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rilim Dec 18. 2023

좋은 대리 vs 나쁜 대리

  동수 팀장님이 퇴사 후, 두 명의 채용이 이루어졌다. 

  먼저, 남대리. 남은경 대리는 유럽에서 공부했다. 실제로 국적도 유럽이라고 들었는데, 어느 국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의 말이 항상 바뀌기 때문에 도무지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두 번째 채용자, 이수영 사원. 메가급 브랜드의 CRM 파트에서 1년 계약직을 하고 우리 팀에 들어왔다. 늘씬한 몸매에, 교포 느낌이 물씬 난다. 

  선자 씨는 해외사업부의 명분답게 모두 해외 출신의 저명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로 구성하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해외 사업부에 입사하게 된 남경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수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간회의 때 어색한 인사가 오갔고, 모두 박수로 마쳤다.


   두 사람이 입사한 지 두 달이 지나자 어느 정도 두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먼저 남대리는, 말이 많아서 묻지 않아도 무엇이든 말하는 사람이라 궁금하지 않아도 입을 다물지 않아, 그날 그 사람이 무슨 양말을 신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수영 사원은, 시간이 지나도 애매하고 모호하여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다만, 선자 씨가 부를 때마다 눈웃음을 짓고 헝헝헝헝 웃으며 쫓아가는 것을 보아서는 사회적 응력 만렙인 사원으로 으레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도 아침 8시 이전에 별다방에서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아침 근무를 시작했다.

  "징-"

  "안녕하세요. 출근하시면, 프로모션 내용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날짜가 변경되어있지 않습니다. 배너 빠르게 교체해 주세요."

  선자 씨가 있는 대행사 단톡방에 업무지시를 날렸다. 그다음은 전날부터 매출을 다시 계산해 본다. 결제일자 기분으로 매출이 얼마정도 되는지 환율로 환산해서, 선자 씨에게 일일보고할 리포트를 작성한다. 이렇게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오전 9시가 되어 팀원들이 출근한다. 맡은 바가 있으면, 업무에 몰두하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 힘들게 집중하다 보면 오전의 주요한 업무는 대부분 끝이 난다. 그리고 딱, 오전 10시가 되면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오~! 우리 점심 뭐목으깡?"

  "아 뭐 먹지~?"

  "Hey, what do you want to have for lunch?"


  다음날, 출근해서 나는 루틴 하게 같은 업무를 하다가 매출 정리에서 막혔다. 플랫폼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결제일자로 뽑을 수 있는 매출표가 다운되지 않아 여러 번 시도를 하고, 컴퓨터를 껐다 다시 켜보는 허튼짓을 하게 되었다. 순간 선자 씨에게 일일보고를 못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또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배고파. 우리 점심 뭐 먹을 깡?"

  "아 너무 배고파. 점심 뭐먹찡?"

  

 10분 후 다시 들렸다

  "우리 오늘 뭐 먹을 깡? 수연 씨 우리 뭐 먹을 랭?"

  "네? 글쎄요.."

 

  니미랄. 점심은 무슨. 아침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안돼서 점심타령이라니. 게다가 콧소리 작렬이라 더 속에서 욱하는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 씨."


 "징-"

  업무를 끝냈는데, 연락이 온 걸 보니 남자 친구임에 틀림없다 싶어 PC톡을 바로 켰다.

  "지은 씨, 무슨 일 있어요?"

  남자 친구는 무슨, 내 바로 뒤에 앉은 설기 대리가 개인 톡이 왔다. 아마도 그녀도 나의 머리에 스팀이 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내가 한숨을 몇 번 쉰 거지 새어보다가 새길 포기하고, 설기 대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남 대리님, 너무 시끄러워서요."

  "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서 그랬구나."

  "왜 맨날 아침마다 저렇게 배고프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듣기 싫어요. 일이나 할 것이지. 맨날 밥타령이야 회사 와서."

  나 나름대로 설기 대리와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인지 나의 발작버튼이 눌러졌다. 설기대리가 묻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남 대리의 험담을 해버렸다. 설기대리는 이에 대해 동의라도 하는 듯 웃고 넘기며 나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서랍에서 초콜릿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받아요. 먹고 화 좀 풀어요."

  "네. 제가 오늘 많이 예민한가 봐요."

  "아니에요. 밥타령한 사람이 잘못이지. 누구는 일하느라 바쁜데…."

  "감사합니다."

  나는 짧게 톡을 남긴 후,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점심때가 되면 나는 혼자 나가서 삼성역 주변을 걷거나, 홀로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다. 이렇게 점심을 먹게 된 이유는,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는 아닌데 왜인지 혼자가 편했다. 물론, 강남의 물가도 실감했다. 회사에서 점심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사 먹어야 했는데, 보통 한 끼가 1만 원을 넘는다. 그럼, 아침에 먹는 내 커피까지…. 거기다가 가끔 먹는 간식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3만 원은 기본적으로 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런저런 이유에서 같이 먹는 점심을 피하게 되었다.

  하이에나처럼 점심만 기다리는 저 나쁜 대리들은, 기본 양도 많을뿐더러 직급과 상관없이 모든 배달비와 점심비용을 청구한다. 

  "배달비 3300원이니까 나눠서 주세요."

 당연히, 배달비는 1/N 하는 게 맞는데, 뭐랄까 그들에게 일 푼도 주기 싫다. 왜냐하면 모든 메뉴의 초점은 "그들이 먹고 싶은 것"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랄까 사원들한테 배달비를 굳이 받는 게 멋이 없어 보인다.

  오늘은 날이 너무 추워 바깥에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샌드위치를 사서 자리에 돌아왔다. 

  "지은 님, 우리 같이 먹어요."

  진희 씨가 큰 두 눈을 굴리며 회의실로 같이 들어가서 먹자는 신호를 보냈다.

  "네. 잠시만요."

  갑자기 수만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같이 먹게 되면, 정말 안으로 들어가서 같이 먹는다면 나의 점심은 스트레스가득에 풀이겠지만 예의상 나는 나의 짐(물과 샌드위치)을 챙겨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어웅~지은 씨 왔쪙?"

  "네."

  "지은 씨는, 면접 볼 때 선자가 뭐랬어요?"

  "저…. 사실은 직급이 주임인데, 우선 사원으로 오고 내년에 주임으로 바로 해준다고 했어요."

  "속았네…. 선자는 다 구라야 구라. 여기 에벌리도 지금 주임인데, 원래 대리래요. 개판이야 개판."

  "아…. 그래요?"

  정말 궁금하지 않은 저들의 이야기를 듣고, 선자 씨의 만행을 들으니 속이 거북했다. 갑자기 선자 씨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온통 '선자 욕'으로 보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커퓌~?"

  혜은 대리가 물었다.

  "네."

  혜은 대리는 나보다 한 달 먼저 이곳에 왔는데 사람이 참 착하다. 디즈니를 보고 영어를 배웠다는 것 치고는 영어를 너무 잘하고, 육아휴직 간 A대리의 업무를 일주일 만에 모두 인계받았으며 선자 씨가 한동안 괴롭혔다는 말이 있었는대도 사람이 무던하다. 

  "휴. 대리들이 참 말이 많아요."

  "hey. 여기 듣는 대리 있어요."

  "아니. 대리님 말고요.."

  "하하하. 대리도 서러워요."

  "네.."

  혜은 대리가 말 끝에 대리도 서럽다는 말이 이상하게 계속 반복되어 들렸다. 내 귀가 이상한 걸까. 

  "지은 씨, 설기 대리님 관두신다는 거 알았어요?"

  "에?!!! 아니요!!!!!!"

  혜은 대리의 말에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왜요? 대체 왜요? 헐."

  "그건 잘 모르겠는데. 오늘 선자가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이사님이요? 그럼 진짜일 텐데.. 이사님이 과연 가만히 계실까요. 절대 안 보내주실 것 같은데."

  "저도 보고 드리러 갔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미 한 달 전에 말씀드려서 다음 주에 관두신대요."

  "아..."


  나는 얼른 자리로 돌아와 설기 대리의 자리를 보았다.

  설기 대리의 자리는 짐이 딱히 없어지거나 한 것은 없었으며, 평소와 똑같았다. 우선,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절대 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나는 업무를 시작했다. 설기 대리가 뒤에 앉은 기척이 느껴졌지만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걸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끝에 갠톡을 보냈다.


  "대리님"

  "네?"

  "혹시.. 관두시나요?"

  "아.. 네."

  "왜요?"

  "뭐 이유가 있나요. 싫은 사람이 나가는 거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잖아요. ㅋㅋ"

  "그래도.. 왜요? 남대리 때문이에요?"

  "ㅎㅎ 그것도 뭐 큰 이유긴 하죠. 그래도 걱정 말아요. 우리는 또 보면 되니까."

  설기 대리는 힘들었다. 일을 안 하는 저 관종 두 명 남대리와 에벌리 사이에서 대장 노릇하랴, 선자 씨의 비서 노릇하랴. 사람은 셋인데, 일하는 사람은 하나고 대리는 셋인데 두 대리는 허우대뿐이니.

  "저들도 당해봐야 돼요. 내가 나가야 저들이 일할테니까^^."

   

 그 다음주에 설기 대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여전히 사무실엔 오전 10시만 되면 점심을 묻는 둘은 그대로였다.

  "오늘은 뭐먹을거양? 나 어제 너~~~무 순대국밥이 먹고 싶었쪙."



  "ㅆㅂ"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