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rilim Nov 06. 2023

막돼먹은 선자씨

  어색한 회의가 끝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자 씨의 자리는 통유리로 되어있는 방이었는데, 나름 직급에 맞는 방을 주어진 듯했으나 까랑까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릴 땐, 하마터면 저 유리방이 그녀를 가둘 수 있는 유일한 우리를 보호해 줄 보호막처럼 느껴질 뻔했다.

  팀장님은 불려 가서 한참을 선자 씨와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지은 씨. 첫날이라 이사님이랑 같이 밥 먹자고 하시네요. 열한 시 이십 분에 밥 먹으러 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점심은 열두 시부터 한 시 까지라고 들었는데, 팀장 혹은 임원들이면 으레 밥을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보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할 일이 없어 멀뚱멀뚱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그룹웨어에 접속해서 하나도 오지 않는 받는 메일함을 뒤적뒤적하다가, 옆사람의 레이저 쏘는 눈동자에 소스라치게 놀라 왼쪽을 쳐다보았다.

  "네?"

  나는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 저는 온라인 담당자 방진희입니다. 앞에는 출고담당하시는 김희남 씨, 그리고 지은 씨 앞에 앉아 계신 분은 마케팅 담당하시는 이태수 씨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유지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온라인 팀은 나포함 네 명으로 서로 마주 보는 가벽을 경계로 앉는 자리였는데, 옆 진희 씨는 눈이 커서 하마터면 눈알이 쏟아지는 줄 알았다. 희남 씨는 어려 보이는데, 수줍음이 많은 듯했고, 태수 씨는 뭔가 특이한 채취를 풍겼다."

  인사를 하고 어색하게 있는데, 갑자기 카톡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징-"

 "징-"

  "징징-"

  "아, 지은 씨 제가 저희 단톡방에 초대해 드릴게요. 지금 이 방은 저희 온라인 방이고, 두 번째 방은 이사님 있는 방, 그리고 세 번 째는 이사님 없는 저희 팀 방이에요."

  "아 네."

  한 순간에 세 개의 단톡방이 생겨버린 나는 방 안의 채팅방에 있는 멤버들을 친구 추가하기 이전에 멀티프로필을 설정하기 위해 손을 재빨리 움직였다. 개인적인 프로필 사진을 절대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하마터면 나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나를 관종처럼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찰나에 나는 아무 사진 없는 냉무(내용無) 프로필사진으로 멀티프로필 설정을 했다.

  카톡방은 주간회의와 동일하게 형식적인 "환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따위의 말들이 난무했고, 어색할 땐 각양각색의 이모티콘을 남발하였다.

  이렇게 식은땀이 나는 첫인사가 드디어 끝난다 생각이 들 때, 진희 씨는 손짓으로 나를 옆으로 불렀다.

  "왜 부르셨어요?"

  "여기, 조직도 보시면 전화번호 나와있는데 핸드폰 번호 저장하셔서, 아니 딱히 저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린다는 메시지 보내시면 돼요."

  "아.. 네!"

  "쓸데없는 전통 같은데, 저희는 입사하면 꼭 해야 해서..."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최대한 정성스럽게 메시지를 작성해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새롭게 입사한 유지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가 나의 최선이자 나의 최선. 나는 문장을 마치고 전화번호를 바라보며, 하나하나 눌러 전체 메시지를 전송했다.

  "징-"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자 씨에게 답이 왔다.

  문득 이 문자를 보니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약간 닭살 돋았다.

  나는 다시 내 책상에 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의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봤다.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우선 초대된 각 방에 잘 부탁드립니다~! 를 외치기 시작했고 인사치레의 답변은 수많은 이모티콘들이 답변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옆에 앉아있던 동수 팀장이 몸을 들썩이며 코트를 입기 시작했다.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곧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채릴 수 있었다. 내가 눈썹을 올리며 쳐다보자, 동수 팀장은 끄덕이며 나가자는 사인을 보냈다. 나는 몇 분 앉아있지도 않은 것 같은 내 자리에서 일어나 뒤따라 나왔다.

  "우리 점심 먹으러 가요~!"

  엘리베이터 쪽으로 나오니 선자 씨가 서 있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옆에 있던 동수 팀장이 선자 씨에게 물었다.

  "지연님이라 했나?"

  선자 씨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지은입니다."

  "그래, 지은. 지은님 먹고 싶은 거 드세요."

  "제가 여기를 잘 몰라서. 어디가 좋을까요?"

  나는 도통 모르겠다는 듯 동수 팀장을 바라보았다. 선자 씨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부담스러워 차마 바라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육개장 가시죠. 이사님 육개장 괜찮으세요?"

  "응. 거기 현대 말하는 거지?"

  "네. 맞습니다. 지은 씨 육개장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이렇게 우리 셋은 회사를 빠져나와 현대백화점으로 향했다. 도무지 이 미로 같은 삼성역은 구멍도 많아서 어디로 나가든 바깥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구멍으로 빠져나가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걸음이 빠른 선자 씨를 따라 총총총 걸어갔다. 동수 팀장은 거의 선자 씨의 비서처럼 문이 당기시오 쓰여있으면 당기고, 미세요 쓰여있으면 밀었다. 동수 팀장이 문을 열면 선자 씨가 쌩 하고 지나갔다.

  막상 식당가가 있는 10층에 도착하자, 안산 인해가 따로 없었다. 모든 식당마다 입구 앞에서 대기 인원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동수 팀장은 자연스럽게 육개장집으로 향해, 예약번호를 받은 후 나왔다.

  우리는 십 분 정도 기다리고, 식당에 입장할 수 있었다.

 "뭐 드실래요?"

 선자 씨가 우리에게 물었다.

 "육개장 시키시죠."

 "아줌마. 여기 육개장 셋이요. 저는 김치, 김치 많이 좀 주세요."

 메뉴에는 갈비가 주 메뉴인 것을 보아, 고깃집인 것 같았다. 갈비탕과 냉면들도 있었다.

 "내가 김치를 좋아해요~! 여기 김치가 맛있어."

  선자 씨는 갑자기 나에게 김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아 네네. 그러시구나."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래. 이커머스 쪽은 다 해보셨다고 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직접 운영해 보았습니다."

  "그럼 잘하시겠네. 잘 부탁해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자 씨는 갑자기 김치 얘기를 했다가, 잘 부탁한다고 했다가 내 머리를 이리저리 왔다 가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테이블에 놓여있는 냅킨을 여러 장 꺼내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밥 먹는 이 자리에서 코를 닦는 모습을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했지만 애써 모른 척 다른 곳을 보았다.

  "내가 비염이 심해. 심해서 맨날 약 넣잖아~."

  "아, 정말요? 불편하시겠어요."

  "어휴. 말도 마."

  선자 씨 앞에 한가득 놓인 구겨진 화장지를 보고 그녀는 비염을 탓했다.

  식사가 나오자 선자 씨의 쌍꺼풀이 양쪽 위로 바짝 올라갔다. 신나 보이는 그녀의 얼굴엔 입맛 다시는 침샘이 가득했다.

  "들어요."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육개장을 휘적거리다가 선자 씨가 계속 킁킁거리며 휴지로 코를 닦는 바람에 입맛이 떨어졌다. 하지만 먹는 척은 해야겠으니 야채들을 하나하나 집어 올려 내 입 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못 먹어요?"

  입안에 밥을 가득 담고 오물오물 씹으며 선자 씨가 내게 물었다.

  "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많이 먹는 편이 아니어서요."

  짧은 대답을 하고는 다시 육개장을 휘적였다.

  "김치가 맛있어. 여긴."

  선자 씨는 한 젓가락 질에 김치를 두어 개 잡아서 입으로 넣었다. 이가 튼튼한지 잘만 먹더라.

  나의 김치를 탐하는 것 같아, 나는 얼른 김치를 선자 씨에게 내어주었다. 선자 씨는 그런 나의 손짓에 희괴한 눈으로 윙크를 쏘았다. 나는 당황했지만 입가의 떨림이 옅은 미소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어느덧 김치를 다 먹자, 선자 씨는 아줌마를 다시 불렀다.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저 많이 좀 주세요."

  서빙하시는 분의 얼굴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이 선자 씨의 김치 종지를 가져가 가득 담아서 돌려주었다. 선자 씨는 이 김치를 받아 들고,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선자 씨는 무척이나 김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김치를 못 먹고 산 건지 밖에 있는 모든 김치를 흡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탁자에 올려놓은 냅킨은 여러 개 접어 코를 집고, 입가의 침을 닦고 여러 번 이어지자 나는 이내 시선을 다시 육개장으로 돌렸다. 계속 쳐다봤다가는 나의 입맛이 땅을 뚫을 기세였다.

  육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많이 먹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야채를 바닥 밑으로 깔아뭉갰다. 역시 쉽지 않았다. 야채를 밑으로 꾹 꾹 누를수록 옆에 있는 고사리들이 더욱더 숨을 쉴 수 없다고 국물에 둥둥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눌러도 눌러지지 않는 고사리들을 건져내어 먹었다. 이제 다음 문제는 밥이다. 밥공기는 뚜껑이 있어 숨길 수 있는데, 역시 선자 씨는 내가 먹지 않은 밥공기를 응시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먹지 않은 것을 단번에 캐치한 듯하다. 나는 보란 듯이 밥공기의 뚜껑을 열어 밥을 국물에 말았다. 뜨끈한 국물 안으로 밥알이 사르르 녹아들며 헤엄쳐 흐트러졌다. 밥알들이 국밥그릇에 나불나불 대며 돌아다닐 때 나는 이들이 최대한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다가 다시 눌러 바다 안에 보이지 않은 큰 바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분 지났을 까.

  "다 먹었죠?"

  선자 씨는 다 먹었냐는 사인을 보냈다.

  "네. 다 먹었습니다."

동수 팀장은 곧장 답했다.

  "네. 저도요."

  "나가요. 우리."

  우리는 선자 뒤를 따라 식당을 나왔다. 이쑤시개를 집고 이를 쑤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나는 속이 불편해 자세를 여러 번 고쳐 앉았다. 분명 2만 원짜리 국밥을 먹었는데 집 앞 5천 원짜리 국밥보다 속이 불편했다. 이는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전 02화 면접결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