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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Jan 30. 2024

저주하고 싶은 팀장

  오늘 아침도 여유롭게 출근하고 싶어서 일찍 왔다. 문 팀장은 8시에 출근하는 사원들이 신경 쓰이는지 아니면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는 건지 출근 시간을 앞당겼다.

  "안녕하세요."

  "응. 너네 정말 일찍 온다."

  "네. 하하하."

 우리가 일찍 출근하는 것이 별아간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아니면 칭찬인 걸까? 아마 문 팀장이라면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지은님. 우리 결재하는 프로세스 어디서 볼 수 있어요?"

  문 팀장이 나에게 질문했다.

  "어 그거요~! 저희 그룹웨어 화면에 들어가시면 볼 수 있어요!"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내 앞에 있던 수영 씨가 듣고 바로 답하였다. 

  늘 이런 식이 었다.  

  문 팀장이 나에게 질문하면,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영 씨가 답한다.

  팀장에게 잘 보일 마음이 털 끝 하나도 없는 나는 잠잠 코 있는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수영 씨는 홍콩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무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들었으며, 어린 나이와 다르게 성숙한 느낌을 받고 누가 봐도 사회생활 잘할 것 같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가졌다.

  대부분 사원들이 출근할 시간인 9시가 가까오자  오늘도 문 팀장은 회사에 오자마자 폭탄 메일을 던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R&R이 정해지고 나서 첫 폭탄 이메일이다.

  "팀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이수영 씨가 문 팀장 앞으로 갔다.

  "응. 지금? 돼, "

  "팀장님 제가 R&R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제가 마케팅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쪽은 해보았어도 마케팅 전략을 짜 본 적은 없어서요.."

  "음.. 우선 수영님이 무얼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나랑 같이 짜면서 갈 거야. 나랑 같이 짜면서 어떻게 할지 앞으로 정하면 되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연도 마케팅 계획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수영님이 계획 초안 만들어서 지은님한테 주세요."


  그 둘의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의 뛰어난 청력 때문에 안들을 수 없었다.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좀 이상했다. 같이 짜면서 나간다니... 그런데, 우선 초안을 작성하라니….  수영님은 본인의 업무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대응을 못하겠다고 말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같이 짤 거니까 걱정 마. 우선 초안을 작성해 오라니…. 도무지 앞 뒤가 맞지 않다.

 징-

 역시, 수영님에게 카톡이 왔다.

- 지은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팀장님께서 마케팅 캘린더를 만들라고 하시는데 저는 해본 적이 없어서요. 

 - 팀장님이 지은님한테 피드백을 받으라고 하셨는데, 저는 정말 모르겠어서….


우선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잠잠 코 있다가 수영님의 카톡을 읽었다. 내가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나의 업무가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바라만 보면서 바로 그녀에게 답하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나는 키보드에 두 손가락을 올렸다.

 

 - 저도 해본 일은 아니어서요. 우선 서치 좀 해보고, 팀장님이랑 같이 방향성 정해보는 게 어떠세요? 초안 작성하고 나서 보여주시면, 저도 수영님 아이디어에 생각 좀 해보아서 조언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네.. 그렇죠. 알겠습니다.

 

  수영님은 나의 답변에 실망했을 것 같다. 하지만 눈만 건너서 뜨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나는 애써 모른 척 나의 업무를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수영님이 보였다. 커피를 사러 가자고 물어볼까 했지만, 이미 그녀에게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 옆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는 매일매일 정리를 해도 정리되지 않은 나의 책상을 물티슈로 박박 닦다가 잠시 멈추어서 또 서랍을 열었다가 나의 시선에 가방이 들어왔다. 가방엔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데  가방에는 아침으로 먹을 두유, 비닐봉지에 싸 온 바나나 한 개, 어젯밤에 먹다 남은 초콜릿 등이 들어있다. 아무렇게나 넣었지만 나름 질서를 지키며 나의 까만 숄더백에 들어있다. 자리가 지저분해서 어디에 가방을 둘지 고민하다가, 막 티슈로 닦은 나의 오른편 끝 자락에 두기로 했다.


  업무시작 전 마음의 준비를 청소로 마친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순간 문 팀장이 출근하는 것을 목격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좋았거늘, 이 두 명이 출근하고나서부터는 아침이 쾌쾌하다. 목이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가뜩이나 음악도 안트는 이 넓고 고요한 사무실에서 세 사람의 숨소리와 정적만이 공간을 감싼다.


  "팀장님, 저 마케팅 전략말인데요."

  "응."

  "제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는 모르겠어서…. 혹시 팀장님이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요?"

  "음…. 뭐 그런 거 있잖아, 매대 곤돌라를 교체한다거나 우리 이미지 콘텐츠 같은 거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제품 마케팅이나, 가격 할인 같은 거 말고도 뭐 그런…."

  "음…. 네. 네. 그럼, 혹시 이번에 론칭하는 신제품으로 프로모션 짜볼까요?"

  "그래. 뭐 그런 거라던지, 일단 만들어서 갖고 와봐."

  "넵."

  문 팀장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방향성이라곤 없는 같은데 수영님은 무엇을 알아차린 것인지 알겠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수영님은 두어 번 넘게 문 팀장에게 가 마케팅 관련하여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답을 얻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징-

  수영님이 카톡을 보냈다.

  - 휴. 진짜 팀장님 무슨 말씀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요.

  - 왜요?

  - 마케팅 플랜을 짜라고 해서 짜서 가면, 이런 거 말고 뭐 없냐고 하시는데, 그럼 어떻게 짜야하는지 자기가 참고할 것이라도 주던가….

  - 아. 같이 짜자고 하지 않았어요? 알려준다고.

  - 네. 근데 뭘 알려주는 건지 모르겠는데 자꾸 저보고 해보래요.

  - 타사 어떻게 마케팅하는지 한번 스터디해 보지 그래요?

  - 제 경력은 CRM이지 마케팅이 아니라서 저는 이런 거 모르는데….

  - 우선, 한번 찾아보세요. 저도 찾아볼게요.

  - 네. 감사합니다!


  동종업계에서 어떻게 하는지 찾아볼 생각을 안 하는 수영님이나,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는 수영님한테 전 국가 해외의 마케팅 플랜을 짜오라는 팀장이나 점점 업무는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수영님의 몇 번의 질문이 계속 이어져서 문 팀장은 슬슬 짜증이 밀려오는지, 갑자기 냅다 소리 질렀다.


  "수영님!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런 거는 수영님 업무입니다. 여긴 학교가 아니에요. 제가 무슨 담임 선생님도 아니고, 계속 물어볼 것 있을 때마다 저한테 옵니까? 앞으로 수영님은 저한테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마세요."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징

  -징징

  -징

  해외사업부 여자 단체방이 난리가 났다. 바로 문 팀장 Troy가 사내에서 소리쳤기 때문이다. 

  - 아침마다 폭탄메일을 보내다가 이제는 R&R로 사람 괴롭히더니 미쳤나 봄.

  -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왜 지랄인 건지

  - 그래서 지는 뭘 하라는 거예요?

  - 저도 모르겠어요….

  - 문 ㅌㅈ 아는 거 ㅈ도없는 듯.

  - ㅇㅇㅇㅇㅇㅇ

  - ㅇㅈㅇㅈㅇㅈㅇㅈ


  단톡방은 문팀장의 욕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화를 모두 쏟아내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만 굴욕적인 역사를 맞은 수영님은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처음부터 사회생활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수영님, 커피?"

  "네."

   나는 수영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끙끙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속이 상한 것 같아 커피 마시자고 데리고 나왔다.

  "제가 살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메리카노요."

  "아이스?"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회사 건물의 지하 1층으로 갔다. 밖이 너무  추워서 서 있을 공간도 없을뿐더러, 딱히 어디를 갈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지하 1층에 계단 옆에 쪼그려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눴다. 


  "수영님, 너무 기분상해하지 마요. 뭐 잘못한 것도 없고, 그냥 그 사람이 기분이 별로였던 것 같아요."

  "저, 정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위염 생겼어요. 아니, 저는 정말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레퍼런스를 주는 것도 아니고…. 뭐 어쩌라는 건지…."

  "우선, 대충이든 하나 초안 만들어서 드리고,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 어때요? 너무 잘하려고 하니까 수영님이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서요…. 우선 팀장한테 그만 질문하고, 스스로 한번 찾아봐요. 그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초안 만들어서 가져가면 자기가 알아서 바꾸거나하겠죠."

  "휴…. 한 번 해볼게요."

  "네. 힘내세요."

  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동료에게 상식적인 말을 건네어 그녀를 위로했다. 아마 그녀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사람이라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도 모르겠으니, 팀장에게 갔을 것이고, 팀장은 자기도 모르니 아마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다음 날, 수영님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팀장에게 다시 갔다.

  "팀장님, 초안 전달드렸습니다.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 -"

  문 팀장은 속이 좁은 놈인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모두들 출근할 시간이 되자 문 팀장에게서 폭탄 메일이 또 날아왔다. 

   


   From. 문정현(Troy)

   To. 해외사업본부

   CC. 김선자이사님

  수신자 제위,

  제 자리는 고민 상담소가 아닙니다. 수준이 떨어져서 무슨 말을 못 하겠군요. 대체 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주어야 합니까. 직업 상담소가 아니니까 정신들 차리세요.

  @수영님. 몇 년 경력도 안 되는 CRM 가지고 마케팅 씨부리는데, 어디 한번 제대로 마케팅이 무엇인지 보여주시죠. 장소는 해외사업부 옆 회의실에서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미팅합니다. 발표 준비해 오세요.

  @Everly. 에벌리는 제가 몇 번 말하는데도 고쳐지지 않네요.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해외사업부. 

  앞으로 저한테 보고하기 전에 제가 미리 공지했던 세 분(지은, 주림, 수연)께 피드백받고 오세요. 제 자리는 다시 말하지만 상담소가 아닙니다.




 미친놈임에 틀림없다. 

 전사가 보는 이메일에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모욕감을 주는 메일을 보낼까 싶기도 하고, 교양이라곤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웠다. 더욱이 가증스러운 건 선자 씨가 이 메일을 다 보았음에도, 모두 CC가 되어있음에도 팀장을 나무라지 않은 것이다.


  -징징

  -징

  해외사업부 여자 단체방이 다시 난리가 났다. 

  - 주림;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에벌리;나 오늘 인총 팀장님께 면담 신청했어.

  - 진희;…?

  - 주림;수영 씨도 일단 인총과 면담하는 게 좋을 듯

  - 주림;수영 씨는 일단 여기에 초대를 안 했어요.

  - 에벌리;응응, 개인톡으로 말할게요.

  - 수연;팀장님과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우리가 다 도와줘야 하고

  - ㅠ.ㅠ또르르 …. 돌아오자마자 메일은 쏟아져있고... 우리 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주림;하루 시작이 메일이에요

  - 수연;아...

  - 에벌리;우리 팀은 별 문제없었어 수연아.. 저 사람이 문제야.

  - 수연;ㅠ_ㅠ 수영님은 어떡해요? Should I take her for coffee?

  - 주림;수영 씨랑 이야기를 해서 뭐가 있었던 건지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난리라.

  - 진희사실 별일 없었던 것 같은데... 일단 팀장님도 너무 감정적이신 것 같아요 지금 현재.

  - 수연;where is 이사님...

  - 에벌리; 저 사람 신고해야 돼. 미친놈이야 fucking beach. 증거 다 모을 거야.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몰라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징

   수영님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 지은님 제가 팀장님께 보고를 드릴 수 없어 말씀드립니다. 팀장님이 이메일에 말씀 주신 내용처럼 마케팅을 했다고 말씀드린 적도 없고, 저는 계속 crm을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진행하고 있는 판촉물은 제작한 적 있다고 말씀드렸지 팀장님이 이메일에 쓰신 내용처럼 마케팅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도 거짓말한 적 없습니다. 저는 공 부하라 하셨기에 숙지된 내용만 전달드렸습니다. 아는 척을 할 수도 없는 게 저는 말씀 주신 것처럼 마케팅을 특히 글로벌 마케팅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첫 개인면담 때부터 꾸준히 말씀드린 것처럼 그래도 본인을 믿고 같이 풀어나가자 말씀 주셔서 알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글로벌 마케팅 방안 ppt는 팀장님이 말씀 주신 것처럼 제 부족한 경력과 제 범위가 아니기에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아 보고 드립니다. 매번 회사내부 프로세스를 모르니 공 부하라 하여 알려드리면 가르친다 느끼시는 것 같고 본인에게 무엇을 보고할 때 해결책과 설득을 하라하셔서 저의 생각과 숙지한 내용을  말씀드린 건데 그걸 본인 가리켰다고 말씀 주셔서.. 저는 잘 모르기에 제가 아는 내용을 말씀드린 건데 저는 정말 팀장님이 말씀 주신 것처럼 공유 주신다는 이전 직장 재모레에서의 경험이나 사례를 기다리는 상태이며 따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에 반대만 계속하시고 계획을 먼저 하라 매번 말씀 주시는데 저에게로써는 너무 광범위한 지시인 것 같습니다.

  또한, 저에게 기분이 상하신 것 같다고 말씀 주셔서 저도 반성하는 자세로 이틀 업무에 집중하고 보고도 드린 적이 없는데 저에게 먼저 저의 태도에 대해 혼내시거나 저와 업무 하실 때 힘든 점을 따로 불러 말씀 주시면 될 텐데 계속 공개적으로 이메일만 받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UnsplashIlay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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