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rilim Jan 07. 2024

전쟁 같은 아침(feat. 직장인에게 월요일이란)

  직장인에게 월요일이란 무엇일까.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을 뜨기 싫어 죽을 것 같다.

  '내일은 벌써 월요일이다.'

  침대에 있는 포근한 이불을 양팔로 감싸 안고 크게 한 숨을 내 쉬어본다. 월요일이 오기 전까지 12시간이 남았는데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리면 나는 죄인처럼 월요일을 살아갈 것이다. 월요일이 오기 전에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은 잠시 뿐.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보다가 릴스에 한눈팔려 50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문득 시간이 내 눈에 들어오니, 이불속에서 걸어 나와 나의 책상 의자에 앉았다.


  Morning Journal(모닝저널)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감사일기

  - 아직 주말임에 감사.

  - 일기를 쓸 수 있음에 감사.

  -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

  오늘의 할 일 : 운동은 30분이라도 꼭 할 것.


  감사일기를 쓰고 나니 조금은 마음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월요일 아침.

  오전 출근시간을 8시에서 9시로 바꾸어서 출근했다. 설기 대리님의 퇴사 후로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직장 생활의 고민들을 털어놓을 동료가 사라지니 일찍 올 이유가 없었다. 이 외에도 오후 5시 퇴근하면서 할 일을 다 했음에도 눈치를 보며 퇴근해야만 하는 이 분위기가 싫었다. 

  9시에 출근하고부터는 여유롭게 비어있던 아침의 엘리베이터는 여유로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고, 그 안에서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차 골초들의 담배냄새에 숨 참으며 타야 올라올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웬만하면 9시 출근이어도 8시 30분 안에는 출근을 한다.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메일함에 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떠서 보니 Troy였다. 그래서 옆을 보니 팀장님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눈길질을 마치고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From. 문정현(Troy)

   To. 해외사업본부

   CC. 김선자이사님

  수신자 제위,

  오늘부터 여러분들 업무 분장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각자 무슨 업무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해서 주시고요. 주림 씨가 취합해서 보내주세요.

  제가 들어온 이상 직급 상관없이 일 잘하는 사람한테 어드벤티지 주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지은, 주림, 수연 씨랑 소통하도록 할게요. 각 담당들은 위 세 사람한테 업무 보고하도록 해주시고, 저한테 오시기 전에 한번 생각이라는 것을 해서 오시기 바랍니다.

  제 자리는 고민을 상담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주림님, 취합하는 대로 바로 공유 주세요.


 "징-" 

 "징징-"

  "징"

 타닥타닥 타닥

 모두 이 메일을 보고 놀랐는지 타자 소리가 전방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뒷사람이 행여 볼까 후방주의를 하며 카톡창을 열었다.


<여자 단톡방>

- 메일 봤어요?

- ㅇㅇ 봄.

- 미친 거 아님?

- 직급 상관없는 거?

- ㅇㅇ

- 나보고 취합하래. 다들 빨리 해서 주세요. 오후 3시까지.


  새로 온 팀장은 뭘 보고 나까지 3명을 지목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비친 건 맞는 것 같아 안심했다. 다만, 팀원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행여 불편한 감정이 생길까 걱정되었다. 그럼에도 딱히 별다른 특이점은 찾지 못해 다시 나의 업무에 집중했다.

 9시 10분이 되자, 문 팀장이 걸어 들어왔다. 조용히 들어온다고 들어온 것 같은 데 괜히 바쁜 척하고 눈은 아래로 까는 걸 보니 지각인 게 민망하긴 한가 보다. 

 이 메일을 회사 오는 길에 작성한 것은 분명했다. 아무런 흔적도 없는 자기 자리에서 지각을 면하고자 체면치레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여자 단톡방>

- 재 지각한 거냐?

- ㅇㅇ.


  월요일 아침부터 그의 화려한 등장문에 모두들 고혈압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왜 작성하냐고 그에게 따지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가 시킨 대로 순순히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나는 이 업무 보고를 쓰면서 과연 이 팀장이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할까(?)하는 의문점이 무진장 많이 들었지만, 섣불리 팀장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작성하여 제출했다. 


  그는 생각보다 우리 회사에 잘 적응하는 듯해 보였다. 까탈스러운 선자 씨의 비위도 잘 맞추고, 점심마다 이사님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이사님이 좋아한다는 뜻이기에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척 모니터를 보는 제스처 빼고는 사람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가끔 멍청해서 그렇지.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그는 또 출근하지 않았다. 여자단톡방에서 그에 대한 질타가 미친 듯이 쏟아져 끊이지 않을 때, 그가 있는 전체 단톡방에 메시지가 왔다.

  

 -코로나에 걸려 재택 합니다. 다들 근무하시고, 저한테 보고할 것들은 개인적으로 보내주세요.

   R&R은 모두 정했습니다. 이번 주 내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업무에 대한 개인 면담은 전화로 하겠습니다.

  면담시간은 주림님이 취합해서 알려주세요. 



  그는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코로나에 걸려 회사에 나오지 못했다.

  "아니, 와이프가 걸려서 걸릴 것 같다고 하더니 걸렸나 보네~."

  멀리서 선자 씨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택근무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 저런 말투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분명 선자 씨가 이 팀장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사진출처 UnsplashStephen Phillips - Hostreviews.co.u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