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부터 '뇌'를 두고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뇌'를 가지고서는 회사에서 피곤해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기에 나의 뇌를 자주 나의 침대 베개 밑에 고이 넣어두고 집을 나왔다.
아침 열 시….
"점심에 뭐 먹을 깡!?"
"자기는 머 먹고 싶어쭁?"
뇌를 집에서 가져온 순간 나는 고통스러울 것임을 알기에….
"짝짝짝"
경쾌하지만 어딘가 천박해 보이기도 하는 박수소리가 내 뒤통수 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매우 지금 바쁜 일을 하고 있으므로 뒤를 절대 돌아보지 않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을 바로 그때.
"여기요~! 집중! 모두 회의실로 들어오세요."
설기대리 퇴사 후 잠잠하던 선자 씨가 웬일로 해외팀 전원을 소집했다. 갑작스러운 선자 씨의 발랄한 목소리와 박수소리에 다들 3초간 정지 얼음하다가 땡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노트와 볼펜을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다들 들어왔어요?"
다들 선자 씨의 말에 두리번거릴 뿐 대답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Excuse me?! 나 지금 누구랑 말하니?"
"네? 네. 다 온 것 같아요."
마지못해 선자 씨 앞에 있던 남대리가 대답했다.
"오늘 아주 귀한 분이 우리 팀에 오셨어요. 팀장님. 소개해주세요."
드디어 우리에게도 팀장이 생겼다. 선자 씨로 부터 우리를 지켜 줄 그 누군가가 드디어 등장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라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선자 씨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남성이 있었는데, 짧은 스포츠머리에 얼굴은 무척 작았다. 팀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여서 좀 당황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전원이 술렁이며 선자 씨가 앉아있는 맨 오른쪽 편의 가운데 자리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문정현입니다. 저는 나몰라레시픽 회사에서 10년간 근무했습니다. 글로벌사업부에 있었고요, 뭐 이커머스 등등 여러 가지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와~!"
모두 쌍수 들고 환영했다. 무엇보다 그의 압도적인 외관이 한몫했다. 깔끔한 차림의 그는 성격도 깔끔할 것 같아 보였고, 나이도 젊은것 같아 우리 팀원들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선 외모는 합격이었다.
나는 이커머스 담당으로써, 나의 방향을 지시해 줄 단단한 선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커머스를 담당했다고 하니 신이 났다.
"다들 질문 있으면 좀 해보세요."
선자 씨가 우리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나는 손을 들고 질문했다.
"팀장님은 이커머스 어느 쪽 해보셨나요?"
"세포라에서 해봤습니다."
"아...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웃어요?"
그는 나에게 되물었다.
"아…. 아닙니다."
분명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이 헛것이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 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무시당하는 것도 싫어하고 은근 피해의식이 넘치는 사람….
세포라가 이커머스로 취급되는 줄 몰랐다기보다는 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직접 운영해 보는 D2C의 개념을 물어봄). 문 팀장의 대답을 듣는 순간 찰나의 불신이 밀려왔다. 이 사람 이커머스 좇도 아는 것도 없군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화장품 업계의 대부인 나몰라레시픽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들 그에게 이목이 쏠렸고 다들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말했다.
"해외영업에서는 보통 남자들이 하는데 여기에는 다들 여자들이어서 좀 놀랍네요."
놀랍게도 이 말은 방금 입사한 팀장 입에서 나온 소리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어머. 이 분 큰일 날 분이시네. 어머 여자 뭐라고 하신 거예요?"
"네? 아니.. 아니 저는..."
"여자가 뭐 어때서요. 어머. 이 분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우리 애들 만만하지 않아요."
유일하게 팀장 옆에서 웃던 선자 씨가 쌍수한 눈을 휘갈기며 목청 높여 말했다.
"아.. 아. 아닙니다. 하하하하. 네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제가…."
내 질문에는 눈을 찌푸리던 팀장이 선자 씨의 폭격기 같은 말에는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고 웃기다는 듯 넘겼다.
어색하지만 선자 씨가 선자 씨했던 회의가 끝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러나저러나 우리에게도 드디어 팀장이 생겼다. 동수 팀장 이후로 내가 본 두 번째 팀장이었다. 문팀장의 자리는 전 팀장의 자리인 내 옆자리였는데,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네?"
"여기 물티슈 없니?"
밤톨 같은 머리통으로 내 오른쪽 시선을 강탈하더니 나에게 그는 물티슈를 달라고 했다.
"아. 저 있어요. 드릴게요."
그가 물티슈로 무얼 하나 흘겨보니, 서랍 한속 구석구석 그리고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어우. 더러워."
그는 깡 마르고 깔끔 떨며 무언가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우리 아빠는 그냥 쓰던데...'속으로 아빠를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그의 옆자리에 있던 교육팀 팀장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하하하. 여기 오늘 입사했어요."
"네~! 환영합니다. 저도 온 지 별로 안되었어요."
"그나저나. 여기 너무 더럽네요."
그는 자연스럽게 답변했다.
우리 회사는 남녀가 친하게 지내는 것이 거의 없는 부서들이기 때문에 둘의 대화가 무척 이색적으로 들려왔다. 마치 고등학생들 연애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그들은 동료로서 대화하는 것뿐이었는데. 나조차도 이미 이 회사에 물들었다 싶었다.
나는 다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나의 업무를 시작했다. 업무를 시작해서 바쁘게 일처리 하는 중에 갑자기 문팀장이 나를 불렀다.
"혹시, ㅊㄷ할 줄 아니?"
"네?"
"너 이거, 혹시 아니?"
"네!?"
아니 무슨, 사내세끼가 말을 똑바로 안 하고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네?를 여러 번 반복하자 그는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카톡 차단할 줄 아니?"
풋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입술을 앞니로 꾹 깨무느라 진땀 뺐다. 입사날에 팀원한테 카톡차단을 묻는 팀장이라니…. 참으로 기괴했다. 나는 완성된 사회인이기에 웃음은 가면으로 가리고 상냥하게 답했다.
"아이디 누르시면 여기 위 상단에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차단을 해주자, 그는 머쓱한지 웃으며 말했다.
"아 쓸데없는 카톡이 자꾸 와가지고."
아무개의 차단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는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던 그는 볼일이 끝나자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런 감정 없이 일하다가 도와주었지만 5초 뒤, 내 머릿속에 그에 대한 모습이 자리 잡혔다.
나는 남들에게 관심이 많은데, 유독 그의 이 행동이 거슬렸다. 30대로 보이는데 왜 카톡 차단 하나도 모르는 거지? 나이가 많은 건가 기계치인 건가? 오자마자 무슨 카톡차단을 물어봐. 아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