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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Mar 28. 2024

시간이 흐르는 제주도입니다.

메리

두루 작가님께



  지난주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3월의 제주도는 동백꽃이 지고, 유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작년 3월에도 제주도를 왔었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 올해에도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작가님은 3.1절에 태극기를 집에 다시나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3.1절에 태극기 달고 있는 집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태극기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두루 작가님은 3.1절의 의미를 아시나요? 3.1절은 결코 간단하게 설명되어서는 안 되지만,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3.1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통치에 반대하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우리의 독립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입니다. 정말 마음이 무겁고도 웅장한 날입니다.


  3.1절에 저의 집 베란다 앞에 태극기를 걸어 두는 곳에 태극기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 제주도에 왔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날씨는 쌀쌀했고,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눈보라는 아닌데, 흩날리는 눈바람에 ‘남은 3일간 제주도에서 무얼 하지’라는 생각에 좀 허탈했습니다. 차를 텐트하고 숙소에 돌아가는 길은 깜깜했습니다.


  3월의 제주도의 밤은 일찍 찾아옵니다. 제주도의 밤은 깜깜하고, 오로지 빛을 내는 것은 차들뿐입니다. 가로등이 있는 곳도 있지만 없는 곳이 더 많습니다. ‘제주도는 왜 이렇게 깜깜할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요. 생각해 보니,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는 공간에서 살다가 시간의 흐름이 있는 제주도에 오니 제가 낯설었던 거예요. 그렇게 제주도의 첫날밤은 지나갔습니다.


  저의 업무는 해외사업부에 속한 일이다 보니, 해외에 갈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여행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어요. 남들은 회삿돈으로 해외여행 간다고 부럽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단 한 번도 해외 출장이 쉬웠던 적이 없거든요. 이런 말을 들으면 좀 섭섭합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말하죠. ‘니들이 가봐.’라고요(웃음). 물론, 개인의 편의를 봐주는 회사도 있겠지만, 대게는 해외 출장은 가능하면 짧고 굵게, 말 그대로 빡세게 일을 시킬 것이에요. 무튼, 이런 이유로 저는 해외여행보다는 국내 여행을 좋아합니다.


  제주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곳 같아요. 깜깜한 밤이 오더라도 지나치게 불빛을 켜지도, 사람들이 이동하지도 않으니까요. 아마도 저는 이런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집에 갈 시간이야.’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인지하고 멈출 수 있으니까요.


  3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만 보 이상을 걸었습니다. 첫날에는 해물이 가득한 라면을 먹으러 갔어요. ‘오빠네라면집’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이 식당은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에 있어요. 매서운 바람을 뚫고 들어가니 인자하신 아주머니가 맞이해 주셨습니다. 오전 열한 시 전에 도착해서 그런지 식당에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대표메뉴로 보이는 해물라면과 전복리조또를 시켰습니다. 테이블에 있는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습니다. 


  “안녕?”

  “안녕?”

  “안녕?”

  

  빠르게 들리는 이 인사말은 어딘가 사람의 음성과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식당을 둘러보니 식당 구석에 있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있는 앵무새 3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회색, 하나는 흰색, 하나는 노란색의 앵무새였는데요. 이 회색의 앵무새가 말하고 있더라고요. 식당에 새들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말까지 하니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건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일 같았습니다.

식당 아주머니는 회색 앵무새에게 말했어요. 

 

   “시끄러워! 네가 시끄럽게 하면 라면 못 팔아. 라면 많이 팔아야 너네 밥도 사주고 하지.”

  시끄럽다던 아주머니의 말씀 속에서 반려 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몇 번 아주머니의 말씀에도 시끄럽게 굴던 앵무새는 모두 밖으로 퇴출당하였습니다. 식당 앞에도 나뭇가지들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들이 시끄럽게 굴지 말고 햇볕 쬐라고 올려주셨습니다.


  물론, 밥을 먹는 손님에 대한 배려같이 느껴졌지만, 밖에 나가고 싶은 반려 새의 마음을 들어주신 것 같아 제가 다 감동했습니다. 혼자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쓸쓸하지 않게 이 세 마리의 앵무새들이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 같고, 또 아주머니는 이 새들에게 맛있는 밥과 안식처를 내어주는 것 같아서요. 마음에서 몽글몽글한 것이 피어났습니다.


  식당을 나와 차를 타고 돌아가려는데 바로 앞에 바다가 보였습니다. 광활한 바다 앞에 맑은 하늘이 펼쳐지는데 움직일 수 없었어요. 바다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길을 건너 바다 쪽으로 갔습니다. 길을 따라 걸어 올라오니, ‘송악산’이 바로 앞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러 왔다가 송악산을 발견하다니, 대단한 운 아닌가요? 그렇게 높지도 않지만, 낮지도 않은 송악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니 겉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두 밤에는 단단한 중심을 두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올라갈수록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하늘, 저 멀리 보이는 산방산과 한라산은 더욱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올라가는 길마다 잠시 멈추어서 사진을 찍고, 또 올라가서 잠시 멈추어서 사진을 찍고…. 또 계속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 올랐을 때도 멋있었지만 뿌듯함과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마음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데, 두 발은 가벼워서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큰 바다와 하늘, 산을 마주하면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니지만 제주도에서 보낸 지난주는 저에게 오직 저만을 위한 휴식의 의미가 있겠네요. 스스로 나를 아껴주니까 무기력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습니다.


  두루 작가님도 제주도를 좋아하시나요? 궁금하네요.

  

  저번에 보내 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 깊은 구석이 저리기도, 몽글몽글해지기도 했습니다. 머리 아픈 것은 괜찮아지셨나요? 며칠 내내 아프셨다는 것을 듣고 걱정되었습니다. 아픈 것은 정말 싫잖아요. 물론, 누구든 싫겠지만 아프면 무얼 할 수도 없고, 멍해지면서 아프기까지 하니 답답하셨을 텐데 미간을 찌푸리고 저에게 답변을 쓰셨다고 하시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아프지 맙시다! 우리 가늘고 길게 글을 써봅시다(웃음). 아픈데도 마감을 지키시다니 이미 작가님은 성인이십니다.

  

  그리고, ‘완벽에 갇힌 사람’으로 저를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 주셨는데, 절대 아닙니다. 허점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요. 허점이 많다 보니 그 허점들을 메우려고 발버둥 치면서 노력하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됩니다.


  저번 주에 제주도의 아름다웠던 여행을 보낸 덕에, 요가 수업을 한번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가 지도가 과정은 매주 토요일 약 8~9시간 진행되는데, 한 번이라도 빠지게 되면 이 기나긴 수업 시간만큼 따라가기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평일에 퇴근하고 계속 요가원에 갔습니다. 과제는 가지 동작을 하고, 티칭 멘트를 외우는 것인데, 모든 포즈네임은 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어서 잘 외워지지 않았어요. 또, 배운 동작들이 모두 되지는 않았습니다.

  
  퇴근하고 요가원에 가서 요가를 배우다가 즐거워서 시작한 요가 지도자 과정인데, 이 과정을 시작하니 요가가 이전만큼 좋지는 않아요. 이번 주에 결국, 이 과제들을 완벽하게 끝내지 못하고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종이에 적힌 이름을 랜덤으로 뽑아 한 가지 동작과 티칭을 시켰습니다.

빌었습니다.


  ‘제발 걸리지 마라.’

  ‘걸리면, 죄송합니다. 제가 준비가 미흡하여 다음 주에 제일 먼저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어떡하지.’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저는 걸리지 않았어요.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제가 걸렸으면, 우리 동기들에게 실례를 범할 뻔했으니까요. 이렇게 허점 많은 제가 완벽주의까지 보태니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도 완벽주의에 갇히셨나요?

  

  감히, 편견을 보태어 말해보자면 작가님도 저와 비슷한 완벽주의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허점이 많다는 것은 아니고, 매사 신중하신 게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제가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심오한 영역과 ‘띄어쓰기’와 ‘문법’입니다…. 제가 작가님의 글쓰기 모임에 몇 번 참여해 보았을 때마다 느낀 게 ‘허점이 없다’라는 것이거든요. 물론 띄어쓰기와 문법은 당연히 지키는 것이 작가의 기본 매너이긴 하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 기본적인 것이 저에게는 맨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신중한 작가님을 볼 때 완벽주의 스멜을 느꼈어요.

   완벽주의 갇힌 것 아닌가요? 아니라면 설득해 주세요(웃음).

어느새 밤 열두 시 반이 넘어가고 있네요. 저는 이만, 글을 마치고 내일을 위해 꿈나라에 가야겠습니다.


2024년 3월 11일

허점이 많은 메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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