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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Feb 26. 2023

[추천도서]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글쓰는 화가 황주리의 감성소설 

글쓰는 화가 황주리의 감성소설  

'이 삶이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모를 난민들을 가득 태운 배라 할지라도 노를 저어 가보자구요.  오늘도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실의에 빠져 강물에 투신하지만, 그 모든 세상의 풍경들이 다 지구라는 난파선에 타고 있는 우리들 생존의 풍경이겠지요.'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은 글 쓰는 화가 황주리의 개성적인 그림이 곁들인 장편소설이다. 황주리는 일찍이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개척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선두주자이며,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안목과 빼어난 문장으로 주목받아 온 작가이다.소설을 지배하는 음울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적인 대화와 매혹적인 서간체가 빛을 발한다.

소설은 SNS를 통해 교류하는 두 인물의 편지들로 구성된다.  여성인 한국인 화가와 남성인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외과 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오래전 뉴욕의 한 화랑에서 스쳐 지났던 두 사람이 SNS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이어가며 전개된다. 화가와 의사라는 이질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촉매가 되었던 건 영화 〈바그다드 카페〉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되지만, 단 한 번의  만남도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애초에 두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독자는 소설 말미의 반전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순간 실체가 사라진 사람과의 사랑.

저자는  이 소설이 “상상의 대상을 향한 끝나지 않는 편지이며, 사랑과 불안, 전쟁과 평화, 그리고 불멸의 이야기”임을 밝힌다. ‘불멸’은 실체의 ‘소멸’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구체적 대상이 사라진 사랑은 실재와 환상의 경계에 뿌연 안개로 남는다.  

작가의 페르소나로 여겨지는 소설 속 두 인물은 끊임없이 폭력으로 물든 세상을 관조하고,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탐색하며, 주변과 일상을 성찰한다.   그 과정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독과 불안,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유려하고 심미적인 문장으로 드러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왜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워하죠. 하지만 어떤 만남도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지 않아요. 이르면 이른 대로 늦으면 늦은 대로 그때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의 계절이 있을 테지요.' 

여기선 사랑을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너무 늦은(늙어버린 ) 것 같아도   삶을 살아가는 각자에게는 순간순간이 각별하다.  내게 그렇고, 남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너무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다. 그냥 차분하게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지구라는 난파선에 잠시 올라 타 있을 뿐이며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지구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싣고 떠다닐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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