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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Nov 21. 2022

건축 산책: 르 코르뷔지에, 메종 라로슈

Maison La Roche 파리 16구

오랜만에 프랑스 여행 준비하면서 특별히 계획했던 것은  코르뷔지에 건축 답사였다. 파리에 있을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파리 근교(푸아시) 있는 빌라 사부아(Villa Savoye, 1931)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공부가 되지 않아서 그곳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방문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사이 건축에 대해   학습을 하면서 모더니즘 건축에서  코르뷔지에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실하게  코르뷔지에의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2016  코르뷔지에가 남긴 17곳의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했으니 더욱더 동기 부여가 됐다. 스위스에 호숫가에 어머니를 위해 설계한 작은 집을 가보고 싶지만 이번 여행은 프랑스에만 머물기로 했으니 프랑스에 충실하기로 한다.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르 코르뷔지에가 예술잡지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에서 선언한 현대 건축의 5가지 요소 Cinq points de l’architecture moderne를 짚어보자. 실제로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에서 다양한 변주로 이 5가지 요소를 적용하고 있었다.

필로티- 건물의 구조적 무게를 가볍게 지상에서 들어 올리는 다리 같은 것. 땅의 눅눅함을 방지하고 자유로운 1층의 순환을 허용한다. 또한 마당(혹은 정원)이 건물 내부로까지 확장되어 들어오는 기능도 하며 비와 태양광으로부터 안전하게 차를 세워 둘 수 있는 주차장 역할까지 한다. 심미적이면서 기능적인 장치다.

평면의 자유로운 디자인 – 철근 콘크리트를 건축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굳이 기둥(내력 칸막이)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구조물과 독립적으로 평면을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생활공간의 디자인과 활용 면에서 유연성이 생긴다.

파사드의 자유로운 디자인 – 구조적 제한에서 벗어난 건물은 파사드(건물 정면)의 디자인이 자유롭다. 더 가볍고 더 개방된 파사드가 가능해진다.   

4. 가로로 긴 창 – 역시 구조적 제한에서 벗어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옆으로 길게 창을 내어 주변 경관을 볼 수 있고 각 공간에 최대한의 자연 채광이 가능해진다. 실내에 있으면서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다.

5. 땅에서 벗어난 녹지, 옥상 정원 – 정원 테라스가 있는 평평한 지붕에 녹지 공간을 마련하면 건물이 밀집한 도시 생활에서도 전원의 기분을 만끽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건물에 자연스럽게 단열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파리 16구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있는 빌라 잔느레는 외부인이 방문할 수 없고 연구자들을 위한 도서관으로만 개방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메종 라로슈는 방문이 가능하다. maison 은 집이란 뜻이다. 지하철 역은 Jasmin. 예전에 파리 살 때 바로 근처에 살았었는데 그때는 가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튼. 거기까지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아갈 정도로 나도 그동안 멈추지 않고 ‘성장(?)’한 듯하여 잠시 뿌듯.

파리 16구는 파리에서도 중상류층이 사는 동네다. 아파트 건물도 고급진 것들이 많은데 길에서 보면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 뜰(정원)을 예쁘게 가꿔 놓고 있다. 정원을 외부와 차단시키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 즐기도록 한 파리의 고급 아파트와 달리 메종 라로슈는 ‘독퇴르블랑슈 스퀘어’라고 쓰인 문을 들어서서 안으로 길게 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야 한다. 진입로 안 쪽에 건물을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거주자의 시선이 밖으로 향하게 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설계 당시 지형의 입지가 까다로워 그렇게 했다는 설도 있지만 혈기 왕성한 청년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 주택의 폐쇄성을 비판했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골목 양쪽으로 나무가  있고 골목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 위에 낙엽이 떨어져 운치를  했다. 왼쪽 건물은 트레이드 마크인 필로티 구조를 하고 있는데 마당이 비좁은  건물의 마당 공간을 확보해 나무와 풀들이 자라도록  준다. 메종 라로슈는 초기의 작품이라 빌라 사부아처럼 적극적으로 필로티 드러나게 디자인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왼쪽 건물을 들어올려 디자인한 것이 눈에 띈다. 오른쪽에 있는 3 규모의 메인 건물 현관의 벨을 누르면 안내인이 문을 열어준다.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나타나는 3층까지  트인 보이드( 공간) 정신이 번쩍든다. 사진에 담기엔 아주 넓은 공간 방문객을 맞는다. 

메종 라로슈는  코르뷔지에의 든든한 후원자로 스위스 바젤 출신의 기업가이자 미술작품 수집가인  로슈를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파리에 있는 스위스인 친구들이나 파리에서 만난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것을 즐겼다. 파티에 참석하러  사람들은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보이드의 공간감에 압도되는 동시에 환대받는 느낌을 받았을  같다.

오른쪽으로 좁은 복도(사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같은 것이 보이지만 동선은 자연스럽게 좀 더 넓어 보이는 왼쪽 계단을 따라간다. 오른쪽 계단은 좁고 어둡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중간에 작은 발코니가 있어서 현관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멈추어 보이드의 공간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위로 올라가면서 도대체 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인다. 계단을 오르면 긴 복도가 정면으로 보이고 오른쪽에 넓은 살롱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중앙 보이드 공간을 기준으로 좌측은 수집품을 걸어놓고 즐기는 갤러리와 서재가 있는 공용 공간이고 우측은 식당과 침실, 화장실이 있는 사적인 생활공간이다.

2층의 갤러리에는 남쪽으로 넓은 가로 창이 나 있어 개방감과 함께 자연 채광에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북쪽 벽에 붙여서 3층으로 오르는 경사로를 두었다. 건축적 산책로인데 이 경사로를 올라가면서 자신의 소장품을 감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 므슈 라로슈를 상상해 본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이탈리아 화가 카를라 아코르디의 옵티컬아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2층에서 복도를 따라 개인 생활공간으로 이동한다. 긴 창을 둔 식당이 있는데 아래층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올리도록 도르래를 만들어 놓았다. 3층 침실의 창문은 작게 나 있어서 아늑해 보인다. 제일 위층으로 올라가면 옥상으로 이어진다. 과거에 옥상 정원을 두었는데 지금은 사진만 남아있다.

생활공간에서는 3층과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1층에 손님방과 화장실이 나온다. 들어오면서는 있는지도 몰랐던 공간이다. 내 집처럼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방문객에게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고 싶은 건축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초기의 작품인 메종 라로슈는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장소로 젊은 그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리용 근처의 라투레트 수도원과 마르세유의 류니테 다비타시옹(집합 건축), 롱샹성당까지 이어지는 르 코르뷔지에 건축 답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그곳을 떠났다.

메종 라로슈는 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방문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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