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rilim Nov 12. 2023

큰 딸 운전사

  어느 날 경운이는 큰 딸 지은이가 집 앞에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서울로 이직할까 고민했을 때, 지은이에게 당연히 이직해야한다고 강력하게 말했었다. 자고로 큰물에서 놀아야 큰 물고기가 된다고. 지은이가 잘난 사람이 되려면 서울을 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운이 스러운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운이의 말을 듣고, 이직 고민으로 반나절을 보내더니 경운이의 큰 딸 지은이는, 서울로 이직을 결정하였다.

 지은이가 서울로 이직하게 되자, 자연스레 경운이의 출근 시간도빨라졌다. 평소라면, 지은이는 8시 20분에 집을 나와도 회사에 20분 만에 갈 수 있었지만, 서울로 가게되니 출근 시간이 대략 두 시간 반은 빨라졌다. 경운이의 출근 시간은 매일 아침 새벽 여섯 시여서, 출근 길에도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빠 다녀올게."

  "데려다줄까?"

  "응. 그러면 좋고."

  지은이가 출근 길에 허겁지겁 머리도 못 빗고 나가려고 하자, 경운이는 차를 태워주려고 한다.

  어젯 밤에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아침 새벽이 되자 길가에 눈이 두텁게 쌓였다.

  처음 한 번은 출근하는 김에 딸 지은이를 데려다 주는 것이 별로 딱히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해주었는데, 점차 이것이 하루의 루틴이 되버리니 경운이는 새삼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지은아."

  "응?"

  "아빠가 힘든가보더라."

  엄마 금희는 지은이에게 아빠 경운이의 노고를 말해준다.

  "그래?"

  "응. 30분 더 일찍일어나서 출근하는게 은근 힘든가봐."

  "그렇구나. 하하하하."

  

  점점 경운이의 눈 초점이 동태같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잘만 일어나던 경운이의 우람한 어깨는 어디가고 어딘가 모르게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물만 적셨는지 아니면 샴푸를 한건지 모르겠는 경운이의 젖은 머리카락이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아빠. 머리 좀 말려."

  "시원하니~ 좋구만. 난 이게 말리는거야."

  "그러니까 자꾸 머리를 긁지. 제대로 안말리면 머리 빠져."

  "뭐 어떠냐. 남자가 이정도면 됐지."

  경운이가 말하는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지은이는 오늘따라 머리가 젖어서 마르지않은 경운이의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짠하다. 대체 왜 머리카락을 안 말리는 건지, 드라이기가 없는건지 아니면 수건이 부족한건지 고민하다가 문득 아빠 경운이가 쓰는 화장실에는 드라이기가 없었던 것이 생각났다.

  "드라이기 없어?"

  "어."

  "사줄게. 말려."

  "필요없어."

  엘레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경운이는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훌훌 털어버리며 필요없다는 말을 하니까 더 짠했다.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이 운전하는 경운이의 차 안에서 추위에 얼은 손가락을 하나 둘 꾹 꾹 눌러 쿠팡에 들어가 랭킹 1위 드라이기를 주문했다.

  "오늘 저녁에 도착할거야."

  "응?"

  "드라이기 도착한다고."

  "고마워."

 차마 신경쓰여 사주겠다는 말은 곧죽어도 못하는 지은이는 새침하게 주문했다는 말만 하고 다시 창가 위에 있는 손잡이를 부여잡고 '내심장아 나대지마'를 외치기 시작했다.

  "제발. 좀! 천천히!"

  "부웅!!!!!!!!"

  


이전 03화 막돼먹은 선자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