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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Jan 04. 2023

지켜봐 주는 것의 힘, 아쉬탕가 마이솔


@picsanghyun



"원장님, 원장님은 저희가 수련할 때 각자 하고 있는 순서가 이렇게 막 머릿속에서 알아서 그려지세요?"


"그렇죠, 하다 보면 그렇게 돼요. 그래서 이 사람 도와주고 나면 저 사람한테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요가 수업이나 그룹 운동 수업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는가. 일반적인 그룹 수업에서는 약 1시간 정도 선생님의 티칭에 따라 같은 움직임을 하며 비슷한 분량의 운동을 하게 된다.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간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아쉬탕가 요가에는 '마이솔'이라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다. 선생님이 존재하지만 말로 티칭을 하지 않고, 학생들은 아쉬탕가의 정해진 시퀀스 안에서 각자의 진도에 따라 알아서 움직인다. 인도의 마이소르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 수련법은 이제 한국의 아쉬탕기(아쉬탕가 요가 수련생)들에게도 익숙하고 인기 있는 방식의 수업이 되었다.


  그럼 순서도 알겠다, 혼자 해도 되는 수련을 왜 굳이 모여서 할까? 선생님이 때에 맞춰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순서에 맞게 동작을 하고 있는지, 핸즈온(요가의 각 자세로 알맞고 깊게 들어가기 위해 도와주는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한지, 위험하지는 않은지, 추가로 진도를 주어야 할 때인지 보고 판단하여 상황에 맞는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뭐든지 같이 하면 은근한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열심을 다하다 보면 그 좋은 기운이 옆사람에게도 전달되고, 또 나에게 전달되고! 그래서 마이솔은 혼자만의 수련이지만 선생님과 도반(함께 수련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솔 수련을 하면서 핸즈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무래도 가장 직접적으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선생님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단지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성장한다는 신기한 현상에 대해 말이다.


  무엇에 비유를 해야 할까. 마이솔 수련은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과도 비슷하다. 공적 공간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나의 어떤 행위를 돕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나를 유심히 관찰할 사람은 없지만 수련장에서 선생님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예리하다. 그래서 그 자체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사정이 생겨 못 오시게 되었는데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을 발견했다. 몸과 마음이 꾀를 부리기 시작해 힘든 동작을 견디기보다 얼버무려 퉁치고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날을 통해 누군가의 존재가, 선생님의 시선이 얼마나 내 열심을 돕는지 깨달았다.


  잠시 가르치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마이솔에서의 '봄'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다. 세심히 보아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는 것이다. 보고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에 힘을 쏟는 것이다. 일반 수업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여러 사람들을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주된 가르침의 수단은 '말'이 되고, 가르치는 이는 전반적인 수업의 흐름에 많은 비중을 두며 시야와 관심을 비교적 넓게 둔다. 그런데 마이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개인들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고, 그들이 가진 몸과 움직임의 특징을 빠르게 알 수 있다. 앎으로부터 도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잘 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항상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학생으로서의 나는 항상 그 시야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적당한 긴장과 함께 수련을 한다. 그래서 어쩌다 혼자 넘어지면 민망함에 웃기도 하고 뭔가를 성공해내면 아이처럼 선생님이 보셨을까 궁금해한다. (실제로 여쭤보기까지 한다. "원장님 저 이거 했는데 보셨어요!!?!?") 늘 내가 그 시선 안에 있을 거라는 약간의 착각이 어쩌면 나를 더 성장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며 찾아본 동사들의 뜻을 여기에 두고 맺어야겠다. '살펴보다'는 '두루두루 자세히 본다'는 뜻을, '보살피다'는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두루두루 자세히 보아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는 일. 이것보다 마이솔에서의 지도법을 더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언젠가 내가 마이솔 수업을 지도하게 된다면, '잘 보이고' 싶은 학생들을 '잘 보는' 선생이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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