한다. 마당의 타일은 빨강, 노랑, 파랑 등 컬러풀하게 입혀 미적 요소를 가미했고 그 색깔이 내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긴 복도에는 기하학적 모양의 천창들을 적절히 배치해 마당을 통해 유입되는 자연광이 미쳐 닿지 못하는 지점에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다이내믹한 천정과 긴 복도에 설치된 목 구조 띠가 조화롭다. (사진 함혜리)
1층 내부는 자작나무 집성목으로 된 목구조가 길게 띠처럼 이어진다. 어린이집에는 아이들 옷장, 장남을 비롯한 다양한 학습교재 때문에 수납공간이 넉넉해야 한다. 교사들이 편안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휴먼스케일을 적용해 높이 2.2m, 깊이 0.6m, 폭 1.2m의 목구조를 길게 띠처럼 설치했다. 목구조 띠는 수납공간 외에 보육실들과 유희실, 원무실들의 경계를 규정하기도 하며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내부 공간에 수평의 안정적인 분위기를 준다. 긴 복도 한편 자전거 주차 구역에 자전거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긴 복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것 같다.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는 긴 복도(사진 함혜리)
입구에서 가까운 유아 공동 놀이공간(사진 함혜리)
통창으로 정원이 보이고, 자연광이 들어오는 보육실 내부.(사진 함혜리 )
마당의 빨간색 타일 색이 실내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손 건추구 제공, 사진 김종오 작가)
영아·유아 영역이 이어지는 지점에는 왼편으로는 통창이 시원하게 나 있는 식당, 오른쪽으로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형 도서 공간을 두었다. 폭 3.8m의 계단형 도서 공간을 오르면 다목적 공간과 특활실, 요즘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유튜브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만난다. 비가 오는 날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은 밖으로 연결된다. 아이들은 2층 지붕의 잔디 언덕에 올라가 자연을 밟고 느낄 수 있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과 계단식 서가(사진 함혜리)
2층 다목적실의 사각형 천창은 아이들이 특별히 좋아한다. 맑은 날에는 파란 하늘과 구름을 올려다 보고, 비가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2층 네모난 천창에서 아이들은 하늘을 보고, 비오는 날 빗소리도 듣는다. ( 사진 함혜리)
남북으로 길게 배열된 양쪽 보육실과 마당들 사이로는 원무실 및 유희 공간들이 안쪽으로 배열되어 동서로 맞물린다. 교사들이 수업 준비를 하고 사무를 보는 원무실 외에 선생님들을 위한 휴식공간, 학부형들의 상담실에도 신경을 썼다.
“사립 어린이집에 가보면 대부분 선생님들의 공간이 너무 열악했어요. 어린이집의 주인공은 물론 어린이들이지만 선생님들과 부모들도 똑같이 중요한 사용자들입니다. 아이들, 학부형, 선생님 3요소가 충족하는 공간이야 말로 하나의 마을 같은 공간이 될 것입니다. ”
건축가 손진
하나 어린이집은 푸르니 보육지원재단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개관 첫해인 올해는 총 수용인원의 3분의 1 정도인 95명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22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보살핀다. 양은희 원장은 “층고가 높고 선과 면이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처음엔 낯설어 하지만 천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것을 발견하곤 신기해한다”면서 “자연친화적인 공간이 풍부해서 아이들의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청라 어린이집은 두 차례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2021년 10월 건물이 완공되어 건축가 등에게 공개하는 오픈하우스 행사 때였다. 개원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 외부인은 출입이 수월치 않아 건물 구석구석을 온전히 답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개중에는 어린이집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건축가도 있었는데 모두들 이런 큰 공간을 다채롭고 말끔하게 만들고 마무리한 데에 감탄했다. 모서리도 많고 천청이 있는 불규칙한 천정의 마무리는 뿐 아니라 시공과정에서 감리를 직접 하지 않으면 실현이 어려운 것임을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 소장은 “감리사는 따로 있었지만 우리 사무소의 실장이 줄곧 감리 현장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어떤 건축가는 목구조 띠의 높이를 2.2m에 맞춘 이유가 뭔지(나는 안 궁금한 거였는데 참 이상한 데에 집착하는 게 신기했다) 물었다. 손소장의 답은 표준 아파트의 문 높이였다. 2.1~2.3m인데 그 중간을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휴먼스케일로 삼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발주처(하나금융)에서 언론 공개를 미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기에 기사 출고를 당장에 할 수 없었다. 지난 3월 개원하고, 5월 개원식 하고 7월 초에 (드디어) 출고를 위해 재방문했다. 시간이 흘러 공간이 잘 생각나지도 않았고, 그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건축가의 의도가 잘 살아나는지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 시간에 양은희 원장의 안내를 받아 돌아봤다. 참 편안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곳에서 아이들이 재미나게 생활하는 것 같아 좋았다.
직장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로 오는 엄마 아빠들의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선생님들도 지친 기색 없이 늦게까지 남아야 하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나를 안내해준 원장님과 눈이 마주친 꼬마가 조막만 한 손을 자꾸 흔들어 보이며 인사를 한다. 공공과 민간, 사회, 건축가, 가정이 마음을 모아 만들어 준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