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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an 17. 2023

프랑스 22 파리 오르세 : 로사 보뇌르 전

혁신과 파격의 여전사 탄생 100주년 기념전

19세기말 남성 중심의 고루한 세상을 향해 “난 다르게 살겠다.”고 외쳤던 여성. 뛰어난 재능과 혁신적인 사고로 세상을 흔들었던 화가. 2022년, 100년 전 파격의 대명사였던 화가 로사 보뇌르 Rosa Bonheur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그녀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렸다.

 속에 당당하게  있는 커다란 수사슴이 담긴 포스터가 인상적이었지만 화가도  모르겠고, 그래서 전시를  생각을  했는데 서점에서 여성화가들에 대한 책에 실린 그녀에 대한 글을 읽고는 오르세를 찾아갔다. 화가 로사 보뇌르(1822-1899) 어떤 인물인지 위키피디아에서 소개한 키워드를 기초로 간략히 훑어보면 이렇다.


'1822년 출생 1899년 사망, 프랑스 화가 레지옹도뇌르 훈장 수훈자,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수훈자, 레즈비언 예술가, 여자화가, 보르도 출신, 성소수자 미술가'


그녀의 삶이 앞 뒤가 안 맞는 것은 그만큼 한 획을 그었다는 상상을 할 수 있겠다.  

'마리 로잘리 보뇌르(Marie-Rosalie Bonheur)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프랑스 예술가로 동물 화가이자 조각가로 사실주의적 회화로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화가였다. 대서양 건너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물론 멀리 미국에 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가장 잘 알려진 그림으로 1849년 살롱 드 파리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현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니베르네에서의 쟁기질 (  Labourage nivernais)'과 1853년 살롱에 전시되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장된 '말 시장' (Le marche aux chevaux)이 있다.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남성의 전유물인 바지정장에 담배를 들고 있는 로사. 가슴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걸고 있다.  


이번 전시는 좀 더 자세히 로사 보뇌르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로사는 1822년 3월 16일 보르도의 예술가 가족의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풍경화와 초상화 화가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교사였다. 로사와 그의 동생들까지 모두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고 남녀 차별 없이 교육을 장려하는 생시몽 주의자였던 부모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격려했다. 로사는 6세이던 1828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해 보다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로사와 남동생 오귀스트 여동생 줄리엣은 동물화가로, 동생 이시도로스 쥘 보뇌르는 동물 조각가로 성장한다.

어린 로사는 읽기 수업은 부진했지만 몇 시간씩 종이에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알파벳마다 동물을 선택해 그리게 하는 방식으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경험 덕분에 동물 그리기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싹텄다. 성격이 강한 로사는 학교에서 종종 갈등을 빚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재봉사 도제가 되는 수업을 받다가 실패한 뒤 아버지는 그녀를 화가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동물을 가족 스튜디오에 데려와 그릴 수 있도록 해 주고 드로잉책에 있는 이미지를 따라 그리거나 석고 모델을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교육했다.  말 양 소 염소 토끼 등 가축 외에도 근교의 목초지와 불로뉴 숲의 동물들을 그렸다. 열네 살부터 루브르에서 옛 화가들의 걸작을 따라 그리는 모작을 했다. 니콜라스 푸생, 페테르 파울 루벤스, 발바토르 로사, 카렐 뒤자르댕의 작품을 모사하며 파리 도살장과 메종알포르의 국립수의학교에서 동물을 해부하며 동물의 해부학과 골학을 공부했다. 세밀한 습작은 이후 회화와 조각작품의 바탕이 된다.


1852년 시작해 1855년 완성된 '말시장'. 가장 유명하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말 시장'은 살페트리에르 병원 근처 로피탈 대로에서 열린 파리의 말 시장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성공은 국제적 명성으로 이어져 스코틀랜드 여행할 때 로사의 작품에 감탄한 빅토리아 여왕을 친견하기도 했다. 미술상 에른스트 감바르가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프랑스보다 영국에 동물화가로 적극 알린 덕분에 프랑스보다 영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고,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퐁텐블로 근처 비 by라는 마을에 성을 매입해 그곳에서 여생을 살았다. 상당 수준의 재건축을 거친 이 성에는 동물 모델을 위한 우리도 있었다. (현재 보뇌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1865년 여성 예술가로는 처음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의 주문을 받아 그린 '네베르네에서의 쟁기질'. 땅에 대한, 인간과 동물의 노동에 대한 헌사이다.
데두아르 루이 뒤뷔프가 1857년 그림 보뇌르의 초상. 동물화가로 활동을 상징하는 황소와 함께 그렸다.

로사 보뇌르는 여성 예술가의 활동이 드물던 시대에 성공을 거둔 화가가 되면서 많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문을 열어준 예술가인 동시에 사회통념을 깨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신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성 옷을 입고 다녔다. 당시 여성들의 바지 착용은 금지되었던 때였는데 국가에서는 그녀에게만 특별히 허가해 주었다. 6개월마다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보뇌르는 공개적으로 동성연애를 했는데 14살 때에 만난 첫 번째 파트너 나탈리 미카와는 함께 성장하고, 미카가 죽을 때까지 40년 이상 함께 살았다. 이후에 미국 화가 안나 엘리자베스 클럼프와 연인 관계를 맺었다.  동성애를 정신이상으로 여기던 시대에 참으로 당당하고 획기적인 삶이다.


그녀는 여성 예술가를 단지 남성의 보조로 여긴 당시 사회 통념에 맞서 스스로 주체가 되고 경제적 가장이 되어 예술활동을 했다. 파트너가 가정생활에 집중하는 동안 그림에 집중했다. 보뇌르는 1899년 5월 25일 77세에 퐁텐블로에서 사망했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나탈리 미카(1824~1889)와 함께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혔다. 두 번째 반려자 클럼크도 나중에 함께 묻혔다. 나중에 파리에 가면 페르 라셰즈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비운의 예술가 오스카 와일드도 있고, 보뇌르도 있다니.

'숲의 제왕'.  숫 사슴이 "나의 세계로 어서 와, 숲은 처음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시에서는 유명한 그림들과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녀가 어떻게 디테일을 연구했는지 보여주는 밑그림과 드로잉들도   있다. 인물과 동물을 함께 담은 그림들에선 인물보다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보이도록 배치하고 움직임과 동물들의 감정까지 묘사하고 있다. 사자 가족’은 인간의 가족 초상화 같다. 밀림의  숫사자는 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며 든든하게 가족을 보호하고 있다.  사자는 자애롭게 새끼들을 보살피고 아직 철이 안만 새끼사자들은 사랑스럽다. 특히나 감동적이었던 작품 포스터에 실린  '숲의 제왕'이라는 작품이다. 아마도 퐁텐블로 숲에서 불현듯 나타났을 수사슴을 그린 작품인데 마치 숲에서 걸어 나올   같았고 동물이 아니라 신화의 주인공 같았다. 이끼와 나무의 표현도 기가 막히다.

동물은 털이 다르고 표정도 다르고 골상이 달라서 그리기 어렵다. 사자, 여우, 말, 토끼, 강아지 등 로사가 그린 동물그림은 사실적이기도 하지만 어딘가 친근한 느낌이 들고 대화를 건네는 듯하다. 눈의 표현이 참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로사는 "동물은 눈으로 대화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방학이어서 아이들이 많이 와서 동물 그림을 따라 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작품만으로도 참 좋은 전시였다.  이런 전시가 아니었다면 예술사와 페미니즘 역사에 족적을 남긴 로사 보뇌르라는 인물을 내가 어찌 알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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