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하고 싶은 팀장의 이메일 소동으로 한참 난리가 났을 때, 결국 수영 씨는 연차를 쓰고 돌아오지 않았다. 수영 씨가 관두고 며칠 후부터 팀장은 계속 인사팀 팀장에게 불려 갔다.
불려 갔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임이 틀림없었다. Troy 팀장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징
-징징
- 방진희: ㅌㅈ무슨 일 있음?
- 에벌리: 그러게. 재 왜 아까부터 왔다 갔다 해?
- 나: 뭐 맨날 그렇죠 뭐.
- 수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긴 해요.
단체방에서는 팀장이 왜 계속 인사팀에 불려 가는 가가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팀장은 선자 씨를 보러 갈 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둘 다 웃고 있었으므로, 별일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여보세요?"
-
"네. 잠시만요. 지은님, 전화 돌려드릴게요, 받으세요."
"네."
나는 누구에게 전화온지도 모르고 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저 인사팀장 김민수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지은 씨한테 전화를 건 이유는, 저희가 면담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지은 씨 언제 시간 되세요?"
"지금 괜찮습니다."
"그럼 접견실에서 지금 보죠."
"네, 알겠습니다."
인사팀장의 호출이었다. 내가 인사팀장을 볼 때는 간식을 사러 혹은 커피를 사러 나갈 때뿐이었다. 그는 적잖이 골초였는데, 그의 업무가 정말 이 회사에 있긴 한 것인가 할 정도로 회사 내에서 보기보다는 거의 밖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나를 소환한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간,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인사 정보 관련한 면담인 걸까?' 여러 생각이 난무할 때 그가 접견실에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는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왼쪽 손목에는 보통 남자들이 자랑하는 듯한 큰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시계도 그의 눈처럼 부리부리하게 보여서 하마터면 그의 시계를 보다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네, 저는 인사팀장 김민수입니다. 몇 가지 지은 씨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면담 신청 했습니다. 뭐..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최근에 관둔 이수영 씨 아시죠? 이수영 씨에 관한 질문이니까 솔직하게 답해주세요."
김민수 팀장은 앞에 놓인 수첩을 펼치더니 휘갈겨 쓰는 듯한 글씨체로 무언가를 적으며 말했다.
"네."
"평소에, 이수영 씨와는 어땠나요?"
"어땠냐는 말씀이 무얼 뜻하는지..."
"뭐, 쉽게 설명하자면 업무를 같이 해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럴 때 어땠는지... 뭐 그리고 팀장과의 관계는 어땠는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와 수영 씨는 업무방식이 맞지 않았습니다. 처음 업무를 하시다 보니 당연히 업무가 버거웠을 수 있고, 저는 또 팀장님과 수영 씨 사이에서 소통을 맡아 불편했습니다. 두 분이서 서로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맞지만, 중간에 저를 끼고 소통하셨으니까요."
"그러니까, 지은 씨 말은, 수영 씨가 업무를 잘 못했다는 거지요?"
인사팀장은 마치 수영 씨의 단점만을 적으려고 수영 씨의 잘못을 집어 묻는 것 같았다.
"꼭 그런 것이 아니라, 저와는 맞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영 씨는 팀장님의 R&R변경에 대해 매우 힘들어했어요. 이 부분을 팀장님에게 말씀드렸는데, 변화는 없었고요."
"팀장님은 왜 그런 것인가요?"
"저도 팀장님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우선 팀장님이 생각하신 방향이 있으신 것 같고, 모든 팀원들이 따라와 주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팀장님과 수영 씨의 사이는 어땠나요?"
"안 좋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팀장님은 수영 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해외팀 전체에 메일로 비난하셨습니다. 수영 씨는 이 메일을 보고는 기분이 상하셨고요. 팀장님은 수영 씨에게 수영 씨가 하지 못하는 업무를 맡기셔서 수영 씨는 이 일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을 수영 씨가 팀장님께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도, 바뀌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팀장님이 업무 분배를 했는데 수영 씨만 따라오지 못한 것이군요."
이세 끼는 내 말을 귀로 듣는 건지 코로 듣는 건지 아니면 저 주둥이로 듣는 건지 내 말을 제대로 쳐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나는 답답한 인사팀장도 문 팀장과 한패라고 결론을 짓고 그냥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나왔다.
- 징
진희 씨에게 톡이 왔다.
"지은 님, 인사팀장이 뭐래요?"
"수영 씨에 대해 묻던데요?"
"뭐라고 했어요?"
"사실대로 말했어요."
방진희 씨는 뭐가 궁금한 것인지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를 캐내기 바빴다. 나는 업무를 하느라 카톡을 보지 못한 척하면서 말을 끊어내니 진희 씨도 10번 정도 카톡을 보내고 나서야 질문을 멈추었다. 진희 씨 말로는, 자기도 인사팀장이랑 면담을 했는데, 사실대로 팀장의 무능함과 멍청함을 다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실로 이상한 점은 내가 보는 인사팀장은 방진희 씨가 말한 정보를 발설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수영 씨가 문제 있는 것처럼 말을 했기에 이상했다.
-징
단톡이 왔다.
"오늘 이사님과 점심_ 길 건너 감자탕 집으로 와주세요. 모두 11:20분에 출발하고, 빨리 시작한 만큼 일찍 돌아와서 업무 시작하면 됩니다."
수연 씨가 보낸 톡이었다. 역시 이사님의 뻐꾸기. 이사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하는 뻐꾸기다. 수연 씨는 마치 이사님을 초등학생 다루듯 하는데, 담당자가 해결해야 할 일들도 굳이 일일이 모두 선자 씨를 찾아가 보고를 한다.
"내 소중한 점심..ㅠ"
단톡을 보고, 최대한 회신해야 할 수두룩 한 메일을 열고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을 때 혜은 대리가 말했다. 혜은 대리는 설기 대리가 나가고 나의 뒷자리에 앉았는데, 혜은 대리는 남의 사생활에 별 관심 없고, 오로지 퇴직금을 받기 위해 이곳에서 1년 이상 근무는 하겠다는 다짐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대리님, 저도 가기 싫어요."
나도 한 소리 보탰다.
감자탕 집에 도착하자, 안쪽에는 이미 선자 씨와 문팀장 그리고 선자 씨를 따르는 문 팀장과, 수연 씨가 앉아 있었다. 마치 선자 씨를 따르는 시녀 같다고나 할까. 선자 씨는 중전이고, 대비인가? 무튼, 내가 옆에서 보는 그들은 그렇게 보였다.
시답지 않은 말들을 하면서 웃고 있는...
"어머, 이제 왔어요? 애기 우리 아기 여기 옆에 빨리 앉아."
윽, 나보고 애기라는 건가?
"네-."
혜은 대리가 웃으면서 답하고 앉았다. 선자 씨는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데, 꼭 우리들을 애기, 울애기, 우리 아기라고 부를 때가 있다. 나는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되어 뒷 등에 닭살이 돋곤 했다.
"많이 먹어-. 밥 다 있어요?"
게걸스럽게 먹는 선자 씨는 모두의 밥을 챙겼다.
"나 감자."
선자 씨가 감자를 찾자, 옆에 수연 씨가 재빠르게 점원을 불러 감자를 더 달라고 챙겼다.
"난 여기 감자가 맛있더라. 너무 맛있어."
눈치 없는 선자 씨는 우리 팀의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회피하는 것일까. 무능함의 극치인 팀장으로 자기가 예뻐하던 수영 씨가 퇴사했는데도 아랑곳 안 하고 감자탕만 게걸스럽게 먹었다.
오늘도 그녀의 탁자 앞에는 휴지가 수북이 쌓였고, 우리는 모두 깨작깨작하며 감자탕에 있는 닭다리를 집어 살을 헤집다가 당면을 먹었다.
밥을 먹은 지 30분 정도 흘렀을 즈음, 선자 씨는 먼저 다 먹었는지 옷을 챙겨 입더니 모두 나가서 카페로 향하자고 했다.
"성격 참~ 급해."
내 앞에서 밥 먹던 혜은 대리가 말했다.
"제 말이요."
나도 한 소리 보탰다.
선자 씨는 눈치를 밥 말아 드셨는지, 텐션 업 되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