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rilim Nov 26. 2023

역대급 팀장면접자

  동수 팀장이 떠나고 나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동수 팀장이 이사 님 방에 북박이장처럼 붙어있을 텐데, 이제 동수 팀장이 없으니 대리들이 줄줄이 선자 씨 방에 들어가야 했다.

  "내가 무슨 비서야? 진짜 짜증 -나. 저 아줌마."

  강 대리가 짜증 내며 나왔다.

  "왜요?"

  내 뒷자리 인 강대리님 이기 때문에, 예의상 물어보았다.

  "아니, 진짜 무슨 내가 비서도 아니고 일하느라 바빠죽겠는데 본인 시다바리처럼 개인사를 왜 들어야 하냐고. 오늘은 또 무슨 피부과를 가야 하는 둥, 무슨 수술을 할까라는 둥. 휴" 

  이 말을 하고 강대리는 뒤에 앉아 다시 분노의 타자를 시작했다.

  듣자 하니, 성형중독이 다시 시작된 걸까? 이미 고칠 때로 고쳐서 더 이상 손을 데면 안 될 것 같은데 선자 씨는 아마도 또 손을 델 것이다.

  "지은 씨."

  강 대리가 갑자기 불러서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네."

  "이따 팀장님 면접 끝나면, 영어 시험 감독 좀 봐주세요."

  "넵!"

  "여기 시험지, 시간은 30분만 주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팀장 면접인지도 누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는데, 어떤 분이 면접을 보나보다. 아무래도 팀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는 것은 그녀도 힘에 겨웠던 걸까. 나는 강 대리가 뽑아 둔 시험지 네 장을 들고 면접이 치러진 회의실에 들어갔다. 

  "똑똑똑"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 시험지 보시면 되고, 펜 없으시면 이걸로 보시면 돼요. 30분 정도 드릴 테니까 그 안에 푸시고 제출하시고 가시면 돼요."

  "하하.."

  면접자는 진주 목걸이를 하고 머리는 세팅되어 세련되어 보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원망이 가득 찬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하하 하면서 웃어 보였다.

  "왜 그러세요?"

  "아니.. 누가 이런, 저 같은 연차에 시험을 봐요." 

  "아.. 네.. 그러실 수 있죠. 저희는 사원들도 다 봐서 관례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니, 되게 자연주의 회사가 나름 큰 회사인데도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네요. 누가 요즘 통역을 하고 번역을 합니까.. AI가 다 알아서 하는데.."

  "아.. 네. 혹시 면접 보실 때 안내 못 받으셨나요?"

  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근데 어렵지 않으니까 그냥 보시면 될 거예요."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연차가 많은 사람이 학생도 아니고, 영어 시험을 치른 다는 것이 상당히 불쾌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어이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면접자는 나도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this is only applied to ___" 뒤에 계약서 내용을 한 자 한 자 입으로 읽어보더니, 그녀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누가 계약서를 번역해요. 이런 건 법률 자문을 구해야 하죠. 이걸 왜 합니까. 대체. 하."

  "아.. 저희는 직접 계약서를 다 보고 담당자가 확인은 해야 해서요.."

  "저는 이거 못하겠어요."

  "그러시면, 계약서는 그냥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에 부분 푸세요."

  앞부분은 정말 쉬운 화장품 표시사항이다. 이건 나도 알고 웬만한 대학생들이면 풀 수 있지 않을까. 화장품을 써본 사람이라면, 아니면 표시사항을 꼼꼼히 읽는 분들이라면 쉽게 적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빈둥대기 싫어, 출근길에 챙겨 온 책을 가져왔다. 그 책을 읽으려고 한 장, 이제 두 장 열어보려고 하는데 또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이거 안 볼래요."

  "네?"

  나는 포기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놀랐다.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 굳이 시험 볼 필요 없는 것 같아서요."

  "네.."

  "무슨 이런 시험을 아직 까지 보고, 자연주의 회사가 작은 것도 아닌데. 누가 이런 걸 시켜요. 저 애도 있어요. 11살 짜린데, 저는 애한테 영어공부도 안 시켜요. 요즘 콘텐츠가 중요하지 무슨 영어가 중요해요. 다 Ai가 알아서 하는 건데."

  "네. 그렇죠."

  "저는 즐겁게 일하는 스타일인데, 여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여기 이사님 이상하죠?"

  "네? 왜요?"

  "그냥 무슨 말씀하시는지 저는 전혀 못 알아듣겠던데."

  "아.."

  "팀장은 왜 없는 거예요?"

  나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할 말이 없었는데, 재빠르게 답했다.

  "팀장님은 개인사정이 있으셔서 관두게 되었어요."

  그녀는 꼬투리라도 잡을 기세였다.

  "그렇군요."

  "저희가 이렇게 시험을 보는 것은, 전에 말씀드린 대로 담당자가 내용을 다 알아야 하기도 하고, 이 부분은 기본적인 지식이라서 그렇고요. 잘한다고 해서 뽑았다가 아닌 경우도 있어서 그런 거겠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말했다.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지. 영어를 못하면 못한다고 할 것이지. 왜 남의 회사를 까내리는 말을 계속해서 핑계 삼아하는 걸까. 이해가 안 되었지만, 최대한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해 웃으며 상냥하게 답했다.

  "저는 그러면 안 맞는 것 같아요. 이 회사랑은. 저는 즐겁게 일하는 스타일인데, 누가 저렇게 이런 걸 다 쓰고 번역해요. 저 지금 인사담당자한테 전화해서 말씀드릴게요."

  "네. 그러시면 오실 때까지 제가 여기에 있을게요."

  "여보세요? 담당자님. 저 면접자 김재연입니다. 오늘 면접 본 사람인데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 잠시 면접실로 와주시겠어요?"

  전화한 지 일이 분 정도 지났을 때, 인사팀 채 과장님이 오셨다. 그 와중에 그녀는 나에게 시험지를 제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얼마나 쪽팔리면 저럴까. 나도 모르게 네 그러십시오. 하고 말은 했지만 돌아서면서 회사 기밀 아닌가?라는 생각에 놀랐다. 채 과장님이 들어오시자 나는 얼른 내 짐을 들고 자리를 피했다. 안에 분위기를 보니 과장님과 몇 마디 나누고 시험지는 과장님께 제출하고 그 여자는 나갔다. 과장님 께 시험문제를 제출하고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한시름 놓았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나는 자리에서 선자 씨가 자기 유리방을 두드리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보세요~!!!"

 쿵쾅쿵쾅

 "여보세요!"

 소리가 너무 커서 쳐다보다 우연히 눈을 마주쳤는데, 나를 부르는 눈짓이었다. 너무 놀랐지만 후다닥 노트와 펜을 챙겨 선자 씨 방에 들어갔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네. 이사님."

  "채점했어요?"  

  "네?"

  "면접."

  "아.. 네. 그분 면접 포기하고 가셨어요. 그래서 시험지가 없어요."

  "어머, 개 웃긴다."

  "왜요?"

  "아니. 제 잘난 척 하루종일 하길래. 그래서 내가 그래 어디 한번 시험 잘 보나 보자 하고 시험지 보라 한 거야."

  선자 씨는 다 뜻이 있었다. 아무래도 면접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 시험을 본 것 같았다.

  "아 그러셨구나."

  "또 무슨 말 안 했어요~?"

  무슨 말이 듣고 싶은 선자 씨다.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은.. 저희 회사랑 잘 맞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누가 이런 시험을 보냐고 AI가 하면 되지. 구 시대적이라고 하셨어요."

  "웃기는 년이네. 아니 씨바 진짜."

  처음 듣는 그녀의 욕설에 놀랐다.

  "허허허 허. 아니 정말 기분이 나빠서 그래. 면접 보는데 글쎄, 해외 해봤다고 해서 내가 해외 어디 해보셨냐 물어보니까. 해외요! 이러는 거야? 내가 무슨 바보 등신이니?"

  "정말요?"

  "그러더니 글쎄. 미국 해봤다더라. 미국 말고 또 뭐해보셨냐니까 유럽 해봤데. 그러면서 아시죠? 유럽 다섯 개 국가 하나로 뭉친 거. 씨바 진짜 내가 병신인줄 아나 싶어서 욕할뻔했어."

  "어머. 그러셨구나."

  "자기는 다 시킬 거래. 애들 시키지 자기가 그런 걸 왜 하냐면서, 자기가 애들을 꽉 잡아서 할 수 있데. 걱정하지 말라고 하드라."

  "어머. 이상하신 분이네."

  "근데 하도 잘난 척 육갑 떨길래, 내가 그래 니년이 잘났으면 함 봐봐라 하고 던져준 거야."

  "아~. 그래서 보셨구나."

  "응. 재는 내 타입 전혀 아니지. 시험지 그래서 어딨어? 갖고 와봐. 어디 얼마나 잘 썼나 보자."

  "아 제출하기 싫다 했어요."

  "쪽팔린가 보지? 어머, 근데 그거 유출하면 안 되는데."

  "과장님이 받아가셨어요."

  "확실해요?"

  확실하냐는 섬뜩한 말에 오른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나를 쳐다봤다.

  "네. 확실합니다."

  "재도 진짜 웃기네.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던데."

  "영어는 잘 말했어요?"

  나는 영어테스트를 진행했을 거라 짐작하고 물었다.

  "아니 영어로 좀 다짐을 말해보라 했는데, 못 알아듣길래 여에 인사팀장이 그럼 준비한 거 아무거나 해보시라고 하드라. 그러니까 뭐 AI처럼 준비한 거 딱 대답하고 끝났지 뭐."

  "아. 그러셨구나.. 어쩐지 영어를 못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참. 어우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니? 근데 나는 우리 애들한테 다 솔직하게 말해. 그렇지?"

  "네. 네. 좋죠 뭐."

  "그래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선자 씨는 나가라는 말을 감사한다고 끝내나 보다. 나는 말길을 잘 못 알아듣겠지만, 얼추 그녀가 이제 볼일 다 끝났으니 나가라는 말 같아 어색한 노트와 펜을 들고 문을 열고 나섰다.

  경력직들은 아무래도 감이 좋다. 내가 있어야 할 곳과 피할 곳을 잽싸게 알아차리는 재주가 있지.



이전 06화 사라진 팀장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