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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Mar 13. 2024

봄이지만 아직 겨울에 있습니다.

메리

  고민이 없으신 두루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두루 작가님. 요즘은 날씨의 변덕이 매우 심해졌습니다. 따스한 봄이 다가오는 것 같더니 눈과 비가 내리고, 패딩을 입지 않으면 밖을 못 나가는 추운 겨울이 다시 온 것 같습니다. 저번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떨어지는 비를 모두 맞았습니다. 비를 맞을 일이 별로 없는데, 어차피 비를 맞게 된 참에 우산 없이 천천히 길을 걸었습니다. 기분이 꽤 좋았습니다. 무언가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요.


  매주 토요일마다 요가 지도자 과정 수업을 듣기 위해, 용인으로 갑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가늘지 못한 몸을 가지고, 흡사 묘기와 같은 동작을 해내려고 하니, 엉덩이는 무겁고 팔의 힘은 턱없이 부족해서 가라앉습니다. 요가를 좋아해서, 요가가 좋아서 시작한 지도자 과정인데, 매주 토요일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 6일제 근무 같아서요. 예전에는 주 6일제로 근무했었다는데, 어떻게 어르신들은 하루의 휴일을 위해 6일을 근무하셨던 걸까요? 새삼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아무튼, 가늘지 못한 몸을 가지고 이리저리 옆구리, 고관절을 쭉쭉 늘릴 때마다 시원함보다는 고통에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다운독(누운 개 자세)을 할 때에는 늘어나지 않는 햄스트링을 느끼며 인상을 구기게 되고요. 한 달간 독감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기도 했고, 만성 척추측만증으로 허리가 아파서 운동을 쉬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쉬다 보니 점점 요가원에 가기가 싫고, 두려워졌어요. 그러다가 지도자 과정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수십 번은 고민하다가 가 결국, 요가 선생님께 환불을 문의했습니다.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안된다는 것이었어요. 이미 교육이 시작되었고, 교육을 시작할 때 환불은 어렵다는 안내도 하셨고요. 다음 기수에 교육할 수 있게 연기해 줄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안심되었지만, 이미 저의 상황을 아는 선생님께서는 수련의 흐름을 놓치지 말자고 하셨어요. 저에게 매우 실망했을 선생님을 떠올리며, 수십 번 고민했던 이 이야기를 막상 꺼내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물론, 달라진 것은 없어요. 매주 토요일이면 수련을 가야 하고, 점점 유연해지고, 가늘어지는 동기들을 바라보면서 수련을 이어갑니다.


  매주 수업마다 수업해 주시는 원장님이 바뀌는데, 저번에는 양재점에서 오신 원장님이 수업하셨습니다. 원장님이 조금 통통하신 분이었는데, 그분을 보면서 ‘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의지가 살아났어요. 남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은 아닌데, 그냥 저 스스로가 남들만큼은 해내지 못하는 것이 한심하였습니다. 제가 완벽주의에 갇힌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동탄 지점에 원장님이 오셔서 수업했어요. 이분은 원래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셨는데, 요가 선생님으로 전향했다고 하셨습니다. 한 동작, 한 동작 가르쳐주실 때마다 어떤 수련 방법이 올바른 수련 방법인지 같이 소개해 주시는데요, 연습을 잘못할 때 다치셨던 경험을 말씀해 주셔서 너무 오버 스트레치(과하게 유연하게 뻗는 동작)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도 겨우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4월에 곧 제가 요가 지도자 시험을 보기에, 시간이 급한데요. 평일에 요가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제가 다니는 요가원 선생님께서 일요일에 요가 2시간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태양 경배 50번을 하고 나니 한 시간이 지났고, 나머지 한 시간은 몸을 풀어주는 데 시간을 썼습니다. 두 시간을 기어이 채우고 나니, 팔과 다리가 가벼워지다 못해 후들대는 수건 한 장 같네요. 두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개운하게 씻고 책상에 앉아 경건하게 두루 작가님께 편지를 쓰는 이 순간이 너무 좋네요.

 

  우리는 저번 주에 만났습니다. 4개월 만인가요? 작가님의 안색은 좋아지시고, 살도 빠지신 것 같았습니다. 작가님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번보다 훨씬 멋져지셨습니다. 두 시간 정도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은 삼십 분 넘게 작가님의 팀원에 대한 애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넘치시는 모습이 보이니,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조금 놀랐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을 말하기도 하고, 저에게 큰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족만큼은 항상 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저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 이상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팀원들이 가족 이상이라고 하시니, 팀원들과 얼마나 시간을 많이 보내고,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과 얼마나 시간을 보냈기에 그럴 수 있나요? 궁금하네요.


  우리는 위로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위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작가님은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그것을 내버려 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이런 과정에 놓여있구나 하면서요…. 물론, 그 사람이 정말 힘들고, 도움을 청할 때 도움을 기꺼이 줄 수 있지만, 스스로 헤쳐 나가는 과정을 기다려준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러면 혹시 주변 사람들이 섭섭해하지는 않냐고 물었는데요. 작가님은 처음에 주변지인들이 섭섭해했으나, 지금은 작가님의 깊은 뜻을 알고 섭섭해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작가님과는 반대의 사람입니다. 이 행동이 누군가에게 오지랖으로 비추어질 수 있으나, 저는 주변 사람이 힘든 모습을 보이면, 꼭 해결해 주려고 해요. 제가 큰 힘은 되지 못하더라도 조언을 꼭 해주려고 하는 편입니다. 알고 있는 방법과 지인 찬스를 활용해서까지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꼭 저의 위로 방식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훈수’가 아니라 공감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또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옆에 바위처럼 있어주는 것도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두루 작가님의 글 테마는 언제나 ‘우울함’이라는 것이 뇌리에 박혀서 그런지 작가님의 첫 번째 책 또한 ‘어느 날 문득 잘 살고 싶어 졌다’가 ‘어느 날 우울한 당신에게’로 착각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작가님의 ‘우울함’이 존재하는지 질문을 했어요.


  “요즘 고민이나 힘든 것 있으신가요?”

  작가님은 저의 질문에서 1초도 쉬지 않고 바로 답하셨어요. “고민도 없고, 걱정도 없어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은요.”


  생각하지 못한 답을 듣고 3초간 뇌 정지가 왔습니다.

  

  고민이 없는 두루 작가님은 왜 우울함을 달고 사나요? 저의 경우는, 실패 속에서 고민이 심해지면 우울해지는 편이거든요. 작년 12월 딱 한 달간 독감에 걸려 아플 때, 요가원에서 원장님이 가르쳐준 마음 다스림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강연을 하셨는데요. 원장님은 나의 몸도, 나의 정신도 ‘나’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것’이지 ‘나’가 아니라고요.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벗어나져야 하는데, 작년 12월에 원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이 삶에 가깝게 살았을 때 굉장히 무기력해졌습니다. 어떤 것을 보아도 기쁘지 않고, 어떤 것을 들어도 슬프지 않았어요. 우리가 아등바등하는 모든 것들이 보잘것없고, 무의미한 것이며, 의미를 찾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아무 감정이 없고 평온했습니다. 근데 문제가 생겼어요. ‘무기력’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것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니 무기력이 찾아왔습니다. 무기력해지니 가만히 집에 누워있고 싶어 졌습니다. 핸드폰 귀신인 제가 핸드폰조차 잘 보지 않았어요. 너무 무기력해지니 삶이 재미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짝꿍인 남편이 이직을 제안했어요. 퇴사했을 때도 원래 3개월의 휴식 기간을 약속하고 쉬기로 하였는데(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살다 보니,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무기력해져서 잠만 자고 동굴에 들어가는 저를 지켜보다가 안 되겠나 봐요.

 

  이직에도 무기력했던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헤드헌터가 끈질기게 연락을 하였는데요. 끈질기게라는 표현이 과한 것 같지만 사실입니다. 5분만 통화하자 하시던 분이 항상 한 시간 넘게 저를 붙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눈떠보니 이직해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과 일이 싫어서 모든 것을 관두었는데, 막상 일을 관두고 나니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버스에서의 출근 시간이,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글을 쓰던 밤이 그리고 요가원에 가기 위해 퇴근 후 달리던 제가 사라져 버렸어요. 책도, 글도, 요가도 모두 싫어졌습니다. 시간이 태평양같이 많았는데요.

 

  요즘은 바쁜 일상에서 다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또 요가하는 이 삶이 너무 소중해졌습니다. 이런 걸 보면 시간의 소중함을 참 바빠야 깨닫는 것 같습니다. 제가 또 얼마나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참 많을 때도 이것들을 누릴 수 있는 저의 성숙함이 탑재된다면 그때일 것 같네요.

 

  고민이 없으신 두루 작가님은 무기력하지 않나요? 무기력함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작가님이라면 이 질문의 답에 알고 계실 거 같아요.


2024년 2월 26일

매일 고민이 있는 메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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