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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Oct 30. 2019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와의 대화 1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b. 1943~)는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왕궁을 건설할 때, 혹은 중요한 사찰을 지을 때 설계도를 그리고 나무와 벽돌을 쌓던 당대 최고의 장인.. 건축계의 거장인 보타가 한국과 인연을 맺고 지속적으로 쌓아 나가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보타는 한국 가톨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병인박해 순교자의 땅, 남양성모 성지에 성당을 짓고 있다. 성당은 지난 2011년 시작돼 오는 10월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보타가 한국에 이름을 알린 건 앞서 작업한 강남교보타워와 삼성리움미술관의 고미술전시실이 시작이었다. 보타의 작업은 전라남도 신안의 박은선 조각가 미술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타와 나



경기도 화성의 남양성모성지 작업은 그가 근간에 가장 공을 들이는 프로젝트다. 설계부터 시작해 착공과 공사 기간 중 6개월마다 현장을 찾아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해 왔다. 12시간의 비행, 세계적 건축가의 글로벌한 스케줄을 감안하면 그 부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2018년 11월 성당 현장에서 멀지 않은 화성에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프로젝트와 그의 작업 철학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짧은 질문에 보타는 샘물 솟듯이 긴대답을 내 놓았으므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 자리에는 남양성모성지 프로젝트를 처음의 계획부터 끝까지 추진하고 있는 이상각 신부와 보타의 한국측 파트너인 건축가 한만원이 함께 했다.

함혜리(이후 함) : 당신은 이미 전 세계에 20개 이상의 많은 종교적인 모뉴멘트들을 건립하였습니다. 남양성모성지에 건설 중인 바실리카(대성당)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보타 : 그것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선 일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성당이라는 (건축적) 주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나 성당이라는 주제는 특정한 콘텍스트 속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콘텍스트라는 것은 지리적인 기후와 산세, 위도, 국가, 전통, 그리고 문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 교회란 것이 그 장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해 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작업을 통해서 도달하려는 요소입니다. 그 이후에 밝혀내야 할 것은 조금 모호하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의미가 있는 행위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각자가 할 행위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합니다. 도서관, 학교, 궁전 등. 그것은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이라는 것이 개입하죠. 그러나 거기에 또 다른 우연들이 중복됩니다.

예를 들면 눈사태에 무너진 작은 교회, 또 다른 시골의 작은 교회 등.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당신이 그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풍토를 형성하며 또 그 속에서 당신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여기에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직업적인 측면으로는 더 이성적이거나 궁극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째서 이 많은 교회들을 짓게 될 것일까. 어째서 유대교회당이며, 혹은 회교사원 등의 종교적 건물인가. 한편 조금 물러난 시각으로 보게 되는 이 작업을 하는 나의 건축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함 : 교회 (종교적 건물의 통칭으로서) 작업이 직업 건축가인 당신에게 ‘운명’같은 주제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보타 : 나는 할 수 만 있다면 다른 프로젝트는 제치고 교회만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교회라는 공간에서 나는 표현의 공간과 진정한 이유, 건축 자체가 존재하는 근원적 이유들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근엄함, 빛, 경계의 개념 등은 모두 내가 일생을 바쳐 온 분야에 속한 일련의 요소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처음 25년간 작업해 오면서 이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어느 순간 단번에 찾게 된 종교적인 측면은 지금까지도 내 작업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크고 작은 여러 계기로 이어집니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각자가 주어진 대로 살아가가 궁극적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흡사 화가와도 같습니다.

함 : 화가에 비유한 것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에너지를 모아 완성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당신에게 종교 건축은 시간·공간적인 ‘콘텍스트’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요.

보타 : (건축 작업에 있어서)사전에 어떤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거나 친분이 있거나 권력에 의해 무언가를 하게 된다는 것은 솔직히 진실이 아닙니다. 건축가라는 큰 자금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직업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닌 다른 공공단체나 지방단체 등 다양한 의뢰인의 자금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들은 나에게 영적 공간을 설계해 달라고 요구해 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를 때도 더러 있으나 확실한 것은 오늘 우리가 질문해야 할 부분은 그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오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골짜기가 명상과 침묵과 소통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 사회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소비문화를 볼 때 전혀 다른 역발상을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즉 주변 환경요소들의 평준화와 일반화에 대해 저항을 형태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나의 해석은 한편으로 공간을 통해 보는 시각을 가진 건축가로서의 해석이지만 또 다른 이들은 전례적인 해석, 혹은 미적이고 예술적인 해석 등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면이 존재하지만 그 중 나는 나의 해석에 대해 과거의 건축가들과도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이는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Francesco Borromini, 1599~1667)나 현대 건축에 있어서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이 가진 그 힘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르코르뷔지에가 롱샹 성당을 그렇게 설계한 이유에 대해 주문한 사람들이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역량과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에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과거의 자아성찰과도 같은 질문이 더해집니다. 나는 이것들을 이어주는 명확하고 이성적인 연관성들을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 대립과 총돌 가운데 나 스스로 최선의 결과를 내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외부 세상이 정확히 그 반대로 가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 : 그것은 남양성모성지 작업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가요?

보타: 오늘날의 도시는 그 잠재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현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8년전 처음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만 해도 시골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점점 더 큰 규모로 변해가는 도시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이 도시는 영성에 대한 필요를 채워줄 수 없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각 신부님은 그 가능성을 직접 인지하지 않았겠지만 옳은 미래를 선택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나타나거나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5년 뒤, 50년 뒤에는 더더욱 그것이 크게 와 닿을 것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매우 도시화된 장소는 나아가 한 제도적인 기관이 됩니다. 과거의 교회, 관청, 박물관, 도서관 등 이것들은 전부 오늘 날의 즉각적인 필요를 넘어서는 것 들입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나는, 혹은 나의 작업은 도시의 변화와 대립적 충돌 속에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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