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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Nov 20. 2023

사라진 팀장님

  나의 오른편에 앉은 동수 팀장님은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 그의 존재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조용하고, 고요해서 모르다가 그가 담배를 태우고 들어오는 길이면 나의 뒤를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그의 손끝과 옷에 깊게 배인 담배 냄새로 그의 존재감을 알아차리곤 한다.

  그런데 동수 팀장이 안 보인다. 분명 이 시간대 즈음에는 담배를 태울 텐데 담배냄새가 나지 않아 옆 자리를 보니, 출근을 안 한 것 같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이다. 일주일 중에 가장 피곤한 날로, 아직 주말이 오려면 이틀이나 남았고 약속을 잡자니 중간이라 피곤한 날이다. 그래. 뭐 팀장 정도면 늦어도 뭐라 안 하겠지. 원래도 존재감 없는 태수 팀장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냥 나는 뉴비이므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아직 어색한 동료들과 몇 마디 나눠보지 못했는데, 같은 온라인 업무를 하는 이태수 씨에게 개인톡으로 물었다. "태수 씨. 팀장님 안 와요?" 읽고서 바로 답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모르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즈음 답이 왔다. "오늘 친한 친구분 장례식장에 갑자기 가시게 돼서 못 오신다고 하셨어요." 이 말을 듣자 하니 왜 팀장님이 출근을 못 했는지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장례식에 가셔서 그런 걸까 하는 의문점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어제 선자 씨 방에서 동수 팀장은 하루종일 고성이 오가며 싸웠다.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얇은 유리 방은 신기할 정도로 어떤 때는 잘 들렸다가, 극적인 순간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세세히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유리벽 밖에서 모든 사람들은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동수 팀장이 없는 걸 알면 선자 씨가 가만두지 않을 걸 알기에, 나는 미어캣처럼 선자 씨 방을 바라보려고 뒤로 돌았다. 검은 모니터가 그녀의 얼굴을 가려서 자세를 고치는 척 일어났다 앉았는데, 그 아래로 보이는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동수 팀장이 출근을 안 한 것을 아직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되었건 오늘은 그녀도 평안한 날인 것 같아 안심되었다.

  다음 날 동수 팀장은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니 까스활명수 한 사발 들이킨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나는 선자 씨를 면대면으로 상대하기에는 팀장이라는 방어벽이 필요한 것일지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단톡방에 카톡이 왔다.

  "팀장님이 커피 사주신데요. 투표하세요."

  투표 칸에는 아아, 아라, 기타 등이 있었는데, 나는 커피빈에서 시킨다는 말을 엿듣고 기타를 투표하고,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두 대리가 부직포 백에 커피들을 담아왔다.

  "-징"

  카톡이 또 왔다.

  "다들 잠깐 회의실에서 보죠."

  존재감 없는 동수 팀장의 첫 단체소집 메시지였다.

  나는 눈이 동그래져, 잠시 동수 팀장의 팀장다운 면모에 놀라 하마터면 커피를 뿜을 뻔했다. 다행히 옆에 휴지가 있어서 입을 막을 수 있었다.

 주간회의를 하던 그 회의실로 들어가 쪼르르 앉아 동수 팀장을 모두 바라보았다.

 "음. 여러분들에게 갑자기 이런 말을 하게 돼서 미안해요. 특히, 지은 씨한테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었네요."

  나는 그의 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귀귀 울였다. 

  "저는 오늘까지만 출근합니다."

  "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물음표가 빡 나왔다.

  "지은 씨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되었어. 어디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밥 한번 먹자고."

  "네.. 왜요?"

  나는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알다시피 나는 이사님과는 맞지 않아. 여러분들은 나보다 훌륭한 팀장을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의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는, 더 이상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태수 팀장의 소집이 파하고, 그는 재빠르게 물건들을 싸고 도망치듯 우리 팀을 떠나갔다.

  태수 씨가 우리 팀의 유일한 남자로, 동수 팀장을 바래다주고 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그에게 톡을 보냈다.

  "팀장님 왜 그만두신 거예요?"

  "음... 글쎄요. 이사님 때문이 아닐까요?"

  "이사님? 이사님 왜요?"

  "두 분이 원래 잘 안 맞으셨어요."

  "저랑 밥 먹을 땐 괜찮아 보였는데...."

  "글쎄요.."

  말도 느리고 답답한 태수 씨에게 묻자니 물어보지 않은 것보다 답답해서 내 목에 고구마 2개가 가득 찬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

  다들 키보드 사이로 분노의 타자를 치듯, 다다다다 키보드 소리가 활발한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나 빼고 기존에 친한 사람들끼리만 있는 톡방이 있는 듯했다. 그 방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다다다 다다 우다다다다다다 다다 탁. 탁. 수많은 글자 타자소리와 엔터 치는 소리를 가만히 들을 수밖에. 

  오늘은 동수 팀장이 떠난 뒤로 우리 팀에서는 하루종일 타자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암만 봐도 선자 씨는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다. 이건 마치 동수 팀장이 나간 것이 그녀에게 잘된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온라인 팀에 아무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 나는 우리 팀에 나를 소개해준 행동대장 진희 씨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징"

  "진희 씨, 팀장 님 왜 관둔 거예요?"

  "음.. 글쎄요. 있어봤자 하는 게 없잖아요."

  그녀의 칼 같은 답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마치 해고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여기 다니다가 잘리는 거 아니야?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일을 잘하고 있는가,

  나도 곧 잘리는 건 아닌가,

  선자 씨랑 안 맞는데 어떡하지

  머릿속에 복잡해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

  동수 팀장이 떠나고 나서,  퇴근 때까지도 우리 팀에서 수많은 타자 치는 키보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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