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rilim Mar 19. 2024

다시 살아가라고

두루

메리 님께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메리 님의 편지를 읽고 벌써 시간이 이리 흘러 다시 답장을 써야 하는 날이 왔네요. 미처 알아챌 새도 없이 시간이 훌쩍 빠르게 흘러버렸어요. 새해가 밝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달력은 또 한 장 넘어 2월을 지나 3월에 왔습니다. 매 새해마다 특별한 다짐을 한다거나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시간이 이리 서둘러 흘러간다는 것이 퍽 애달프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나는 그 동안 무얼 했나 싶은 한탄스러운 마음도 드네요.


  그러나 늘 그랬듯 저는 그리 크게 동요하진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미천한 나 자신은 다시 묵묵히 몸과 마음을 오롯이 자연스러운 리듬에 맡기고 있답니다. 이것이 혹 자기 합리화와 같이 비취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 않은 것도, 했던 것도, 이렇게 다시 인정하고 또 다시 여전한 나로 존재하는 것도 모두 다 나이기 때문이지요. 그 어떤 것도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직 숨을 쉬며 오늘을 살고 또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글의 형태로 써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 요 며칠 크게 아팠습니다. 목요일 밤, 자려고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갑자기 천장이 핑 도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찔해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처음엔 놀랐습니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 드디어 그토록 지겹게 말하고 다녔던 바로 그 순간, 생의 종말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더 맛있는 걸 먹을 걸 그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표현할 걸. 더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살 걸. 더 웃을 걸…’

그저 잠깐 어지러운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온 세상이 핑그르르 도는 것이 속이 좋지 않아 토를 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밤새도록 눈을 꼭 감고 고개를 한 쪽 방향으로만 두고 아무 것도 하지 못 했습니다. 휴대폰을 잡을 수가 없어서 이대로 내일까지 연락이 되지 않으면 팀원들이 그래도 어딘가 신고를 해주려나 했답니다. 일단은 자보자,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고 쉽게 오지 않는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증상은 더 심해졌어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힘겹게 휴대폰을 열어 일단 약속 두 건을 취소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요. 평소라면 어느 정도 아프지 않고서는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티를 내지도, 아니, 낼 필요도 없기에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아팠는지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번엔 달랐습니다.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어 약속은커녕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었어요. 그 길로 저녁까지 누워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못 해 한 방향으로 누워서요. 그러나 저녁쯤이  되어서야 침대를 벗어났습니다. 다소 어지럽긴 했으나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어요. 그래서 화장실엘 가 거울을 보는데 또 핑 돌아 세면대에 머리를 푹 숙이고 팔로 감싸쥐었습니다. 얼른 다시 누웠지요. 그렇게 버티다 힘을 내 주차장으로 가 차에 있는 타이레놀을 가지고 와서 한 알을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네요. 그깟 어지러움이 뭐라고 당장 차에 있는 타이레놀 하나 못 가지고 왔을까요.


  더 이야기하자면 길어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어찌저찌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리가 지끈 아파 미간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어지럽지는 않아서 글을 쓰는 데에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저는 늘 오늘을 생에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내일 내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든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떤 식으로든 삶의 소멸을 가정하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후로는 오늘이 참 소중해졌습니다. 이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쩌면 오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는 삶이 너무 지겹고 재미가 없어 사라지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이 없다고 믿으면 오늘을 충실하게 살게 됩니다..


  이번에 크게 아프면서 새 생명을, 한 번 더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것 같았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뭘 하고 싶어?’라고 재미로 묻곤 하듯, 마치 과거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아팠던 동안 스쳐 지나갔던 다양한 감정, 생각, 마음들을 가지고 다시 오늘로 보내진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야만 한다.’


  원래도 욕심이 없었기도 했지만, 더욱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바라는 게 있었던 제가 이제는 다시 더욱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지금 내 곁의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고양이와 침대, 건강한 가족들. 모든 것이 다 살아갈 이유입니다.

또, 더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잘 먹어야 하겠다고, 잠을 충분히 자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는 건 알지만 아픈 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통은 찾아온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아니, 오더라도 조금은 최대한 강한 몸과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사랑하는 것들을 끌어안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안고 더 많이 말해주어야겠습니다. 내가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와도 그들이 내 마음을 알도록,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진심이 이러함을 많이 일러주어야겠습니다.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 ‘그때 많이 표현할걸’하는 후회를 하지 않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가장 많이 든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하루에 메리 님에게 답장을 써야 할 감사한 순간도 존재합니다. 이토록 솔직하게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제게는 또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됩니다. 머리가 아직도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물을 한 잔 마시면서 자꾸만 작업을 방해하는 고양이를 몇 번이나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는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제 이야기가 길었지요. 아마 이 일이 제게는 금주의, 아니 삶에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는 뜻으로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는 메리 님의 이야기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완벽주의에 갇힌 사람’


  저는 이 표현이 왜인지 모르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그 어떤 무형의 개념에 갇혀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무언가에 갇히기 위해서는 그 어떤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파고들고 연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메리 님은 완벽하기 위해 제가 상상할 수 없이 수 많은 노력을 해오셨겠지요. 그러한 점이 ‘완벽주의에 갇힌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메리 님은 이미 완벽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완벽이라는 개념은 개인마다 다르겠지요. 누군가에게는 내가 할 일만 해도 완벽하다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 일을 그 어떤 변수 없이 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그 누군가가 보아도 완벽히 들어맞는 것처럼. 아마도 이 완벽이라는 개념의 벽이 메리 님에게는 다소 높은 것 같습니다. 나 자신에게 더욱 그 기준이 혹독한 것이겠지요. 저는 그런 메리 님을 응원합니다. 그것이 메리 님을 괴롭히지 않는 선이라면 아마도 그 완벽해지려는 힘이 바로 메리 님의 강점일 테니까요.


  팀원들과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족에게는 원래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고 기대지 않는 편이라 그들과는 크게 속마음을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팀원들에게는 곧잘 내 진심을 털어놓고는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퍽 어설프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그래왔듯 내 마음을 감추고 뻣뻣하게 굳은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매 순간 진심으로 저를 대해주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울타리를 두르고 살던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면서 다시 밖을 나서기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세상에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다고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낸 시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살면서 스쳐 지나 온 인연들이 비단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그 내밀함이 중요한 듯합니다. 얼마나 매 순간 진심이었나. 나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나.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나. 그런 내밀함.


  음, 어느덧 마지막 이야기가 되겠군요.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


  사실, 저는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저는 늘 무기력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기까지도 저는 참 많은 무기력과 싸웠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마감 시간이 가까워와서야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것은 오히려 제가 메리 님께 묻고 싶군요. (웃음) 그러나 감히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보자면, 저는 무기력도 나쁜 상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무기력이란 기력이 없다는 뜻인데 우리는 이 상태를 마치 죄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능력이라거나 무쓸모라거나 하는 것도 사실은 그 어떤 이들이 그들의 잣대를 들이민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무기력’이라는 개념은 나 스스로가 매긴 나의 기력일 텐데 기력이 없는 그 상태 그대로를 설명하는 개념이지 이것이 마치 극복해야 하는 어떤 부정적인 개념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쉽게 말해 연료가 없는 차를 운전할 수 없는 바로 그런 상태인 지금의 나를 너무 가혹하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무기력하다면 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기력을 사용해야 하는 일을 잠시 내려두고 기력을 채울 수 있는, 즉 기력한 상태가 되도록 나를 챙겨보는 것이지요. 저는 이 무기력도 사실은 기력을 부단히 사용해 왔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조금의 휴식을 주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답장은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남겨보겠습니다.


  메리 님에게 오늘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2024년 3월 3일.

  완벽에 가까운 당신을 존경하는 두루 드림.

이전 01화 봄이지만 아직 겨울에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